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
소설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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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지 않는 사회 한 달 전쯤이던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곳에서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낯선 곳이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휴대폰에 있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늦은 저녁 갑자기 휴대폰이 고장 났다. 그다음 날 만나야 할 담당자들 모두의 연락처가 휴대폰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장소와 시간뿐이었다. 다행히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로 지도에 접속해 찾아가야 할 곳의 위치와 그곳에 가기 위해 이용해야 할 교통수단 목록을 일일이 메모하였다. 도보 이동 구간이 제법 있는 게 문제였다. 지도는 평면이라 그 거리의 풍경을 알 수 없었다. 위성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사진만으로 10분 이상의 거리를 유추하기 쉽지 않았다. 그 거리는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에 내렸을 때, 나는 또 당황하고 말았다. 어디에도 택시 승차장 표시가 안 보였다. 역사를 중앙에 두고 몇 겹의 도로가 나이테처럼 둘려 있는 곳이었다. 그 도로의 어디쯤에서 차를 타야 할지 알 수도 없거니와 오가는 택시도 없었다. 어쩌다 지나가는 택시는 모두 ‘예약’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나도 택시를 호출하고 싶었으나 휴대폰이 없었으므로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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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저문다, 질문과 답변이 사라진 한 해가 연말이 가까워진 까닭인지 요즘 ‘페이스북’에서는 나이 인증 놀이가 한창이다. 주로 자기가 살아온 시절을 이야기하는 걸로 정확하게는 ‘늙음’을 인증한다. ‘늙음’이 무슨 자랑이라고 인증을 다하느냐 싶을 텐데, 사실 ‘늙음’이야 웃자고 하는 표현이고 그보다는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놀이에 더 가깝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귀한 기억이 대접을 받는 법이고, 그런 기억이야 세월을 더 오래 거슬러 갈수록 많으니 나이 많은 이가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대신 ‘국민학교’를 다닌 정도는 기본이고 태어나보니 대통령이 이승만이었다는 분도 있으니 ‘학력고사’가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세대는 어린 세대 취급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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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편지의 생명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 상태이다가 지난해부터 인문학 잡지를 만드는 팀에 프리랜서 형태로 합류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일을 하려니 쉽지는 않았지만 주위에 여러 도움이 있어서 곱이곱이 잘 넘어오는 중이다. 무엇보다 다시 일을 하게 된 설렘 때문에 과정상의 고단함은 아무런 불편도 되지 않는다. 새로 시작한 일이 책을 만드는 것이라 종종 우체국에 간다. 이런저런 자료를 필자나 그 밖의 관계자들에게 보내기 위해서인데, 크기와 무게에 따라 어떤 때는 택배로, 어떤 때는 우편으로 접수가 된다. 며칠 전엔 제법 많은 책을 보내야 했는데, 등기로 보내겠다고 했더니 빠른등기와 보통등기 중 선택하라고 했다. 빠른등기는 다음 날 도착하고, 보통등기는 3, 4일 정도 걸리는데, 요금에 제법 차이가 있어서 보통등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우편물 도착 알람이 그다음 날 바로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보통등기도 하루 만에 도착하네’ 했는데, 아니었다. 몇 통의 도착 알람이 울리다 멈추고 다음 날 다시 알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몇 통. 처음엔 도착 장소가 제각각이라 그러나 싶었는데, 도착순서와 거리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혹 보통등기란 기간을 정하지 않고 도착하고 싶을 때 도착하는 우편이란 뜻이었던 걸까. 그 모든 우편물이 거의 다 도착한 즈음에도 여전히 울리지 않는 알람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했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보낸, 같은 물건이 저마다의 속도로 세상 속을 움직이고 있다는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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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나는 버킷리스트 같은 건 쓰지 않으련다 추석연휴에 TV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멕시코의 명절을 소재로 가족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족 간의 만남을 자제하고 차례나 추모도 온라인으로 대체하자던 명절이었는데, 그 와중에 공중파에서 편성된 애니메이션이 죽은 자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 추모하지 않으면 그들이 명절에도 가족을 만나러 이승에 올 수 없고, 그렇게 반복되어 잊히면 저세상의 영혼마저 영영 소멸한다는 내용이라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모임 자제 권고를 내린 이들에게 항의하는 건가, 아니면 그 권고를 따른 이들을 비난하고 꾸짖기 위한 편성인가 싶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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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언제까지 학생·교사만 고군분투해야 하나 이틀 전 아침 한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태풍이 올라오는 중임에도 1위부터 20위까지가 대부분 ‘자가진단’이었다. 