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대사 SNS는 왜 기자들의 ‘필수 방문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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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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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공개하지 않는 사안 종종 게시 / ‘콧수염 논란’에서 보듯 가끔 주관적인 견해도 드러내



일요일인 지난 19일 오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올린 직후 이 소식을 알리는 기사들이 여러 언론사에서 동시다발로 쏟아졌다. 한국 공군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를 미국에서 추가로 도입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공군은 행여 북한을 자극할까봐 글로벌호크 기체가 국내에 인도된 사실을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았다. 글로벌호크는 F-35 스텔스 전투기와 더불어 한국이 보유한 첨단 무기 중 북한이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대상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최근 SNS에 올려 이를 본 국내 언론사 다수가 기사화한 한국 공군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사진. 해리스 대사 트위터 캡처
그런데 이를 주한 미국 대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당장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언론사는 ‘군(軍)은 쉬쉬하는 글로벌호크 도착, 해리스 대사가 알렸다’ 등 제목을 달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일 외교가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의 SNS는 외교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수시로 찾아가 확인해야 하는 ‘필수 방문지’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청와대나 외교부·국방부 등은 굳이 알리지 않는 외교안보 관련 ‘고급 정보’를 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호크의 한국 도착 소식이 대표적이다.

그가 잠시 한국을 떠나 본국인 미국에 머물던 지난달 초 워싱턴DC에서 이수혁 주미 한국 대사와 만나 감자탕이 주된 메뉴인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코로나19 대응 문제를 논의한 것도 그렇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 정부가 한국발 입국자를 차단할지,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금지할지 등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때였다. 그런 시기에 주한 미국 대사와 주미 한국 대사가 만나 코로나19 대응에 관해 의논한 것 자체가 제법 뉴스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는데 오직 해리스 대사의 SNS을 통해서만 국내에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폴 나카소네 국장(육군 대장)의 방한 소식을 해리스 대사가 SNS로 알린 건 곧바로 여러 언론사에 의해 비중있게 기사화됐다. 나카소네 국장은 방한 기간 한국의 정보기관 수장들과 만나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협력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국내 어느 기관도 그의 방한 소식을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해리스 대사는 가끔 ‘뉴스’가 아닌 자신의 ‘견해’를 알리는 데에도 SNS를 적극 활용하는 듯하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문재인정부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 일각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됐을 때가 대표적이다. 반미 성향의 일부 시민단체는 콧수염을 기르는 그의 습관을 문제삼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총독 같다”고 비난했다.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부근에서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을 하나씩 뽑는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에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콧수염을 부각시킨 사진을 여러 차례 SNS에 게재했다. 콧수염 기르기는 자신의 개인적 취향일 뿐이고 한·미 관계 등 외교 현안과는 전혀 무관함을 항변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주한미군사령부가 “인건비로 지급할 돈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한국인 근로자 대부분에게 무급휴직 실시를 통보한 지난 1일에는 갑자기 6·25전쟁 초반 미8군사령관으로서 한국군과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고 결국 한국에서 목숨을 잃은 월턴 워커(1889∼1950) 장군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해리스 대사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양국이 옥신각신하던 시기 한·미 군사동맹의 상징적 인물인 워커 장군을 거론한 것 자체가 한국 정부를 향한 ‘무언의 압박’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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