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2시 반경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고 적힌 팻말을 든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쳤다. 뉴욕에서는 나흘째 시위가 열렸다.
지난달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31일 현재 수도 워싱턴, 로스앤젤레스(LA)를 포함해 140개 도시로 확산됐다. 이 중 워싱턴, LA 등 40개 도시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미네소타, 텍사스 등 최소 15개 주에는 수천 명의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이후 이렇게 많은 지방정부가 동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오후 9시가 넘어 어둠이 깔리자 시위는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NYT에 따르면 오후 10시경 유니언스퀘어에서 이리저리 흩어진 시위대 중 일부가 쓰레기통에 불을 질러 화염이 2층 높이까지 솟구쳤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딸인 키아라 더블라지오도 지난달 29일 집회에 참여해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그는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워싱턴도 어둠이 내리자 전쟁터로 바뀌었다. 오후 10시 반경 백악관 주변 건물에 화염이 일고 헬리콥터가 날아다녔다. 오후 11시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오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약 500명의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백악관 주변 기념품 상점 건물은 욕설과 분노를 표출하는 낙서로 가득 찼다.
시위대와 시민 간 충돌도 발생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활과 화살을 들고 차량 밖으로 나와 시위대를 겨냥했다는 이유로 집단 구타를 당했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마체테(날이 넓은 긴 칼)를 휘두른 남성이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미니애폴리스 외곽 고속도로에서는 트럭 운전사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돌진시키는 일도 있었다.
경찰과 시위대도 곳곳에서 충돌했다. 전날 뉴욕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공원 인근에서는 경찰차가 바리케이드를 밀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대학생 2명에게 전기충격기를 사용하고 차에서 끌어내린 애틀랜타 경찰관 2명은 이날 면직됐다.
반면 일부 경찰관은 시위대에 동조하고 있다. 뉴욕 퀸스와 미주리주 퍼거슨 등지에서 경찰관들이 시위대와 함께 한쪽 무릎을 꿇고 플로이드 씨를 추모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CNN 등이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욕 유니언스퀘어의 시위대들은 다닥다닥 붙어 연설을 들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마스크까지 벗고 소리를 질렀다.
뉴욕=박용 parky@donga.com / 워싱턴=김정안·이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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