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의 책’이 있다.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큰 힘이 돼 주는 고마운 ‘벗’,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나침반’, 때로는 잊고, 놓치고, 지나쳐온 것들을 깨우쳐주는 소중한 ‘지침서’….

 구구절절 읊기에 끝이 없을 정도로 책은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안명옥(61)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에게도 ‘인생의 책’이 있다. 30대에 그 책을 처음 만났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든 그 책을 남겨뒀다. 손이 닿는 곳에는 늘 그 책이 있다. 마음이 지치거나 괴로울 때, 어려울 때나 힘들 때 늘 그와 함께했다. 가히 100번은 읽고도 남았을 그 책.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선물해 주는 그 책.

 안 원장이 주저 없이 선택한 자신의 애장 도서는 바로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다.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와 인천문화재단이 협력 사업으로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 도서전’ 열여덟 번 째 명사로 그를 만나 인생의 책에 대해 들어봤다.

 # Amo=I love=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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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원장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조교수로 일하던 1990년대에 책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를 처음 접했다. 그에게 이 책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다.

 "원제목인 ‘Call to Love’는 ‘사랑에의 소명’이란 뜻인데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일생일대의 고민이었기 때문이죠."

 ‘안명옥’과 ‘사랑’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이름 석 자의 영어 이니셜은 ‘AMO’, 이 단어는 라틴어로 ‘I Love(사랑한다)’라는 뜻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름대로 사랑에 관한 많은 고민을 해왔다.

 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라에 대한 사랑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에 끊임없이 생각했다. 자신의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참된 나 자신을 찾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행복 찾기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행복한 삶은 단 두 개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입니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집착하지 않고 참되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당신이 당신 자신일 수 있도록,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자신의 방식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자유롭게 놔두는 것, 그것 안에서 오직 사랑은 싹을 틔울 수 있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자유와 행복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이 식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차가워진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야 했다. 다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디든, 언제든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꼭 붙잡고 살아왔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위해 똑같은 책 두 권을 가져왔다. 하나는 1999년에, 다른 하나는 2006년에 출간된 책이다. 두 책은 표지도 달랐고 크기도 다르다. 가격도 각각 5천 원과 7천 원으로 차이가 났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그건 검정 볼펜으로 책에 그은 빽빽한 밑줄이었고 책을 대하는 그의 열정적인 마음이다.

 #‘만화광’ 소녀 안명옥에서 ‘작가’ 안명옥까지

 그는 인천시 중구 항동 1가 2번지에서 태어났다. 옛 영국영사관 자리, 현 파라다이스호텔이 있는 곳이다.

 그는 뛰어놀기에도 바쁜 3살~4살 때 한글을 깨우쳤다. 만화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였다. 임창의 「땡이」 시리즈부터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유리가면」 등을 즐겨 읽었다. 동네에서는 유명한 ‘만화광’으로 소문이 났다. 그의 열성에 어머니는 조그만 책장을 만들어줬고 곧 책장에는 만화책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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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줄을 서서 만화책을 빌려갔다. 친구이긴 하지만 모두 그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다. 그는 도서관처럼 출납기록을 남겼다. 책을 누구에게 빌려줬고 언제 빌려줬는지 또 언제 가져왔는지를 정리했다.

 만화책으로 시작된 책읽기는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됐다. 동화책, 소설책, 무협지, 추리·역사소설, 위인전, 문학전집 등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60권짜리 세계문학전집 중 단 한 권만 빼놓고 다 읽었다. 당시에 읽지 못했던 책은 「역경」이었는데 너무 어려워 나중에야 읽을 수 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서점에서 살다시피 했다. 경동사거리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박문서점’, 그곳은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그의 어머니의 ‘해주고녀(고등여학교) 후배’가 운영하던 서점이었다. 동시에 그의 친구 집이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서점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그곳에 있는 책을 다 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책은 좋은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독서습관은 커서도 계속됐다. 대학생 때도 1주일에 2권 씩 책을 읽었다. 의사가 돼서도 심지어 당직을 선 뒤 집에 가서 잠을 청하지 않고 곧장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깔깔 거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의 못 말리는 ‘책사랑’은 ‘읽기’에만 그치지 않고 ‘쓰기’까지 확장됐다. 지금까지 그가 쓴 책은 만화까지 합해서 26권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만화가협회 스토리작가로 등록도 돼 있다.

 그가 수많은 저서와 강연, 그리고 삶으로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사랑’, 그리고 ‘자유’라 말한다. ‘사랑하며 살다가 자유롭게 가고 싶은 영혼’이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건 바로 사랑"이라며 "앞으로도 드 멜로 신부의 가르침대로 마음껏 사랑을 주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성경말씀처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연꽃은 연꽃대로 장미는 장미대로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다 다르니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껴주는 사랑, 그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인천시민 여러분들도 ‘받는 사랑’에만 멈춰서 있지 말고 ‘주는 사랑’에 동참해주길 바랍니다."

 # 앤소니 드 멜로 신부

 드 멜로 신부는 가톨릭 신자인 안 원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1931년 인도 봄베이(Bombay·현 뭄바이·Mumbai)에서 태어난 그는 인도 푸나(Poona)에 있는 사다나(Sadhana·진리에 이르는 길) 사목 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18년 동안 피정 지도와 기도 연수, 영성치료 프로그램 운영과 영성 지도자 양성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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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98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갑자기 떠나기 전까지 다수의 책과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적 깨달음을 전파했다.

 드 멜로 신부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깨어나십시오!」, 영성 수련을 위한 「샘」, 동·서양의 주옥같은 이야기를 묵상한 「개구리의 기도」, 불교 이야기부터 러시아 이야기와 힌두 이야기까지 영적성장을 키워주는 「종교 박람회」 등을 펴냈다.

 드 멜로 신부의 책은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특히 그의 명성은 영어와 스페인어권에서 자자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고 그를 찾은 이유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사랑은 물론 연민이 그의 삶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드 멜로 신부는 저의 영성적인 부분을 채워준 분"이라며 "그의 책 40여 권을 전부 읽으면서 어떤 것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프로필

 2014∼현재 제3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2009∼2013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장

 2004∼2008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989∼2004 차병원 산부인과 과장, 차의과학대학교 산부인과·보건복지대학원·대체의학대학원 교수

 1998 UCLA 보건대학원(보건학박사)

 199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의학박사)

 198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의학석사)

 1979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학학사)

 1973 인일여자고등학교

 1970 인천여자중학교

 1967 박문초등학교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사진=홍승훈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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