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독일이 공산주의가 아니였다니...
히틀러가 공산주의를 증오했었다니 ???
뭐가 뭔지요 ?

내 프로필 이미지
  • 질문수1
  • 채택률0.0%
  • 마감률0.0%
닉네임비공개
작성일2011.06.17 조회수 3,378
답변하시면 내공 10점을 답변이 채택되면 내공 25점을 드립니다.
1번째 답변
주인공
채택답변수 3,529받은감사수 2
별신
프로필 사진

카지노게임 44위, 꿈, 해몽, 정치인, 공무원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공산주의는 찌질이들이 하는 겁니다

 

 

독일인은 자칭

 

위대한 순종주의 우등 민족인데

 

 

찌질이들이 하는것을 차별화 할수 있죠

 

 

 

공산주의보다 더 우월한 종족이 있는데

 

 

눈길이 가질 않죠

 

 

 

독일인은 우월한 종족입니다

 

 

 

 

독일인이 어느정도 우등민족인지는

열등민족들은 쉽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출처내 능력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번째 답변
coree천사
채택답변수 1만+받은감사수 57
수호신 열심답변자
프로필 사진

2016 사회, 정치 분야 지식인

국민기초생활보장 6위, MS엑셀 76위, 운영체제(OS) 20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독일 히틀러체제를 흔히 "파시즘"이라고 합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와도 다르고 사회주의와도 다릅니다.

 

(1) 파시즘체제가 인정하는 것 : 인간불평등, 사유재산 등 - 이것은 사회주의에선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2) 파시즘체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 사적유물론, 계급투쟁, 의회주의, 정당정치 등.

사적유물론, 계급투쟁은 사회주의에서 인정하는 것이 의회주의,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참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분배면에서 약간 차이납니다. 뭐 두개가 같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3번째 답변
av****
채택답변수 5,832받은감사수 24
태양신
프로필 사진

개신교 37위, 세계사 32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히틀러와 일제시대 일본은 전체주의로서 공산주의와 다름니다.

히틀러 시대 독일이 공산주의였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상한 사람이네..

 

 

히틀러는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며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독 소전때 나찌의 전쟁독려 포스트.

  
히틀러는 게르만이 중심이 된 유럽 기독교문명의 수호하기 위해
소련과 슬라브인 유대인 청소를 지상과업으로 여김.

 

 

질문자님아 한가지 물어 봅시다.

과잉 생산하여 가격이 폭락한 오렌지의 공급 조절을 위해 석유 뿌려 섞이는데

다른 쪽에서는 어린이들이 밥 굶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점을 어떻게 해결 해야 되나요?

나름대로 생각해 보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5

4

3

2

1

 

국가에서 오렌지 사다가 밥 굶는 어린이들한테 나눠주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오렌지 재배 농가 좋고 밥 굶는 어린이 좋고 국가 지도자도 성군이라고 칭송받고.

 

 

1930년대 영국의 재무장관 케인즈가 이런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가 된다는 미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해결책을 제시한 케인즈를 신문기자들이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습니다.

경제 공황기 세계 여러 정치인들이 선뜻 케인즈 이론을 받아 들이지 않을때

히틀러가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다음이 루지벨트입니다.

히틀러가 처음 정권을 잡았을때 공산주의자들을 철저히 때려잡아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막는 방패막이로 오히려 좋게 보았음.

 

 

우리나라 국내 정치 이념을 크게 보수 진보 2가지로 나눕니다.

보수.  [保守]
-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진보.  [進步]
-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정치집단 뿐 아니라 어느 집단이던,
영리목적의 사기업에서도 서로 의견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보수 - 안정성을 추구,  진보 - 사세확장을 추구.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빨갱이라고 매도 하지 말아야 됩니다.

 

//////////

 

펀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우익이라고 부르는 세력은 전혀 우익이 아니다.
일본의 우익, 나치의 우익, 프랑스나 영국의 우익,
러시아 우익 등과 같이 '우익'이란 민족주의자들을 말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들은 반대로 민족의 적인 일제에 협조하고 기생해온 자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으로는 김구 선생, 안창호 선생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이분들은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들인 친일파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프랑스 해방 후, 친나치파 및 친나치 언론사의 사형 등에
앞장선 최초의 프랑스 총리는 대표적 우익이었던 드골이었다.
그는 해방 하자 마자 나치에 협조한 100만명 정도를 체포했다.
그 중 7천명 정도를 사형시키고, 3만명 정도에게 유,무기 징역을 내렸다.

