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베로니크 오발데
가족에게 버림받은 딸,
북구의 야성을 간직한 고독한 존재.
이것은 내밀하면서도 환상적인 한 여자의 초상이자,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책 소개
프랑스 문단의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베로니크 오발데
깃털처럼 가볍고 몽환적인 문체로 그린 강렬한 삶의 여정
현실과 환상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로 삶의 이면을 드러내고, ‘적확한 단어의 여왕’이라는 별명다운 촌철살인을 구사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기묘한 우화적 색채로 그려내는 작가 베로니크 오발데. 그녀는 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소설가 중 하나로, 프랑스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난 무국적의 글쓰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는 《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오발데의 소설이다. 《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의 미스터리에 봉착한 남자가 아내의 흔적을 쫓는 과정을 그리면서 ‘과연 삶에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심리소설이었다면, 《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딸이자 강렬한 야성을 지닌 소녀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자신을 속박하는 관계와 환경에서 탈주해 자유로운 존재로 서는 이야기를 그린 한 여자의 일대기이다. 이 소설은 그간 작가가 천착해온 유년기의 상처, 집과 가족을 떠나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가 닿는 여성, 커플 간의 기이한 역학이라는 주제에 소설가의 글쓰기라는 문제까지 환기한, 오발데 문학의 정점이라 할 작품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상상 세계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포르투갈의 거장 안토니오 로보 안투네스의 ‘주술적 글쓰기’를 지지하는 작가답게 《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의 세계는 새로운 상상력, 전형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선형적 내러티브, 리스트나 나열된 단어들만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형식의 장章들, 무심한 시선과 예민하고 섬세한 문장들로 빚어진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는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처럼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한편 낯선 매력으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그리고 그 무중력의 리얼리즘을 통해 작가가 그려 보이고자 하는 것은 운명을 거슬러 분투하는 한 삶의 강렬한 여정과 구원이다. 가장 지독한 절망을 그릴 때조차 오발데의 펜은 깃털처럼 가볍다. 오발데 소설의 백미는 바로 그 기묘한 역설의 아름다움에 있다.
출판사 서평
가족에게 버림받은 딸, 북극의 야성을 간직한 고독한 존재…
이것은 내밀하면서도 환상적인 한 여자의 초상이자,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삶은 행복하다. 그녀는 부유한 관광객들이 가는 레스토랑 테라스 단골석에 앉아 포도주와 노을을 음미하고, 초록색 머스탱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억만장자들의 정원이 이어지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돌아온다. 이건 상상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성공한 소설가다. 그녀는 십대의 나이에 미국 주류 문단에 입성했고, 이제 소설 세 편을 출간한 서른 살의 작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한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삶은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뒤집어진다. 그것은 10년도 전에 떠나온 극지의 고향, 캐나다 라페루즈의 다 허물어져가는 분홍 집에서 사는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다. 어머니는 언니 메나가 아들을 낳아 열 살이 되었으니 데리고 가 이제부터 아이를 책임지라고 한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옛 연인이자 미국 문단의 거물인 클라라문트와 가장 친한 친구 조앤에게 상의하지만 둘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공항으로 향한다. 그토록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극지의 숲으로, 학대와 슬픔의 기억으로 얼룩진 분홍 집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모순적이면서 다층적인 한 여자의 삶을 통해
‘삶/이야기의 진실’ 그리고 소설가의 글쓰기라는 문제를 환기하는 소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는 소설 말미에 가서야 정체가 밝혀지는 화자에 의해 서술되는데, 이 서술자의 위치 때문에 기묘하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띤다. 소설은 2부부터는 갑자기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가족사, 자매들의 끔찍한 유년과 어머니의 학대, 그들의 가난과 비참,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탈주와 분투 등이 시적이고 리드미컬한 문체로 그려지다가, 대학 생활과 조앤과 클라라문트와의 만남, 문단 데뷔를 다룬 3부, 클라라문트와의 결별과 아버지의 부고, 강도 강간사건을 다룬 4부를 거쳐 5부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전지적 시점에 가까우면서도 독자를 위한 과잉 친절을 배제하는 듯 절제된 화자의 목소리는 때때로 이야기 중간중간 자기 목소리를 낼 정도로 과감하고, 한 장 전체를 자신의 소설론을 펼치는 데 할애하기도 한다. 베로니크 오발데는 이 독특한 화자의 입장을 빌려 소설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동시에, ‘삶/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이며, 그 진실이 어디까지 진짜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베일에 싸인 화자의 버전으로 그려지는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가족에게 버림받고도 천형처럼 그 관계를 감내하는 딸, 북구의 야성을 지닌 고독한 존재이자 거장의 피그말리온이며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때로는 모순적이면서 다층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다분히 자전적이라 추측되는 이 소설을 통해 오발데는 그간 천착해온 유년기의 상처, 집과 가족을 떠나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가 닿는 여성, 커플 간의 기이한 역학이라는 주제에 더해, 소설가의 글쓰기라는 문제까지 환기한다.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심지어 불한당에게도 제 몫의 은총이 있을 뿐…
“가족을 떠나는 것은 선택이었지만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은 선택이 아니었”기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두고 온 과거를 향해, 덮어두었던 상처를 대면하기 위해 분홍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발데는 어설픈 화해 따위 허락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육체만 노쇠했을 뿐 변함없이 끔찍한 사람이고, 그녀가 죽일 뻔한 언니는 정상적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만날 방도조차 없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제 뜻과는 상관없이, 그러나 숙명에 의해 자신의 분신 같은 조카 필리트를 라페루즈라는 작은 지옥에서 구출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클라라문트의 운전사였던 주디 갈런드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불리던 남자 오즈와 함께 가족을 이룬다.
그러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녀의 삶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예정 없이 끝나기 때문은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는 필리트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발데는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그녀를 괴롭히던 세상에서 벗어나 피난처를 찾았을 뿐,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라고 선언한다. 인류의 이야기/삶이 태곳적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거기에는 행복한 결말도, 저주도 없다. 제목을 통해 작가가 얘기하듯 그저 우리 모두에겐, 심지어 클라라문트 같은 패배자, 표절꾼, 불한당에게도 제 몫의 은총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