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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병자호란에관한숙제최명길김상헌
최명길이랑김상헌조사숙제에요!최대한빨리부탁으려요20분까지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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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2.08 조회수 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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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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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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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

#강사 #복지관

한국사 12위, 한컴오피스 36위, MS워드 29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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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과 최명길은 모두 서인(西人)으로 광해군 때부터 벼슬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정치적 성향은 이 때부터 차이가 있어, 최명길은 현실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김상헌은 명분과 의리라는 성리학의 원칙에 충실하였다.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인조반정 (仁祖反正)에서도   최명길은 적극 참여하여 功臣이 되었으나, 義理를 중시한 김상헌은 가담하지 않았다.

   

병자호란이라는 국가 위기를 당하여도 두 사람은 의견을 달리 한다. 김상헌은 명(明)나라에 대한 명분과 의리를 지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랑케 淸나라에 항복하는 것이나, 그에 맞서 조선이 지는 것이나 조선이 망하는 것은 같다라는 논리이었다. 明나라를 배신하고 청에 항복한다는 것은 삼강오륜을 다 무너뜨리는 것으로 본 것이다.

 

 최명길은 우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살아 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선화후전론(先和後戰論)이었다. 단순히 목숨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종주국으로서의 明에 대한 의리를 잊지는 않는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평가는 일단 유보하자. 여기서 나의 불만은  왜? 의리와 명분의 대상이, 기준이  명(明)나라이어야 했는가? 이다.  이것도 유보하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약소국이었으니까....

 

  병자호란과 같은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에서  " 죽을지 언정, 굴복은 있을 수 없다 "는 김상헌과

"굴복을 할지라도, 살아야만 한다"는 최명길.... 두사람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지만, 누가 옳았다고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의 발로이었슴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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