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사자' 김형오, 선혈 낭자한 공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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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0. 오전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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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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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the300]]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0.3.9/뉴스1

시작부터 죽음과 칼을 말한 공천관리위원장다웠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내놓은 채점표는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아우성이 들린다. 주요 지역 공천이 마무리된 가운데 8일 기준으로 교체 대상 현역 의원이 38%다. 관심이 집중됐던 영남권에서는 자기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은 의원이 고작 24%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이 1월 중순 공관위원장에 확정되자 정치권에서는 5개월 전 발언을 떠올렸다. 지난해 8월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 연찬회에서 나온 그 유명한 "죽기 딱 좋은 계절"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공관위원장으로서 첫 기자간담회에서는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누구를 죽이기 이전에 자신이 죽을 각오로 임한다는 소리다. 연찬회의 현역 의원들 앞에서 "죽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보다 더 살벌하다.

눈에 밟히는 사람도 쳐낼 수 있음을 강조하려고 눈을 가리고 칼을 든 정의의 여신 얘기도 꺼냈다.

김 위원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죽어야 사는 '부활 신앙'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인지 죽음과 칼의 비장한 각오만이 당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념을 향해서는 어설픈 타협도 배제했다. "나에게 연락만 해도 불이익을 주겠다"는 공언 속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독립성'을 강조했다.

비장하지만 고고함과는 또 다르다. 김 위원장의 지향점은 '하수도'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성직자는 상수도, 정치인은 하수도"라는 게 지론이라고 밝혀왔다. 성직자가 좋은 물을 공급하는 역할이라면 정치인은 구정물 속에 자신을 내던져 수로 관리를 직접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줄기차게 책임 있는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요구해온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원래 거칠게 몰아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2011년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강용석 의원의 제명안 처리 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문구를 인용해 끝까지 감싼 것도 김 위원장이었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여야대립 속에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하다가 친정인 여당(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았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1대 총선 TK 지역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3.6/뉴스1

이번 공천에서 칼을 빼 들고 죽음을 말한 만큼 고민과 숙고도 길었다는 게 공관위 주위의 평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는 설명이다.

한 공관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두 번 세 번 의견을 듣고 논의가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정하는 스타일"이라며 "5~6일에 PK(부산·울산·경남)와 TK(대구·경북) 지역 공천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그 이전부터 수많은 토론이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럼에도 후폭풍은 만만찮다.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해 컷오프(공천배제)된 인사들 대부분이 공천 결과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인천, 대구, 부산 등 곳곳에서 김 위원장의 비서진 출신 등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공천되거나 경선에 발탁되자 뒷말도 상당하다. 이들은 당사자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김형오 키즈'로 불릴 수밖에 없다.

일흔을 훌쩍 넘긴 김 위원장은 수차례 그 어떤 정치적 욕심도 없다고 공언해왔다. 김 위원장의 저서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에서 황제의 리더십은 헌신과 죽음의 리더십이다. 패망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의연한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앞에 모든 부하들은 기꺼이 당당한 최후를 맞는다.

김 위원장 개인의 공과를 떠나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희생의 리더십이 세워지는 공천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국가적 위기 상황과 별개로 총선을 코앞에 두고 공천 갈등이 고조되는 요즘 정치권이 풀어야할 숙제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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