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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수출국 韓…코로나백신엔 `개점휴업`

김병호 기자
입력 : 
2020-02-26 17:32:03
수정 : 
2020-02-27 09: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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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엔
신속심사제도로 발빠른 대응

코로나는 까다로운 검증 요구
임상중인 다른 백신 활용 힘들어

식약처는 추가검증 필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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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해외 업체들이 앞다퉈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GC녹십자가 백신 2100만명분을 즉각 출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시 정부는 신종플루 확진자가 75만명에 달하자 신속심사제도를 처음 도입해 GC녹십자가 신규 독감 백신 판매허가를 신청한 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시판을 허용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중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기 국면에 직면했는데도 신속심사를 진행하기 위한 제약바이오 업체 신청이나 정부 요청이 전무하다. 예방 목적 백신은 먼저 시판한 뒤 추후 일부 자료를 제출하거나 다른 의약품에 앞서 심사·허가할 수 있도록 한 게 신속심사제도지만 입증해야 할 임상 결과나 자료 제출 요구가 과도하게 많아 신속심사를 신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자궁경부암 DNA 백신을 개발 중인 A업체는 자궁경부암 백신에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뽑아낸 DNA를 바꿔 넣기만 하면 코로나19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DNA백신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핵심 유전자를 분리해 배양해야 하는 별도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빨리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이 회사는 자궁경부암 임상을 실시하면서 작용기전이나 안전성 등을 파악한 상태라 이를 코로나19에 적용해 신속심사 형태로 진행하면 이르면 6주 내에 백신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같은 신속심사라고 해도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내용은 미국보다 훨씬 많다"며 "자궁경부암 백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물 독성시험을 6~8개월간 요구하는데 이는 사실상 신속심사가 아닌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임상 중인 다른 백신을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료 제출이나 임상 절차가 사실상 면제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속심사를 통해 서류 제출 등을 시판 후로 미룬다고 해서 국민 보건상 모든 의약품을 신속심사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2009년 신종플루 때는 국내 기업이 때마침 새로 개발한 유사 독감 백신이 있어 신속심사를 통해 시판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아직까지 국내외 업체가 식약처에 신속심사를 신청한 건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신청하더라도 유사한 백신의 임상 결과가 어떠한지 등 따져봐야 할 요소가 많다"며 "독감 백신은 상용화된 것이 많아 이를 신속심사에 적용하기 쉽지만 코로나19는 독감과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라 백신 효과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상 사태인 만큼 업체가 코로나19 백신 효과를 입증할 만한 자료로 신속심사를 신청한다면 빠른 상용화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속심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허가 예상 기일은 고무줄이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상 일반 의약품은 신청 후 근무일 기준 115일 내에 품목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임상 승인은 신청 후 30일 이내다. 하지만 식약처가 기업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한 뒤 걸리는 준비 시간은 해당 기간에 포함되지 않아 승인·허가 처리 기간이 임의로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신속심사는 좀 더 빨리 한다는 우선심사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소요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 언제 허가가 나올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백신업체 자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코로나19가 기존 독감과 달라 그동안 개발해온 독감 예방 백신을 응용해 개발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는 사스나 메르스처럼 한때 유행하고 사라지는 변종일 가능성이 높아 기업으로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백신을 개발할 유인도 크지 않다는 진단이다.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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