온라인수업의 첫 번째 일과가 자가진단인데 할 수가 없단다. 갑자기 왜? 아이에게 물었더니 사이트 체크가 앱 체크로 바뀌면서 오류가 생긴 것 같다고 한다. 달라진 내용이 있느냐 물으니 다른 건 모르겠고 시간이 체크된다고 했다. 이전 시스템은 체크 시간이 기록되지 않아 전날 자정 이후에 체크해서 보내놓는 학생들이 있었던 모양. 단지 시간을 확인하려고 시스템을 바꿨다는 건가? 사전 고지도 없이?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온라인수업 이래 교육부의 업무 방식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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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당한 순간보다 그 후가 더 힘들다 최근 몇 년 마른장마가 계속되더니 그동안 하늘이 물을 가두어두고 있던 것처럼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린 비로도 이미 33년 만의 가장 긴 장마라고 하는데, 기상청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도 일주일은 더 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일주일 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을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한강 가까운 곳에 오래 살아서 몇 번의 물난리를 만났다. 홍수로 불어난 물을 건너본 적도 있다. 엄마가 남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있었으니 내가 네댓 살, 언니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였다. 폭우가 쏟아지고 골목 사이를 흐르던 물이 콸콸 넘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개울처럼 높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물이 어린 내 무릎을 넘어 허벅지 정도 차오르는 상태였다. 물살이 셌지만 강도 개천도 아닌 주택가 골목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업은 데다 손에 짐이 있어 어린 세 자매끼리 손을 잡았다. 그렇게 꼭 잡고 천천히 건너면 건널 수 있는 정도의 폭이었다. 그런데 둘째언니가 중간에 겁을 먹고 그만 손을 놓았다. 엄마를 잡겠다는 거였는데, 그대로 물에 휩쓸렸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골목 모퉁이 집 대문이 열리면서 우산을 든 중년 남자가 걸어 나온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문을 연 그는 골목을 떠내려가는 아이를 보았고, 반사적으로 우산을 뻗었다. 그 우산을 언니가 잡은 건지, 그 남자가 내민 손잡이에 언니가 걸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언니는 그 우산을 잡고 급류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비가 오면 종종 그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는 우산을 잡았을 때의 안도감보다 물을 건널 때, 손을 놓쳤을 때의 공포를 더 강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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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연대, 그저 우두커니 함께 고기를 자르느라 새 칼을 꺼내 썼는데, 며칠 후에야 그 칼날이 일부 부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고기를 자르던 날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후로 다시 쓰지 않았던 칼이다. 싱크대에서도, 마루에서도 부러진 칼날을 본 기억이 없었다. 칼을 보관하는 블록에도 당연히 없었다. 대체 그 칼날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불안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내가 자른 고기 안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이미 여러 날 닦고 훔친 마루 어딘가에 보란 듯이 여전히 남아 누군가를 벨 준비를 하려는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을 어쩔 방법이 없어 결국은 칼을 버리기로 했다. 냉동된 것도 아니었는데, 고작 고기 한 덩어리를 써는 힘도 이기지 못한 칼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런 이유를 붙였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찾지 못한 칼날에 대한 불안일까, 제 역할을 못한 칼에 대한 분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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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 사랑’에 아이를 맡기지 마라 집에 가면 개 줄에 묶여 있다던 아이를 알고 있다. 열다섯 살이었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 아이는 머리도 짧게 깎였는데, 잘렸다고 해야 할지 뜯겼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가출을 세 번인가 네 번인가 하고 난 후였다. 아빠에게 맞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했다. 웃으면서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몸에 있는 몇 군데 멍을 보여주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그 정도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이라고만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냥 또 실실 웃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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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자신을 책임지는 세계로의 첫발 어려서 두통이 심했다. 