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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펀드가 망한 이유

한예경 기자
입력 : 
2017-06-05 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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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드-50] 요즘 여의도에서 회자되는 펀드는 이미 많이 올랐다는 삼성그룹주펀드도 아니고, 앞으로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중소형주펀드도 아니다. 10년 전 지나간 라자드운용의 한국지배구조펀드, 소위 '장하성펀드'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당시 펀드매니저 존리(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와 함께 이 펀드 운용을 도운 장하성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가면서 그의 과거 행적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 2006년 국내 최초의 주주행동주의(액티비스트)펀드로 화려하게 데뷔한 장하성펀드 열풍은 뜨거웠다. 그해 여름 장하성펀드가 매입했다는 소식만으로 대한화섬 주가는 일주일 만에 74%, 태광산업은 64% 뛰어오르면서 시장은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장하성펀드 편입 가능주'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아무 이유 없이 급등하던 시절이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이 펀드가 편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 즉 시가총액 20억달러 미만의 중소형주 180개 종목을 따로 분석해 리포트로 냈을 정도다.

 불과 일주일 전도 들여다보지 않는 증권가에서 10년 전 장하성펀드를 다시 꺼내든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기업지배구조를 지렛대 삼아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은 뭔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이행 사항들을 권고한 모범 규준이다. 그 바탕에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기업에 대한 의결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에 주주들이 그동안 제 몫을 못 찾아먹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바꿔 말하면 기관투자가가 제대로 하면 주주들도 한 몫 잘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당장 이달 초 금융위원회·한국지배구조원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 해설서를 발간하고 자산운용업계가 이를 채택하면 변화의 조짐이 보일 전망이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한 발짝 앞서 나갔다. 연초 만해도 실적 개선, 주가 저평가 등을 이유로 '바이 코리아'를 외쳤던 외국인들은 요즘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 항목에 하나를 더 추가 했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다. 자본시장을 통한 주주권리 찾기에 애써왔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까지 경제사령탑을 맡게 되면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주 몫을 좀 더 두둑이 챙겨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실적이 부진한데도 주가는 오르는 현대차그룹주나 보통주에 비해 현격하게 싼 우선주들이 갑작스럽게 오르고 있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덕분에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찬 목소리도 들린다.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주로 투자하고 있는 유가증권시장 대형주 200~300개 종목에 대해서만 의안 분석에 들어간다고 해도 매년 최소 1000개 이상의 안건을 분석해야 한다. 펀드매니저가 기업가치를 분석하고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면서 의안 분석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이 일을 전담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희망사항은 여기까지. 현실은 좀 다른 얘기가 펼쳐진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대형 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당장 이 분야에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용만큼 다른 쪽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업지배구조를 살리려다 운용사의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얘기다.

 사실 펀드매니저들의 숫자는 이미 줄고 있다. 지난 연말 기준 자산운용사에서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는 586명을 기록해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형 연기금들이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투자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좋은 주식을 골라서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매니저 역량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모펀드의 실적마저 부진해지자 펀드매니저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심지어 로봇이 운용을 대신하는 로보어드바이저마저 늘어나면서 펀드매니저들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장하성펀드로 돌아가보자. 장하성펀드의 화려한 시작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 결말은 모르는 이가 많다. 라자드운용의 한국지배구조펀드는 2006년 6억달러로 출발해 2008년 초 미국 최대 연기금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으로부터 1억달러 투자까지 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주가가 급락하고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2008년 40% 이상 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는 수익률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2011년에는 다시 -19.4%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2012년 보유 주식을 모두 유동화하고 청산의 길을 걷게 됐다.

 이쯤 되면 결론은 단순하다. 주주 목소리를 키우자는 주주행동주의 펀드도 좋고, 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도 좋지만 결국 돈이 돼야 한다. 장하성펀드도 수익이 안 나니 사라진 것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시장은 패시브 투자로 흘러가는데 한국만 액티브 투자, 심지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액티비스트 투자로 역주행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기관투자가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인력을 충원해가면서 액티비스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다. 잘못했다가는 국내 연기금·자산운용사 경쟁력만 갉아먹고 투자자들도 손해나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장하성펀드 2.0이 나타나려면 이 펀드가 왜 실패했는지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한예경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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