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제로섬 게임’, 상대의 승리는 나의 패배… 공약 비슷할 때 위력 발휘하는 ‘네거티브 전략’

입력
기사원문
김문관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조선]
경제학 분석 틀로 살펴본 다양한 선거 전략
선거는 ‘제로섬 게임’, 상대의 승리는 나의 패배… 공약 비슷할 때 위력 발휘하는 ‘네거티브 전략’

2016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선 '새누리당 우세'라는 예측을 뒤엎고 더불어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이 승자가 됐다. 같은 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당선됐다. 선거는 언제나 예측을 빗나가고, 유권자는 언제나 기대를 배반해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선거와 유권자에 대한 전제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됐던 것은 아닐까? '이코노미조선'은 제343호 기획 '선거의 경제학'을 통해 당신이 그동안 몰랐던 '진짜 선거'에 대해 알아봤다. 4년 전과 같이 2개의 선거가 예정된 2020년, 이번에는 어떤 이변이 일어날까. [편집자 주]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경제학적으로 선거를 이기게 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기 때문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도 네거티브(상대 후보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유권자들이 상대 후보를 기피하도록 하는 선거 운동 방식) 선거전이 어김없이 재현됐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사무총장이 4월 7일 국회 현안점검회의에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돈키호테’,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돈키호테의 시종 ‘판초’"라고 비하했다. 미래통합당은 즉각 "모욕과 막말을 늘어놓은 윤 총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반격했다. 미래통합당도 네거티브 선거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박형준 위원장은 같은 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향해 "기름 바른 공 같다"라고 했다. 4월 6일 황교안 대표와 토론회에서 이 위원장이 민감한 질문에 이리저리 빠져나가려는 태도로만 일관했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선거전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이에 대한 이유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학 이론들로 증명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헤럴드 호텔링(1895~1973)은 1929년 발표한 논문 ‘경쟁에서의 안정성(stability in competition)’에서 두 가게가 매장 위치 경쟁을 벌이면 둘 다 중앙에 자리 잡게 됨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바닷가에 있는 가게가 매상을 많이 올리기 위해서는 해변 입구나 끝이 아닌 중간에 위치해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앤서니 다운스(1930~)는 1957년 호텔링 이론을 선거에 적용해 미국과 같은 양당제의 경우 두 당의 선거공약은 중위 투표자(중도층)가 선호하는 것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집권에 필요한 과반수 득표를 얻기 위해 중간 수준의 선호를 가진 투표자를 겨냥한 엇비슷한 공약을 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텔링 이론은 현실적이기는 해도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각각 다른 정치 철학에 기반한 공약의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유권자는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1772~1823)의 ‘비교우위론’에 충실해야 한다. 비교우위론이란 한 나라가 두 재화 생산 모두에 절대우위를 갖는 경우에도 양국이 어느 한 재화에 특화하는 것이 양국 모두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각각의 입장에 차이가 있는 비협조적 게임이지만, 정합(포지티브섬·positive sum) 게임이므로 두 나라는 FTA를 통해 각 나라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선거는 승자가 독식하는 비협조적 영합(제로섬·zero sum) 게임이다. 상대의 승리는 곧 나의 패배를 의미한다.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비교우위가 아닌 절대우위를 강조해 중도층을 장악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호텔링 이론에 따르면 후보들의 공약이 비슷하므로 공약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차별화가 어려울 때 위력을 발휘하는 전략이 바로 상대의 부정적 측면을 공략하는 네거티브 전략이다. 실제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한 후보가 페어플레이한 후보를 이긴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건 한국의 2002년 대선이다. 당시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대선 후보는 아들 병역 문제로 수많은 네거티브를 당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했다. 다른 후보들이 제기한 네거티브가 이후 거짓으로 판명됐지만, 선거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특정 후보가 네거티브를 선택했을 때 다른 후보가 페어플레이를 선택하면, 그 결과는 특정 후보의 승리와 상대방의 패배로 나타난다는 게 경제학적 결론이다.

제21대 총선을 앞둔 4월 7일 한 공원에서 유권자들이 각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성장률 높으면 여당이 이긴다는 ‘정치적 경기순환론’

‘정치적 경기순환론(political business cycle)’도 미국을 중심으로 사례가 증명된 이론이다. 이는 집권당은 적어도 선거 전에는 경제 문제 탓에 표를 잃는 일을 피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돼 선거를 앞두고 경기가 호전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윌리엄 노드하우스(1941~)가 창시했다. 이는 미국의 사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1960년대 이후 치러진 14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가 있는 해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임기 첫해보다 높았을 경우 집권당이 모두 승리했고, 반대의 경우는 집권당이 모두 패배했다.

한국은 어땠을까. 2007년 대선 당시 GDP 성장률은 5.5%로, 참여정부 임기 첫해인 2003년 2.9%보다 높았으나 여당이 대패했다. 당시 세계 경제가 과열에 가까운 호황을 보였지만 우리 경제가 원화 강세 정책과 강력한 부동산 규제 등으로 세계 경제의 호황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된 탓이다. 사실상 경제 정책 실패가 선거 패배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적 경기순환론은 반복되는 선거와 경기순환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유효한 이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월 30일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유명 제과점 ‘성심당’에서 투표 참여 빵을 선보였다.

선거를 합리적 경제 주체의 장으로 본 ‘공공 선택론’

‘공공 선택론(public choice theory)’도 고전적인 이론이다. 고전 주류 경제학에 등장하는 경제 주체들처럼 선거를 앞둔 인간을 합리적·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하면서 정부를 공공재의 생산자로, 유권자를 공공재의 소비자로 간주하는 것이 공공 선택론의 기본 가정이다. 공공 선택론은 스웨덴의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1851~1926)이 1896년에 제시한 이론에 근거한다. 이전의 행정학이 정책 결정자들이 공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어떤 노력을 통해 공익을 실현할지, 실현해야 할 공익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면, 공공 선택론은 소비자인 유권자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자들 역시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이기적 경제 주체라고 전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행동한다.

이후 대표적인 공공 선택론 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1919~2013)은 ‘비용극소화모형’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행위자가 이기적·합리적 인간이라면 가장 바람직한 정책 결정은 정책 결정에 드는 비용을 극소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비용을 극소화하기 위한 최적의 참여자 수를 찾는 방법론이 그가 만든 모형이다. 그리고 이는 논란이 큰 사안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 공론화 과정에 여전히 쓰이고 있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선거의 경제학] ①행동경제학으로 바라본 선거
[선거의 경제학] ②’노벨경제학상’ 로버트 J.실러 예일대 교수 인터뷰
[선거의 경제학] ③경제학 분석 틀로 살펴본 다양한 선거 전략
[선거의 경제학] ④여론조사는 왜 항상 빗나갈까
[선거의 경제학] ⑤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인터뷰
[선거의 경제학] ⑥돈이 좌우하는 선거판
[선거의 경제학] ⑦선거에 영향받는 경제·산업
[선거의 경제학] ⑧<인포그래픽> 경제 공약으로 본 선거

[김문관 이코노미조선 기자]




[네이버 메인에서 조선비즈 받아보기]
[조선비즈 바로가기]

chosunbiz.com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섹션분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