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된 도시에서

로마 시대에 지어진 베로나의 아레나. 오페라 공연도 열린다.
로마 시대에 지어진 베로나의 아레나. 오페라 공연도 열린다.

◇ 바르샤바를 떠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니 돈의 가치가 달라졌다. 프라하에서 묵었던 디스카운트 프라하 호텔은 2박 요금이 아침밥 포함 15.6유로였다. 6인실 도미토리였지만 부엌이 있어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편했다. 잘츠부르크에선 아예 호스텔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숙소를 잡을 때 기준은 무료 주차와 최저 가격. 거기에 부엌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오케이. 짤츠부르크에선 그 기준이 아예 통하지 않았다.

결국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1인실 조식 포함 50유로. 부킹닷컴 어플로 검색한 최저가. 일반 가정집 다락방인데 비싸지만 50유로가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친절하고 깨끗하고 주변 경관이 정말 아름다웠다. 문 열고 나가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페페가 놀고 있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것보단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의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르고 있을 것 같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짤츠부르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잘츠부르크에선 경치 좋은 가정집 다락방에 묵었다. 여행 중 최고의 숙소였다.
잘츠부르크에선 경치 좋은 가정집 다락방에 묵었다. 여행 중 최고의 숙소였다.

어쨌거나 여행을 떠난 후 처음 누려보는 호사였다. 지금껏 1인실은 한 번도 묵어보지 못했다. 만약 캠핑 장비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알프스 주변이나 북유럽에선 캠핑장을 이용했을 텐데 사고로 사이드박스를 잃어버린 후유증이 크다. 사이드박스가 완전히 깨져버려 그 안에 있는 캠핑 장비를 모두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텐트 치고 자는 재미를 빼앗겨 버린 슬픔보다 경비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린 아쉬움이 더 크다.

짐을 풀자마자 시내 구경에 나섰다. 대중교통 이용하기 애매한 곳에 숙소가 있어서 그냥 걸어서 다녔다. 걸은 거리만 20킬로미터쯤 될 듯하다. 프라하에서 새벽에 일어나 400킬로미터를 달려오곤 쉬지도 않고 종종거리며 시내 구경하고 돌아왔더니 파김치. 모차르트 생가, 미라벨궁, 기타 등등, 서점 세 곳... 그냥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잘자흐 강변에 앉아 쉬며 어디를 가볼까 지도를 보는데 바로 근처에 아우구스티너 맥주 양조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 참이었다. 아우구스티너 양조장에서 맥주를 마신 건 두고두고 술자리 자랑거리가 될 듯하다. 사실 맥주를 어떻게 사 마시는지 몰라 한참 헤맸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맥주의 역사는 1621년에 시작되었지만 현재 양조장 건물은 1912년에 지어졌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양조장 내부.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양조장 내부.

건물 밖 넓은 정원은 오후 3시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로 가득 찼다. 관광객을 제외하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이곳 양조장은 우리로 치면 오래된 막걸리 술도가 같은 거겠지. 실내 홀과 야외 정원까지 합치면 2천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잘츠부르크 여행은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서 저민 소시지와 샐러드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신 걸로 충분히 만족.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 매장에 들러 박스를 고정할 스트랩을 구입했다. 박스 지지대에 금이 간 걸 뒤늦게 발견했다. 미리 묶어두지 않으면 나머지 박스들까지 떨어져버릴 수도. 이제 드디어 이탈리아로 넘어가 라이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달려보길 꿈꾸는 돌로미티 패스를 달린다.

 

잘자흐 강이 흐르는 잘츠부르크 전경.
잘자흐 강이 흐르는 잘츠부르크 전경.

◇ 라이더의 꿈, 돌로미티 패스를 달리다

돌로미티를 달리고 싶다고 일기에 썼던 게 2017년 9월 22일.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잘츠부르크를 출발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 펠버 타우에른 터널을 지나 돌로미티 산맥을 넘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에 왔다. 돌로미티의 산들은 장엄하고 박력이 넘친다. 깎아지르고 우뚝 솟은 산들을 보노라니 탄탄한 근육을 뽐내는 옛 신화 속 영웅들인 듯싶다. 미로처럼 꺾이고 숲으로 하염없이 들어가는 길을 달리다보니 신화의 한 페이지를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 황홀했다. 눈부신 만년설, 청량한 공기, 비를 흠뻑 맞으며 급경사를 돌아나갈 때의 아찔함까지…. 오랫동안 잊지 못할 테다. 돌로미티를 넘는 경험은 유라시아 횡단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해도 좋겠다.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아쉽다.

