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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재난 상황... 왜 인간은 마음껏 약탈을 즐기게 될까

[리뷰] 영화 <그린랜드> 우리가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재난 영화

[이학후 기자]

 영화 <그린랜드>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건축공학자 존(제라드 버틀러 분)은 외도를 저질러 아내 앨리슨(모레나 바카린 분)과 별거 중이다.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아들 네이슨(로저 데일 플로이드 분)의 생일 파티를 위해 이웃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TV로 혜성 '클라크'가 지구로 떨어지는 광경을 시청한다.

별 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예상과 달리 세계 곳곳에 떨어진 혜성의 파편들은 삽시간에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미국 정부의 비상대피자로 선정된 존의 가족은 대피소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군기지로 향한다.

할리우드에서 재난 영화가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는 1970년대다. 보잉 항공기에 폭탄이 터져 탑승객이 위험에 빠지는 <에어포트>(1970)를 필두로 초호화 여객선이 전복되는 상황을 묘사한 <포세이돈 어드벤쳐>(1972), 세계 최대의 빌딩에 대형화재가 발생하는 <타워링>(1974), 지진이 캘리포니아 지역을 강타하는 <대지진>(1974), 거대한 비행선의 추락을 다룬 <힌덴버그>(1975), 곤충들의 습격을 소재로 삼은 <스웜>(1978) 등이 차례로 등장해 재난 영화의 유행을 이끌었다.

1980년대엔 침체기에 빠졌던 재난 영화는 발전된 CG 기술로 제작된 <트위스터>(1996)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는 <타이타닉>(1997), <단테스 피크>(1997), <볼케이노>(1997), <딥 임팩트>(1998), <아마겟돈>(1998), <퍼펙트 스톰>(2000), <코어>(2003), <투모로우>(2004), <2012>(2009), <인 투 더 스톰>(2014), <샌 안드레아스>(2015), <지오스톰>(2017) 등으로 이어지며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그린랜드>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그린랜드>는 지구의 3/4을 날려버릴 위력을 가진 초대형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사상 최악의 재난 상황을 그린다. 그런데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설정은 이미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에서 다룬 바 있다. <그린랜드>는 앞선 작품들과 어떤 차이점을 보여줄까? 연출을 맡은 릭 로먼 워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자.

"나는 항상 등장인물의 관점이나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찾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린랜드>는 재난 영화이면서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제작하게 되었다."

릭 로먼 워 감독이 말한 '우리가 사는 이야기'는 두 가지 형태로 영화에 나타난다. 먼저, 영웅이 부재하다. 재난 영화에선 흔히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해 공동체를 구하곤 한다.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도 마찬가지였다. 지구는 헌신적인 영웅의 활약에 힘입어 멸망하지 않았다.

<그린랜드>엔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나오질 않는다.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심지어 출발하는 비행기를 막아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가장이 나올 뿐이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으로서 가족만을 생각하는 존은 실제 재난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에 가깝다.
 
 영화 <그린랜드>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은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초대형 재난 블록버스터답게 엄청난 볼거리를 선보였다. 반면에 <그린랜드>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규모가 소박하기 짝이 없다. 제작비의 차이도 있겠지만, 영화가 재난을 묘사하는 '규모'를 중요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랜드>는 재난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온갖 군상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지구가 종말 위기에 처하자 많은 사람이 생존 본능에 따라 도로에 쏟아진다. 치안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 앞에서 일부는 법과 양심에 억눌렸던 악한 얼굴을 드러내며 상점과 약국을 마음껏 약탈한다. 어떤 이들은 파티를 즐기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는 우리가 종말이 임박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구가 종말 위기에 처하자 각국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선택된 소수를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는 계획을 실행한다. 마치 성경 속 노아의 방주처럼 말이다. 미국 정부의 비상대피자로 선정된 존의 가족에겐 인식을 위한 팔찌가 채워진다.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이 찬 팔찌를 호시탐탐 노린다.

흥미로운 건 존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백인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흑인 또는 중남미계의 미국 이주민이란 사실이다. 이것은 인종 차별적인 묘사를 벗어나려는 할리우드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영화의 노력인 동시에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비판하는 영화의 목소리다.
 
 영화 <그린랜드>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그린랜드>의 시나리오는 <베리드>(2010), < ATM >(2012), <씨 오브 트리스>(2015)를 작업한 크리스 스파링이 썼다. <그린랜드>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 <위플래쉬>(2015)와 함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해당 연도에 발표했으나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들 가운데 제작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목록)에 올라 일찌감치 눈도장을 받았다.

초기엔 <디스트릭트 9>의 빌 블롬캠프 감독과 '캡틴 아메리카'로 친숙한 크리스 에반스로 진행되었던 <그린랜드> 프로젝트는 다른 영화들처럼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엔젤 해즈 폴른>(2019)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추었던 릭 로먼 워 감독과 제라드 버틀러로 완성되었다. 제라드 버틀러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영웅의 이미지가 아닌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분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그린랜드>는 재난 영화로서 일정한 재미는 보장한다. 제라드 버틀러의 연기 변신도 괜찮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란 명성에 걸맞은 독창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다. 예상한 그대로 전개되는 전형성을 벗어나질 못한다. 제작 규모도 작아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린랜드>의 메시지만큼은 와닿는다. 위기에 놓인 인간이 드러내는 이기심과 광기를 이겨내는 힘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연대에서 나온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코로나19를 겪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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