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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이면 당연히 져서 조선은 멸망한다
멸망은 청에 의한 병합이다
항복이라도 하면 속국이 되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2
다 쓰러져가는 한족 명에 대한 사대가 어찌보면 어리석은 짓이다
한족 명의 중화사상에 입각해서만 만주족 청이 오랑캐이지 조선입장에선 오랑캐가 아닌
같은 동이족이며 숙신계열의 같은 단군신화룰 공유한 같은 단군의 자손이다
청 황실의 성은 애신각락 즉 신라를 사모한다란 뜻이다
이는 청의 조상이 신라의 왕족이란 뜻이며
신라가 고려에 병합당할시 마의 태자는 고려에 귀부안하고 만주로 건너가 그의 후손들이 부족을 이루어 번성했고 누루하치가 훗날 여진족 전체를 만주에서 통일 청을 건국했다
어차피 조선은 유학중심의 명에 대헌 사대모화 사상만 아니면 청과 같은 형제이며 명을 적으로 두는 게 당연하다
애신각라 신라룰 사모하다 이런 뜻이
청나라 황제의 성씨인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3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이론적으로 평소 지지했다 볼수 있다
4
유학의 맹자의 사상적 통치이념은 왕도정치이다 왕이 중심인 패도정치가 아닌
민본 즉 백성중심의 통치이념이다
백성이 근본인 맹자의 왕도정치에 충실한 것이다
5
단순한 자존감으로 주전파들은 전쟁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중국 한족인 명의 중화사상으로 동이 동쪽의 오랑캐라 만주족을 비하하는 관념에 어리석게도 몇백년 동안 길들여진것 뿐이다
역사적기록에도 공자가 조선은 동이라 일컬었다
중국 한족들이 조선을 동이라 비하함에도
불구허고 오직 중국한족울 숭배하는 사대근성 때문에 자신들은 동이가 아닌 소중화 조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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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2016 사회, 정치 분야 지식인
국민기초생활보장 6위, MS엑셀 77위, 운영체제(OS) 20위 분야에서 활동
2019.11.13.
주전론 주화론 차이점 및 비교
구분 | 주전론 (척화(斥和) | 주화론 (주화(主和) |
| 명은 우리에게 부모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진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도 모두 황제의 덕분이었습니다. ……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구차하게 생명을 보전할 수는 없습니다. 병력이 미약하여 정벌에 나서지는 못하였으나 차마 이런 시기에 어찌 다시 화의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 현재 국력이 고갈되었고 오랑캐는 군사력이 매우 강성합니다. 정묘년 때의 맹약을 지켜서 몇 년이라도 화를 늦추고 그 사이에인정을 베풀어 민심을 수습하고 성을 쌓고 군량을 저축해야 합니다. 또 방어를 튼튼히 하고 군사를 모아 일사불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 우리에게 최상의 계책입니다. |
중심세력 | 김상헌(金尙憲)을 비롯한 척화파 | 최명길(崔鳴吉)을 위시한 주화파. |
외교노선 | 친명배금 | 현실외교 |
성격 | 화의 명분론 | 민생안전 |
핵심논제 | 1명나라 멸망 새로운 세력인 후금(청)의등장으로 기회포착 전쟁승리 가능성 제기 2.정묘조약 불평등 조약이므로 페기하고 승리한 다음 재채결하여야 한다는논리 3.명나라 청나라 혼란기이므로 북벌로 종속관게 단절
| 1.명이 약해지고 있으니 명을 도우면 결과적으로 청나라로부터 압력을 벗어 날수없다는것 2.현재 국력으로 전쟁 수행은 불가하다는논리 3.전쟁보다 화평으로 사대 교린정책이 실질적이다란 점 |
강제성과 명분론 | 명분론 주전론자는 단지 성리학에 찌든 명분에 의리 효 충이란 민중에 아무 쓸모없는 명분에 집착하여 전쟁을 하자는 명분론 일종에 학자들의 정치가들의 자기기만입니다 백성이 임금이 어떻게 되든지 혹시나 후세 사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 할는지 미래를보고 미리 간판을 내걸어둔 자기기만이고 명분론입니다 | 강제성 최명길의주장은 현실적으로 보아 대적할 만한 군사력 국력이 비교할수없어 차라리 화평을 하자는 논리입니다 일단 화평 훗날을 도모한다는 가장 현실적 선택입니다 대적하면 여지 없이 국가기반이 망한다는 현실론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박한 현실론이고 현실 정치이고 현실적 선택 |
양세력의주요논리 | 김상헌의 논리 조선은 위화도 회군(1388년) 이후 친명정책을 썼고, 임진왜란 때도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소생할 수 있었으니 , 명나라의 원수인 청나라는 곧 우리의 원수라는 것이었다. 혹여 우리 조선이 망할지라도 명과 의리를 잃어버리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하다는 것이었다. | 최명길의 논리는 위명도 좋고 대의명분도 좋지만 우선 우리나라를 보존하고 나서 할 일이지 명분을 위해 백성을 어육(魚肉)을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나라부터 지키고 나서라는 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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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병자호란의 발발
인조반정의 가장 큰 명분 중의 하나는 친명반청(親明反淸)이었습니다. 광해군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도덕적 가치’를 내세운 정권답게 광해군의 중립외교 대신에 명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도덕외교를 구사했고, 이는 결국 1627년인 인조 5년 정묘호란으로 일어났습니다. 정묘호란으로 후금과 조선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습니다. 최명길은 이 시기부터 후금과의 화친을 주장하였습니다.
최명길의 주화론의 근거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못하고 경망하게 큰소리를 쳐서 오랑캐의 노여움을 도발하여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낼수없게되면 그허물이 이보다클수가 있겠습니까?현재우리의 국력은 바닥나있고 오랑캐의 군세는 강성합니다.종묘호란에 맺은 약속을 지켜서 몆년이라도 화를 늦추시고 군량미를 모아 방어를 더욱 튼튼하게 하되 군사를 집합시켜 일사분란하게 하여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계책일 것입니다. -최명길
최명길은 이런이유로 주화론을 펼친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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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