어지럼증 같은 거였다. 잘 크고 잘 놀고 잘 지내다가 한 번씩 세상이 핑그르르 돌았다. 부모님이 동네 소아과에도 데려가 물어보았는데, 이런저런 질문 몇 개 던지고는 괜찮다, 별 이상 없다, 크느라 그런다고만 했다. 무안한 마음으로 일어나 나오면 또 세상이 한 바퀴 혼자 돌았다. 나 혼자 크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어지럽나. 나는 이렇게 어지러운데 왜 의사는 나를 멀쩡하다고 하나. 혼자 답답해하고 있으면 편들어주듯 코피가 흘렀다. 하루는 동네 교회에 의료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료 봉사단이 어떤 건지는 몰랐지만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와서 무료로 진료를 해준다는 말은 알아들었다. 여러 분야라고 하니 머리를 보는 의사도 있겠지. 큰 병원에서 온다고 하니 내 머리를 낫게 해줄지도 몰라. 무료라니 혼자 가도 되겠지. 나는 그들이 온다는 날을 기억했다가 교회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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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내 곁의 이웃이 더 밀려나지 않도록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과 땅이 차례차례 막히더니 급기야 전 세계 어디든 재난 지역 아닌 곳이 없고 그리하여 명령이나 강제 조치 없이도 이동이 제한된 상태에 놓였다는 걸 깨닫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비약하면 폐소(閉所)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건 사실 우스운 일이었는데, 우습다고 말하는 건 가사 노동자이자 재택근무 글쓰기 노동자인 나의 생활반경은 원래도 대부분이 집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멀리 움직인다 한들 시장이나 마트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 달리 극단의 이동제한 조치가 없으니 마스크와 소독제만 철저히 준비하면 시장이나 마트는 지금도 갈 수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와 모든 시간 및 장소를 공유해야 하고 그로 인해 부가적으로 발생한 돌봄의 시간은 예외적인 어려움이지만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고, 이 사태로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이들에 비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되는 예외다. 그러하니 생각해보면 아, 어디로 떠나고 싶다, 는 바람이나 이곳이 아닌 저곳에 닿아보겠다는 작정 하나를 품을 수 없게 된 것뿐인데, 그 마음 하나가 그렇게 크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삶이 닿을 수 있는 구획이 이전보다 좁아졌으니 폐소는 폐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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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온라인개학, 공교육의 책무와 교육 불평등 사이 역사상 최초의 온라인개학이 다가왔다. 아직 개학 전이지만 이미 학교마다 여러 방법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혼돈이다.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이 없어 현재의 온라인개학은 사용 가능한 모든 포털 사이트에서 내 준 한 칸 교실을 요령껏 잡아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마저 학습터에 입장하지 못하는가 하면 교사의 학습 영상과 자료가 사라지는 상황도 생긴다.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공지와 안내도 백지에 가깝다. 겨우 안내받은 시간표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똑같은 시간표에 형식만 온라인수업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6, 7교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하루 종일 스마트기기만 마주하고 앉아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수업시수를 줄이고 강의와 과제 제출 등 여러 형식을 섞은 시간표는 불가능했던 걸까 싶지만 짧은 시간 안에 온라인수업을 준비해야 했던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만큼도 버거운 일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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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신천지와 ‘종교다움’ 작금의 신천지 사태처럼 신흥종교 혹은 유사종교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어떻게 그런 이상한 교리와 말도 안되는 개인에 대한 숭배에 빠질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이 그들이 이론과 포교 방법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증명한다. 그들의 이론을 종말이나 구원 혹은 영생불사 같은 한두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런 종교의 교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라. 종말, 구원, 영생불사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교리에 얼마나 많은 인문학과 과학을 촘촘히 논리적으로 심어놓았는지 말이다. 그 교리를 배우며 그들은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유대감과 친밀감도 주고받는다. 지도자에 대한 믿음은 사실 가장 나중에 생겨난다. 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함께 속한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이들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을 나도 따르겠다는 결속력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