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본 수많은 맛을 그저 스쳐 간 당신에게
‘영화의 맛’을 돌려 드립니다
영화 <만추>(현빈, 탕웨이 주연)의 제작자 이주익이 돼지국밥과 엠파나다에서 떠올린 영화 속 음식의 독특하고 색다른 맛
짜장면, 설렁탕, 막국수에서 엠파나다, 후무스, 뇨키와 카놀리까지,
<변호인><강철비><올드보이>에서 <인터스텔라><대부><아마데우스>까지, 무심히 놓쳤던 달콤하고 얼큰한 ‘영화의 맛’을 즐긴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 추천
매일 먹는 음식도 영화에만 나오면 특별합니다. 별것 아닌 김치찌개, 짜장면, 국수 한 그릇이 영화 속 인물이 먹으면 웃음과 눈물, 질투와 서러움의 음식이 됩니다. 눈으로 느꼈던 감정이 따뜻한 국물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 온몸에 퍼집니다. ‘영화의 맛’은 영화 속 인물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영매입니다. 아지랑이처럼 솟는 얼큰한 냄새, 손끝에 전해지는 따뜻한 그릇의 온기, 살짝 누르는 이에 전달되는 몰캉한 고기의 탄력, 혀끝에 느껴지는 단맛 짠맛 감칠맛.
매일 먹는 음식인데, 영화 속 음식을 먹는 날은 왜 그렇게 다를까요? 그건 바로 영화 속 인물이 밥상에 함께 앉아 먹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맛'이라는 소스를 잔뜩 치고요.
이 책에서는 영화에 나온 ‘그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영화적 맥락과 인물의 성격, 요리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막국수의 시원한 맛을 알아보고, 굶주림을 덜어주던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와 고도 성장기로 이어지는 메밀의 변신, 구황음식에서 별미의 상징, 웰빙의 일상음식으로 진화하는 메밀 요리를 통해 서민들의 식생활도 살펴봅니다.
우디 알렌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00년대의 파리에서 1920년대와 19세기 말의 파리로 시간을 거슬러 이동하는 기발한 상상력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파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와인 시음회를 통해 프랑스 음식과 와인의 매력을 들여다봅니다. 또한 와인이 등장하는 다양한 영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 노스탤지어와 모더니즘의 대비도 섬세하게 살펴봅니다. 프랑스의 교양과 오만함, 미국의 실용과 뻔뻔함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 있는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만두 삼국지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도 알아보고,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중국 음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야근하며 고픈 배나 채우는 배달 음식이 된 사연도 영화 속 인물과 함께 살펴봅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먹던 포장마차의 아시안 누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전혀 낯설지 않은 현실 풍경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설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음식의 맛과 사연을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더욱 애틋하고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실제로 볼 때보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상할 때 더 재미있고 짜릿한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 속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정우는 <황해>에서 왜 감자를 먹었을까
모든 상황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있다. 바로 이 분위기가 ‘영화의 맛’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에는 그에 꼭 맞는 ‘먹는 장면’이 적어도 하나는 나온다. <황해>에서는 경찰에 며칠째 쫓기던 하정우가 한밤중 빈집에 몰래 들어가 하필 ‘감자’를 쪄먹는다. <강철비>에서는 남과 북의 ‘철우’가 한 사람은 비빔국수, 다른 한 사람은 잔치국수를 먹는다. 누가 뭘 먹을까? 남쪽은 비빔국수, 북쪽은 잔치국수를 먹는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 영화는 이런 상상력의 산물이고, 이런 설정은 인물과 상황에 대한 이해와 애정, 그리고 음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바로 이런 ‘영화의 맛’을 저자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끄집어내 영화처럼 실감나게 들려준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김밥천국에서 옆 테이블의 젊은 여자가 주문을 한다.
“여기요, 라면 하구 공기밥 하나 주세요. 라면은 면은 오뚜기 진라면에 수프는 삼양라면 걸로 해주시고, 삼양라면 수프 없으면 신라면 수프 반만 넣어주시고 파는 미리 넣어 푹 끓여주세요. 계란은 풀어서 젓지 말고 그냥 끓여주세요, 국물 탁해지니까. 그리고 공기밥은 접시에 떠서 좀 식혔다가 주실래요? 찐밥이면 공기밥 필요 없고 그냥 김밥 하나 말아주세요. 소시지 빼고 단무지하고 계란, 시금치만 넣어서요. 맛살은 어디 거에요? 오양이면 넣고 아니면 그것도 빼구요. 아니, 오양 맛살 없으면 그냥 오므라이스로 해주세요. 소스 끼얹지 말고 볶음밥을 계란부침으로 말아서 케첩만 접시에 따로 담아 주세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영화의 장면 하나가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북적거리는 뉴욕의 한 델리에서 금발 머리에 통통 튀는 말투의 한 여자. 바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멕 라이언이다. 서울의 분식집에서 뉴욕 델리의 샌드위치를 먹을 수는 없지만, 영화 속 인물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느낌으로 주문을 하는지, 이보다 잘 표현해줄 수 있을까? ‘영화의 맛’은 샌드위치의 맛이면서, 동시에 인물의 성격이고, 상황의 긴장감이고, 장면의 연결이고, 이야기의 숨겨진 의미이고, 감정의 복선이다. 눈으로만 이런 맛일까 짐작하는 게 아니다. 이제는 혀끝에 맴도는 듯하다. 이 책은 ‘영화의 맛’을 이렇게 되살려낸다.
<올드보이>의 군만두 중국집은 찾아낼 수 있을까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사설 감옥에 갇혀 군만두만 먹는다. 그것도 십오년이나. 어느 날 갑자기 풀려난 그는 혀가 기억하는 군만두 맛을 되살려 중국집을 찾아 나선다. 중국집 ‘자청룡.’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는다. 정말 만두를 그렇게 오래 먹었다면 혀가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보고 며칠 후 서비스로 따라온 군만두를 먹다 보면, <올드보이>의 그 설정이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스쳐 간다. 정말 중국집 이름 두 글자와 군만두 맛만으로 중국집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영화적 개연성은 우리 음식의 현재를 감추고 있다. 바로 ‘영화의 맛’이 음식의 맛과 현실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집이 한 곳에서 십오 년을 영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십오 년 동안 같은 맛으로 빚어 판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다른 곳에서 사서 조리해 판다면 그 맛은 분명 달라질 게 분명하다. <올드보이>에서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의 만두맛을 실제로는 느끼기 쉽지 않은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올드보이>를 재미있게 본 사람에게라면 오대수가 십오년 동안 먹었던 만두의 현실적 의미 또한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