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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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90년대 섹시 댄싱 퀸으로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김완선이 돌아왔다. 그녀는 40대 초반,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변함없는 모습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김완선.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매니져었던 친이모와의 불화설 등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1990년대 여가수 최초로 앨범 판매 100만 장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던 김완선. 그녀는 섹시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관능적인 춤으로 당시 남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해 ‘지난 이야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리듬 속의 그 춤을’ 등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크게 히트하면서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쓴 그녀는 당시 헬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과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2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팬들과 연예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 후로는 간간이 활동을 했을 뿐 방송과는 인연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홀연히 하와이로 유학을 떠났다가 6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정이라도 한 듯, 지난 4월 중순 MBC-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과거의 이야기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김완선이 그동안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실들을 조목조목 정리했다.

김완선, 나를 둘러싼 루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나이를 속이고 활동했다
1986년 데뷔 당시 스무 살라고 알려졌던 김완선. 하지만 사실은 데뷔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고. 당시 시대 분위기상 10대라고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아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속였다는 것. 때문에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자리를 피해 다녀야 했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1988년 3집 앨범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로 활동할 때는 “19세에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라는 가사가 너무 민망해서, 무대에 오를 때면 항상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고 밝혔다.

#2 ‘닦’이라고 쓴 여가수, 내가 아니다
오랫동안 김완선을 따라다녔던 루머 중에 하나가 바로 ‘닦’이라는 글자다. 당시 KBS-TV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에 출연했던 김완선이 정답을 적는 과정에서 ‘닭’을 ‘닥’이라고 적었다가, 수정을 요구하자 ‘닦’이라고 고쳐 썼다는 루머다. 이에 대해 김완선은 “닭 관련 루머에 대해 나도 알고 있다”며 “내가 닭띠다. 만약 자료가 있다면 보여달라.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자료는 없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회를 맡았던 이계진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사건은 사실이지만, 김완선씨가 아니라 다른 가수”라고 밝혀 김완선의 억울함을 깔끔하게 풀어줬다.

#3 1992년 은퇴 발표, 모두 거짓이었다
한창 가수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인기를 누리던 1992년, 김완선은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가요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김완선은 이 사건이 매니저이자 이모였던 고 한백희씨가 꾸며낸 거짓이었다고 했다. 김완선은 이모가 홍콩 진출을 계획하면서, 그냥 떠나는 것보다 쇼킹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며 친한 기자와 기획해 은퇴를 결정했다는 것. 당시 김완선은 은퇴 발표를 하면서 그 누구보다 많이 울었는데 슬퍼서 운 게 아니라, 거짓말한 것이 괴로워서 울었다고 한다.

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4 매니저였던 고 한백희씨, 친이모 맞다
고 한백희씨는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다가 인순이를 발굴해 가수로 키워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매니저다. 김완선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그녀는 김완선의 친이모라고 한다. 하지만 평소 한백희씨가 김완선에게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 때문에 ‘친이모가 아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이에 대해 김완선은 “이모가 무섭고 엄했지만, 24시간 나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라며 세간의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5 13년 동안 한 푼도 못 받았다
김완선은 1986년 데뷔 이후, 13년 동안 매니저로 일했던 이모 한백희씨와 결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충격적인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바로 13년 동안 일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완선은 “이모가 차라리 그 돈을 자신에게 썼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고 한백희씨는 2006년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응급실에 갈 때마다 돈이 없어서 김완선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는 “그러기에 나한테 진작 돈 좀 주지…”였는데, 이모는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이모는 세상을 떠났고, 김완선은 마음속에 쌓인 앙금을 끝내 풀지 못했다고 한다.

#6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불행했다
김완선은 연습생 시절, 이모의 집에서 약 7년 동안 감금된 생활을 했다며 믿을 수 없는 과거를 털어놓았다. 하루 종일 노래와 춤 연습으로 일과가 빡빡했다며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매일 죽어라 연습만 했다는 것. 데뷔한 후에도 모든 것은 이모의 뜻대로 움직였다고.

“옷, 신발, 머리, 화장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이모가 관리했고, 인터뷰도 이모가 대신했으며 심지어 음악 선택도 모두 이모가 했어요. 3집 때부터는 이모의 아바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때문에 톱스타가 됐어도 김완선은 전혀 행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자 가수들하고 사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신 적이 없었고,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부러웠을 정도로 굉장히 불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7 지금은 가수를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김완선은 지난 2005년 ‘리턴’을 발표한 후, 이듬해 하와이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 대학에서 디지털아트를 전공하고 유화도 배웠다. 갑작스럽게 유학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김완선은 “그동안 인생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많은 것들을 정리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하와이의 자연 덕분에 이모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오랜 공백기를 가지면서 결국 내가 할 일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쉬지 않고 평생 노래하고 싶어요.”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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