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대전에서…'배드파더스' 알렸다 법정서게 된 엄마

류인하 기자
pixabay @mohamed 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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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 2월 28일 박모씨(46·여)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으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 남편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리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 남편의 실명, 얼굴이 담긴 이미지를 올려 양육비 지급을 촉구한 혐의다. 지인들에게 배드파더스 사이트 주소가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도 약식기소 사유에 포함됐다. 박씨에게 적용된 범죄혐의는 정보통신망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다. 한마디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보통신망에 공개함으로써 양육비 지급 의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말이다. 이 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박씨 부부는 2018년 5월 조정이혼했다. 법원은 박씨가 두 아들을 양육하되 전 남편이 두 아들에게 각각 100만원씩 총 200만원을 매달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전 남편은 2019년 3월부터 3개월간 양육비 600만원을 주지 않았다. 박씨의 급여만으로는 수험생인 두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박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지만 전 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박씨는 배드파더스에 전 남편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게재하며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다. 전 남편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알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가 피고인이 된 과정이다. 현재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남편의 신상정보 게시글은 내려진 상태다. 전 남편은 박씨를 고소하면서 3개월치 양육비를 모두 지급했다. 현재까지도 양육비를 밀리지 않고 보내고 있다.

이제 박씨가 벌금 200만원만 납부하면 이 이야기는 끝나는 것일까. 박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일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라며 “내가 여기서 벌금 납부를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기에 법원 판단을 본 뒤 정식재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배드파더스 소송

검찰은 경찰이 이 사건을 송치한 지 5개월 뒤 약식기소했다. 5개월 동안 경찰에 추가 수사지휘를 했다거나 박씨에 대한 검찰 피의자 조사는 없었다. 그 사이 배드파더스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수원지법은 지난 1월 14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57)와 전 부인의 개인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게시하고 SNS에 비방글을 올린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모씨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렸다. 구씨에게는 무죄가, 전씨에게는 벌금 5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항소심은 수원고법에서 진행된다. 박씨는 전씨의 사례와 유사하다고 볼 수는 있다. 1심도 전씨는 유죄가 맞다고 봤다. 수원지법 사건이 일종의 ‘전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배드파더스 소송이 향후 유사사례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1심 변호인단과 배드파더스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 전원 무죄평결을 끌어냈던 변호인단 중 일부가 사임했거나 그럴 예정이다. 구본창 대표는 3월 12일 전화통화에서 “소송에 참여한 홍지혜 변호사가 지난 2월 4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인재 영입으로 가게 된 것과 관련해 언론인터뷰를 했던 것이 변호인단 사이에서 문제가 됐고, 내가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 아빠들을 상대로 양육비 추심활동을 하는 것을 두고 변호인단과 이견이 생겨 1심 변호사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배드파더스는 ‘나홀로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구 대표는 “어쩌면 패소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의 조력 없이 구본창 대표가 검찰을 상대로 항소심 재판을 이길 수 있을까.

사실적시 명예훼손, 풀지 못할 숙제일까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하는 죄를 말한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도 존재한다.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언뜻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내가 당한 피해를 사실 그대로 SNS에 올렸는데 그게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건 어딘가 불합리해 보인다. 이혼한 배우자가 악의적으로든, 불가피한 사정에서든 양육비를 주지 않고, 양육자가 법적으로 밟을 수 있는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버틸 경우 사인(私人)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주면 감사하고,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게 양육비 소송이기 때문이다.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가 지난 1월 14일 수원지방법원 앞에 서 있다./권도현 기자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가 지난 1월 14일 수원지방법원 앞에 서 있다./권도현 기자

배드파더스는 엄밀히 말해 법의 경계선에 있는 단체다. 현행법상 양육비를 주지 않은 ‘나쁜 부모들’의 얼굴과 이름, 현재 직업이나 출신학교 등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범죄요건을 구성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했다고 모두가 처벌받는 건 아니다. 죄를 깨부술 수 있는 유일한 공략법은 ‘공익성’, 즉 ‘오로지 공익을 위해’한 행위여야 한다. 양육비 소송은 철저히 개인 간에 이뤄진다. 부부가 아이들을 두고 벌이는 법정 다툼이다. 사익을 위한 소송이란 얘기다. 여기에 공익성이 있을 리 없다는 게 지금까지 법조계와 사회의 시선이었다. 배드파더스가 ‘나쁜 부모’의 정보를 공개적으로 게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원지법은 배드파더스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는 ‘공익성’이 있다고 봤다. 어려운 말로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다고 본 것이다. 위법성조각사유인 공익성이 인정되면 표면상으로는 범죄성립이 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범죄가 되지 않아 무죄가 된다. 그러나 검찰은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 등에 대한 검찰의 항소장을 살펴보면 첫째, 배드파더스라는 홈페이지명과 게시글에 이미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라는 악의적 표현이 들어가 비방 목적이 있고, 둘째, 신상공개의 기준이 자의적이고, 셋째,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피해에 비해 개인의 신상정보 공개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특히 검찰은 “사인인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설령 공적 관심 사안이라 보더라도 피해자들의 신상정보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왜 양육비를 주지 않을까

검찰이 이들을 법정에 세운다고 해서 양육비 갈등이 사라질 리 없다. 배드파더스에 전 배우자 정보를 올린 사람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 역시 정의라 보기 어렵다. 판결로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했으면 판결문에 적힌 대로 주는 게 정의다. 그러나 여전히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은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내는 사람은 10명 중 3명꼴에 불과하다.

가사사건 전문변호사인 조수영 변호사(법무법인 에스)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비양육친들은 양육비가 아깝다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상담을 해보면 아이에게 돈을 쓰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양육비를 지급해도 양육자가 아이가 아닌 자신을 위해 쓸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양육비직접지급청구나 이행명령신청 등의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으나 실효성 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양육비를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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