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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독일의 통일에 관한 질문.

우리나라가 세계유일의 분단 국가라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 했지 않습니까?

통일의 배경과 흐름

통일 이후에 나타난 문제점과 극복 까지

자세하게 설명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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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7.15 조회수 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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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통일을위해 부단하게 투자하였고 이념적 갈등을 최소화한 국가 입니다 우리처럼 북한주민을 외계인 취급하는 학생들이 있는이상 이념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으며 통일의 반대세력화만 형성됩니다

독일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통일과 준비를해온나라였습니다  엄청난 투자를하여 동독지역 방송시설지원을 70년대 초기부터 집중해왓으며 동독탈출난민을  적극적으로보호하고 경제적지원을 통한  통일의기반을 구축한 나라 입니다 즉  정성을 들인통일 였지만 우리나라는  대립뿐인상태이므로  독일 통일과는비교할수없습니다

가장문제된것이   독일통일과정에서 경제적  통합과정문제 입니다

정리 하자면과도기의 통합문제


1) 과산업화 축소
2) 평가절상과 조세제도
3) 자본금의 평가절하
4) 평가절상과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5) 국유기업의 사유화

6)동독인의 탐욕과 비탄

7)사회주의붕괴로인한 경제 의 반대급부

동서독의 통합문제는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통합과정(Konvergenz)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서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서독 연방주(Bundesland)의1인당 소득과
동독의1인당소득간의차이는, 표1에서볼수있는것과같이, 크게좁혀지지않았다

 

평가절상과 조세제도


통일과 함께 동독의 화폐가치는 평가절상되었다. 표 7을 보면 동독의 1인당 경제력은 서독
의 30%에 불과했다. 화폐가치와 상관없이 노동시장에서는 "동독인의 서독 국가수입에 대한 헌
법으로 정해진 청구권(Verfassungsanspruch der Ostdeutschen auf das westdeutsche
Nationaleinkommen"에 따라 동독인에게 보수를 지불해야 했는데, 그것은 서독의 생계보조금
(Sozialhilfe) 수준보다 높았고, 서독 임금수준의 약 60%였다. 구동독에는 서독 개념의 사회보
험분담금과 세금이 없었고, 가능한 한 잉여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 결과 기업부문이
2-3배로 평가절상된 것에 세금과 공과금이 더해져서 결국 3-4배로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 이상으로 힘겨웠던, 앞서 언급한 통일과정 중 나
타났던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자본금의평가절하


구동독의 경제 가치가 잘못 평가되었는데, 모드로우 동독수상 시절에는 5,000억 유로 그리

고 로베더 신탁청 총재 하에서는1,000억 유로의 흑자가 발생하였다고 평가되었던 것이 실제로
는 약 1,100억 유로의 적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는 현대에 발생한 가장 큰 경제적 오류 중 하
나일 뿐만아니라, 일련의 다른 통합문제를 유발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평가절상
외에도 붕괴되어가는 동독의 시장 때문에 자본상황은 부실해져 가고 있었다. 상품을 내다팔 시
장이 없으면 생산공장도 그의 가치를 잃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재투자가활발하게일어났다. 이와더불어경제안정화및사회보장체제를위한지출도늘어났다.

평가절상과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통일비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들었고, 기존의 재원으로 충당할 수 없어서 대규모의

부채를 받아야 했다. 이어서 독일연방은행(Bundesbank)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
렸다. 마르크(Mark)의 가치는 8%가량 높게 책정되었고, 그 결과 통독 후 1인당 소유재산가치
는 8%가량 줄어들었다. 따라서 화폐가치는 평가절상이 아닌 평가절하됐어야 했다. 평가절상폭
을 20%에서 25%로 추정한다. 유로화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환율이나 금리를 국가경제에
맞게 조정하지 않으면 독일내의 재화의 값은, 즉 부동산, 임대료, 임금은 낮아져야 한다. 독일
의 임금변화, 부동산가격 그리고 임대료는 다른 국가들의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2003년이
되어서 통합과정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였다. 그 동안의 기업수출비율은, 표 8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1995년 서독에서는 약30%, 동독에서는 12%였는데, 2007년도에 들어서 45%
와 30%로 상승하였다. 이와 같은 경제발전은 한편 높은 임금이 지불되는 발달된 수출부문을
낳았지만, 반대로임금변화로부터는동떨어진"지역산업(local industries)"을만들어냈다.

 

사유화
통일이후 동독일은 광범위한 재산형성(Eigentumsbildung)지원을 소홀히 하였다. 상속세가
없는 것으로도 나타나는 재산이 없는 사회는 카를 막스의 이론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Das
Sein bestimmt das Bewusstsein)"에 따라 어떠한 특정 선택적인행위(spezifisches
Wahlverhalten)를 유발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통일이후 당시 35세에
서 45세의 나이로 동독일의 건립을 주도해왔던 세대는 주도권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기업
들은 견실함을 유지해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현 정부정책계획에 놓고 살펴보면 상속세제
(制)에 부정적이다. 동독일의 재무장관 또는 경제장관은 상속세를 찬성하고, 그러나 상속세수입
은 동독도시인 드레스덴이나 할레가 아닌 프랑크푸르트에서 걷어들여진다

 

이상은 당시 나타난 문제들을 학자가 분석한 자료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학급평균을 내는데 30명 한 학급에서 25명이 90점 이상인데 나머지 5명이 60점대이면 그 학급 평균은 85점으로 내려앉습니다 이와같은 원리 입니다

 

서독이 경제력을뒤바침하여 동독을 끌어앉았기때문에 모든 위험요인을 인수하였습니다

국민 생활기반  부터 공공시설투자까지 그래서 가난은 나라도 못구한다는 말처럼  사독은 엄청난 투자를 반복했지만  동독주민들은 반대급부로 생활이 날로 향상되어  최초 서독 동독대비 80대 20이든 수치를 2000년에 70대 60까지 끌어올려 어느정도 상대가 될수있도록한 서독주민들의 열정이였고  우수한 독일 의 정치 집단의 노력결과였습니다

2천년 초기 유럽중앙은행격인 도이치 방코가 흔들리자 영국은 행 프랑스 가국이 영향을 미치게되었고

유럽공동체(유럽연합이전기구)에서 이를  지원 현재 세계 무역1위국가로 만든결과 입니다

현재 독일 경제력을 만든 장본인은 독일 국민의 노력이 80%이고  주변국 협력이 20%입니다

 

통일초기 서독주민들의 부동산 매입으로 동독주민의 급작스런 부유계층 발생한것은 정부가 이를 유도한 정책때문입니다 이게 결과적으로 서독에 고스란이  그 위험부담율을 갖게된조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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