 

고풍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고풍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베로나에 온 것은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고모가 계신 프랑스 니스까지 가야하니 베니스로 들어가면 니스가 멀어지고 밀라노까지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중간에 있는 베로나를 선택했다. 베니스나 밀라노에 비해 덜 유명한 탓에 오히려 북적이지 않고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베로나 아레나(원형극장)는 로마시대에 지어져 지금도 오페라 공연이 열린다.

베로나에 도착했을 땐 여름 오페라 페스티벌이 시작되어 준비가 한창이었다. 광장 한쪽에 스핑크스와 이집트 상징물들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아이다’가 무대에 올려질 듯했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건물이 아직도 굳건하다는 것도, 거기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럽다. 이미 토대가 있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것과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건 격차가 크다. 작게나마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하기 일쑤인 것들을 말해보아야 무슨 소용이겠나. 베로나 골목 구석구석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대 로마에서 현재까지 시간과 역사가 중첩된 공간이다. 이탈리아의 이름난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겠지. 옛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도시의 매력을 풍성하게 한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양조장 마당엔 맥주와 소시지를 즐기는 사람이 가득했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양조장 마당엔 맥주와 소시지를 즐기는 사람이 가득했다.

◇ 이탈리아 남자의 매력, 패션 감각과 ‘리액션’

흔히 말하는 이탈리아 남자의 매력이란 바로 이것인가, 숙소 주인 아저씨를 보고 느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에 호텔리어 수준의 상차림은 기본(혹시 전직 호텔리어였을까). 매력의 핵심은 공감 능력이었다. 손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데 ‘리액션’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이게 얼마나 어려운가.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아저씨의 모범을 본 듯하다.

베로나에서 니스로 넘어오는 길은 약 450킬로미터. 제노아에서 니스까진 지중해를 왼쪽으로 끼고 달린다. 잘 닦인 해안길이 아니라 험한 산을 뚫고 계곡에 다리를 놓아 연결한 도로다. 터널과 다리를 각각 200개씩은 지났을 듯. 고속도로가 끝날 쯤 통행료가 꽤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40.5유로를 계산했다. 이탈리아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식이 우리와 같다. 100킬로미터에 10유로의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한때 유행했던(지금도 유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중해풍’ 원조를 달리면서 곁눈질로 보았다. 이건 그 마을 전체가 색과 스타일을 공유해야만 매력을 가지는 듯하다. 주변 경관과 상관없이 지중해풍 건물을 짓는다면 우리네 환경에선 튀기만 할 뿐 쉽게 어울리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옅은 황톳빛 기와와 벽체로 마감했는데, 지중해의 푸른빛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녹색을 중화시키는 색이었다. 바다와 땅과 숲을 공간과 색으로 표현한다면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을 표본으로 삼으면 되겠다.

 

돌로미티 패스는 모든 라이더들이 달려보고 싶어 하는 길이다.
돌로미티 패스는 모든 라이더들이 달려보고 싶어 하는 길이다.

집을 떠난 지 43일 만에 드디어 프랑스 니스 고모댁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인지 모르겠다. 니스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 막혀 꽤나 힘들었다. 음

악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었다. 시내가 밤늦도록 북적북적. 고모부, 고모와 니스 해변에서 맥주도 마시고, 골목길에서 열리는 음악 공연도 잠시 구경했다.

고모부께선 니스 경찰서에서 무료 통역 봉사활동을 하신다. 도착한 날 렌터카를 빌려 니스를 찾은 한국 관광객들이 차에 둔 짐들을 도둑맞아 통역을 도와주러 가셨는데, 도둑이 차 유리를 깨고 짐을 몽땅 훔쳐갔다고. 렌터카로 여행하는 경우 무조건 트렁크에 넣어야 한다. 가능하면 트렁크가 있는 렌터카를 빌리는 게 나을 듯. 그리고 차를 빌릴 때 파손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