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와 내통했다는 혐의는 순전히 반정명분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인조도 중립노선을 유지하려 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바보가 아닌 이상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당시로서 주전론은 완전히 현실을 무시한 명분론에 불과하다는걸 모를 사람이 없었지요. 비현실적이라는걸 알면서도 정치적 필요에 의해 주전론이 언급된거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조 정권도 내부적으로야 정치적 발언의 성격으로 반청 노선조의 언급이 오갔지만 실제 외교적 행보는 가급적 명VS후금 사이에 말려들지 않으려 햇습니다.
조선을 방문했던 청나라 사신이 조선내 반청 분위기에 놀라 야반도주하고 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내부에서야 주전론이 횡횡했지만 사태 수습을 위해 청나라에 즉각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넘어가기도 전에 병자호란이 발발했지요.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광해군이 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와 내통했다는 혐의는 강홍립이 사르후 전투에서 패하여 투항한 사건에 대한 곡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사르후 전투에서 무능한 명군 지휘관들의 삽질로 인해 명군 조선군 할거 없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패했는데요, 이 패장들이 돌아와 조용히 반성하고 패전 책임을 져야함에도 그거 모면해볼려고 패전 책임을 엉뚱하게 만만한 조선군 탓으로 돌리는 거짓부렁을 한게 발단입니다.
이 패군지장들은 조선군이 싸우지도 않고 후금에 항복해버리는 통에 진영이 무너저 패했다고 주장했던겁니다. 조선군 지휘관들은 죄다 전사하거나 살아남은 이들은 후금에 포로로 억류되엇으니 조선으로선 정확한 진상파악을 해서 반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였지요.
정확한 진상파악이 안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결국 온갖 억측에 근거한 음모론이 나돌았는데 그것은 광해군이 강홍립에게 싸우지 말고 후금군에 투항하라는 밀지를 주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즉 광해군이 사전에 후금과 짜고 명을 패퇴시킬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거죠.
이 음모론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광해군 반대파들의 신뢰(?)를 얻어내 마치 정설처럼 믿어져 버렸습니다. 급기야는 무려 반정명분에 이를 포함시켜 공식화 했던겁니다.
201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