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박원순·안철수의 하루’

장은교 기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5)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 6일 두 사람의 움직임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두 사람은 일정을 비밀에 부친 채 전화와 e메일로 연락하며 움직였다. 오후 4시 기자회견장에 동행하고 나서야 기자들과의 쫓고쫓기는 숨바꼭질이 끝난 긴 하루였다.

■ 5일 밤 박원순 설악산에서 하산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박 상임이사는 5일 오후 8시쯤 설악산 마등령에서 종주를 끝내고 하산했다. 그는 원래 10일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닷새나 당겼다. 안 원장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문제를 매듭짓고, 7일 오전에 발인하는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 위해 일찍 귀경한 것이다. 5일 오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하산한 박 상임이사는 동행한 일행이 출마 여부를 묻자 “글쎄 잘 모르겠네”라며 깊은 침묵을 지켰다.

박원순 이사가 지난달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 ‘원순씨의 희망일기’ 제공

박원순 이사가 지난달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 ‘원순씨의 희망일기’ 제공

■ 오전 11시43분 자택 나선 안철수

안 원장은 6일 오전 11시43분쯤 여의도 자택을 나섰다. 전날 밤부터 집 앞을 지키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는 “(박 상임이사를) 오늘 만날 수 있을지, 내일일지 잘 모르겠다” “연락을 받기로 했다. 한 시간 전에 장소를 알려준다고 했는데…”라고 비켜갔다. 기자들의 눈을 따돌리려는 듯 전날 저녁 하산한 박 상임이사에 대해 “산에서 내려오셨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때까지도 안 원장은 출마 가능성을 “50 대 50”이라고 밝히고 “e메일만 받았으니 실제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들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시민사회계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 시간 안 원장의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전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안 원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이제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이 6일 오전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원장이 6일 오전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오전 7시23분쯤 먼저 집을 나선 안 원장의 부인 김미경 교수는 “출마 관련해 언급이 없으셨느냐”는 질문에 “그런 거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김 교수 역시 갑작스러운 관심에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상당히 피곤한 듯한 얼굴이었다.

■ 낮 12시 박원순, 이소선 여사 빈소에

박 상임이사는 하산 후 첫 공식일정으로 이소선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수척해진 몸에 수염이 텁수룩하게 얼굴을 덮은 ‘야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이 여사의 아들인 전태삼씨의 손을 잡으며 “산에 있다 와서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딸인 전순옥씨는 “어머님과 박 변호사님은 1980년대부터 인연이 있었다. 저희 어머님이 모든 것을 변호사님과 의논하셨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박 상임이사는 “재래시장이라든지 전태일 열사가 사셨던 곳들을 어떻게 한번 서울시의 명소로 만들어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아름다운 삶 사셨습니다. 좋은 세상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빈소에서도 박 상임이사의 출마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고은 시인이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이라고 하자 그는 “뭐 이렇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과거는 그렇고 미래는 어떻게 되냐”고 묻자 “사람 인력으로 되겠나. 지금까지도 저는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했고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면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많이 야위셨다”는 주변의 말에 “6㎏이 빠졌다. 소고기 10근 정도다. 벨트를 중간에 다 잘라냈다”며 “제가 산신령이 다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따라붙자 박 상임이사는 인사동 낙원상가 앞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취재진을 따돌린 뒤 택시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 오후 2시 박원순·안철수 회동

박 상임이사와 안 원장은 오후 2시 서울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안 원장과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46), 박 상임이사와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53)만 단출하게 함께했다. 박 상임이사가 먼저 10분 정도 서울시장 출마의 포부를 밝혔고, 출마 의지를 확인한 안 원장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분 만에 결론이 났다.

두 사람은 내내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하며 비밀리에 움직였다. 원래 두 사람은 이날 저녁 또는 7일 오전 만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만남을 오후 4시쯤으로 앞당겼다가 다시 오후 2시로 당겼다. 특히 안 원장이 빠른 만남을 청했다고 한다. 박 상임이사 쪽은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거친 뒤, 출마 기자회견문 작성에 들어갔다. 안 원장은 만남 직전 안철수연구소 측을 통해 오후 4시 기자회견 때 입장을 밝히겠다고 알렸다. 박 상임이사의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한 측근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원래 8일 오전에 출마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고 기자회견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워낙 상황이 긴급하게 바뀌고 두 분이 직접 대화를 통해 결정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전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부터)이 6일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범시민야권 단일후보 배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 노무현재단 제공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부터)이 6일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범시민야권 단일후보 배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 노무현재단 제공

■ 오후 3시 박원순·한명숙·문재인 회동

안 원장과 단일화에 합의한 박 상임이사는 오후 3시 마포의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67),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58)과 만났다. 5일 박 상임이사가 한 전 총리를 만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는 뜻을 문 이사장 측에 전해 문 이사장이 주선한 자리였다. 이날 한 전 총리의 출마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30여분의 대화를 통해 세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고 합의했다. 유력 후보인 박 상임이사와 한 전 총리 모두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함에 따라 박 상임이사와 한 전 총리 간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높아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맞이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맞이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오후 4시 ‘안철수 출마 포기’ 회견

오후 4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안 원장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좌석이 준비된 테이블에 홀로 앉은 안 원장은 담담히 “박 이사는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조금 늦게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박 상임이사는 양손을 모은 채 안 원장이 발표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고, 회견을 마친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포옹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