 

드골은 친나치파들을 처단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또 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사는 그 재산을 몰수했고,
사주와 경영진은 사형 등의 법적 처벌을 받았다.
언론계의 나치 협조야 말로 가장 협오스러운 짓이었다고 본 것이다.
또 프랑스 초기 정부의 요직을 레지스탕스 요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친일 세력은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체포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와는 반대로 해방후 몇년간 약 20만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좌익이라는 명목으로 친일 세력에 의해 재판없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친일 세력의 척결을 주도적으로 요구하던 집단이었다.
일제 시대 사회 지배층에 있으면서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세력은
그 권력과 토지,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이양받아 21세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해방 후부터 그들은 우습게도 스스로를 '우익'이라고 불렀는데,
아마 자신들이 무차별로 학살한 자들에게 덮어씌운 유일한 죄목이 '좌익'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우익'이라고 부르는게 이치에 맞다고 여긴 것 같다.
그들이 진짜 우익이었다면 드골과 같이 친일파들을 죽여야 하지만,
그 친일파들이 자기 자신이었기에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것이다.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5번째 답변
비공개 답변
비공개율 10%최근답변 2018.02.27.
영웅
프로필 사진

히틀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에여

~

 

 

좌 대 우로 나뉘어서 싸우는 건

 

 

전쟁 다~ 끝나고 냉전시대 때구요.

 

4번째 답변
홍순기
채택답변수 2,468
물신
프로필 사진

세계사 10위, 역사학 40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 저는 네이버에서 대표적인 역사카페 매니저 세계사광이라고 하며, 현재 대학교 사학과에 재학중인 역사학도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아래 제 네임카드에 적힌 링크를 눌러주세요. 저는 주로 세계사 중에서 현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나치와 히틀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우선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자본가들과 중소시민층, 군부들의 지지를 받고 생겨난 당입니다. 극우에 속하죠. 민족주의 성향입니다. 이러한 파시즘과 나치즘이 생기게 된 이유가 볼셰비즘, 즉 공산주의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아시다시피 부를 공평하게 배분해서 서로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자본가들과, 중소시민층이 좋아할리 만무하죠. 따라서 나치와 파시스트들을 지원한 것입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극우라면 공산주의는 극좌라고 보시면 됩니다. 계속적으로 서로 대립을 하죠.

 

 

 

"독일 민족의 사명은 볼셰비즘을 박살냄과 동시에 우리의 철천지원수인 유대인도 아울러 타도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승리는 반대 세력의 완전한 절멸을 뜻한다. 독일이 볼셰비즘에 점령당하면 서구 기독교 문화 전체가 사라진다. 이 한판 승부에서 지면 독일도 끝장난다.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사회주의의 목표는 한마디로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말살하고 절멸하는 것이다.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유일한 적은 온 인류의 공적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이다. 나는 그저 마르크스주의를 타도하고 싶을 뿐이다." - 1924년 3월 27일, 1923년 11월 8일에 벌인 뮌헨 쿠데타의 실패로 재판에 서게 된 히틀러가 자신을 변호하면서 한 말

 

"소련과의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유럽문명으로부터 전염병처럼 번지는 볼셰비키즘을 몰아내고자 하는 성전(聖戰)이다.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승리해야 하니까. 볼셰비키즘이 승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직 국가사회주의만이 볼셰비키즘을 막을 수 있다. 서구민주주의는 이를 막을 만한 힘이 없다. 우리는 소련과의 절멸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든 볼셰비키-유대인 연합이든 둘 중에 하나는 사라져야할 것이다. 볼셰비키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숙명이다." - 히틀러가 측근들에게 자주했던 말

 

"독일을 파괴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려는 적의 의도를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가슴 가득 증오를 품고 권력을 잡아 우리를 지배한다면 독일과 유럽의 문화는 영원히 끝장날 것이다. 만약 서방국가들이 독일 없이도 공산주의를 저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이 전쟁에서 지면 유럽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내가 그 과업을 이루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며, 나를 없애지도 못할 것이다.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아는 자는 오직 나뿐이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도 오직 나뿐이다." -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작전인 '발키리'가 미수에 그친 후 히틀러가 측근들에게 말했던 말

 

"러시아인들은 인간도 아니다. 그들은 아시아 초원에서 온 짐승들이다. 지금 내가 이끄는 이 전쟁은 유럽인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 강건한 마음으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싸워야 한다." - 소련군이 밀고 들어올 때 히틀러가 측근들에게 했던 말

 

"미개한 짐승 같은 놈들이 유럽 대륙에 끓어 넘치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지. 나야말로 바로 이 위험을 막을 최후의 요새다. 정의가 있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 될 것이며, 언젠가 세계는 지금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1945년 4월쯤에 히틀러가 측근들에게 했던 말

 

 

유럽이 하나가 되어 힘을 합쳐서 전염병처럼 번지는 볼셰비즘을 '성전(聖戰)'을 통해 막자고 주장했던 히틀러, 나치당 강령 첫째가 공산주의 박멸인만큼 소련의 볼셰비즘을 없애는 것이 목표였던 히틀러는 동방으로 진출하다가 세계를 정복했던 서방의 동맹인 폴란드에 가로막혀 원치않던 서방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이 행동은 세계정복으로 알려지게 된다

 

바르바로사 작전 : 히틀러가 국방군작전부에서 제안한 작전명을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붙인 작전명으로 소련 침공을 뜻하는 작전명이다. 바르바로사란, 12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어 독일을 처음으로 다스렸고 중유럽을 호령하면서 십자군 전쟁, 즉 성전(聖戰)을 이끌었던 프리드리히 1세의 수염이 붉다고 해서 '바르바로사'로 불렸는데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히틀러는 여기서 그가 존경하는 프리드리히 2세의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1세와 관련된 용어이자 그가 참여한 십자군이라는 '성전(聖戰)'이 소련 침공과 일치하여 이 용어를 작전명으로 정했음을 미루어 짐작해서 알 수 있다.

 

 

로디언, 영국 대사

 

"히틀러가 개인적으로 독일이 자신에게 원하는 바는 전쟁이 아니라 평등이며, 독일은 절대적으로 전쟁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자신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 진실함을 입증하기 위해 독일의 모든 이웃 국가와 불가침 조약을 맺을 용의가 있다고 했으며, 그가 요구하는 것은 군사력의 '평등'뿐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러한 태도에 전혀 거짓이 없다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영국이 택해야 할 올바른 정책은 독일을 유럽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함으로써 독일을 '훌륭한 유럽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쨌든 히틀러가 걱정하는 상대는 서유럽이 아니라 소련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공산주의가 본질적으로 호전적인 종교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공산주의가 이슬람의 호전적인 승리를 되풀이하려고 애쓴다면, 독일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인식할 것인가, 유럽의 보루로 볼 것인가? 다시 말해 동유럽의 새로운 국가들에 대한 위협 세력으로 볼 것인가, 보호 세력으로 볼 것인가?" - 1935년 2월 영국 신문 <The Times>에 로디언 영국 대사가 쓴 기사의 내용 중

 

 

부르크하르트, 단치히의 국제연맹 고등판무관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벌이는 일은 하나같이 소련을 겨냥한다. 서방이 이걸 알아듣지 못할 만큼 멍청하고 맹목적이라면 나는 부득불 소련과 손을 잡고 서방을 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방을 제압한 다음 다시 힘을 끌어모아 소련을 칠 수밖에 없다."" - 단치히의 국제연맹 고등판무관이었던 부르크하르트가 쓴 20년 뒤 회상록의 내용중 히틀러가 말했다는 말

 

 

알퐁스 쥐앵, 나치에 대항했던 자유 프랑스군 사령관

 

"각하, 미국과 영국이 유럽에서 제대로 된 유일한 국가를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것은 진정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나는 프랑스를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이제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 1945년 8월 18일, 미국의 육군 장군 조지 패튼이 자신의 일기에 알퐁스 쥐앵 장군과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쥐앵 장군이 했다는 말을 인용한 말

 

"사실, 유럽에 남은 제대로 된 사람들은 독일인이 유일하다. 소련과 독일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독일을 택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독일을 파괴하여 소련이 집어 삼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알퐁스 쥐앵의 1945년 8월 31일자, 9월 2일자 일기의 내용 중

 

 

조지 패튼, 나치에 대항했던 미국 육군 장군

 

"베를린을 돌아보니 우울한 기분이 들었소. 우리는 괜찮은 한 민족을 몰살하고 그들을 소련의 공산주의 야만인들로 대체하려 하고 있소. 이제 유럽은 전부 공산주의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오. 듣자하니 베를린을 점령하고 1주일 동안 소련놈들은 도망치는 여자들은 쏴죽이고 도망치지 않은 여자들은 모조리 겁탈했다고 하오. 만약 정부가 허락했다면 소련군 대신 내가 베를린을 점령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오." - 1945년 7월 21일, 폐허가 된 베를린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당시 <The Daily Mail> 신문의 사주인 로더미어와 히틀러

 

"국가사회주의당의 집권이 볼셰비즘을 저지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 영국의 신문사 <The Daily Mail>에 실린 1930년 9월 24일자 로더미어의 국가사회주의당에 대한 평

 

 

케네디, 런던주재 미국 대사로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이다

 

"히틀러에 대항하는 이 이상주의적 전쟁에 대해 심각한 의혹이 든다. 유럽의 모든 사람이 파산하고 공산주의가 마구 날뛰도록 놔두는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한지 1달 후 그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개인비서인 Marguerite LeHand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