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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최명길과 김상헌에 대해 질문합니다.
hu**** 조회수 8,909 작성일2005.10.06

최명길과 김상헌 두 인물의

1)관력(이력). 무슨 관직을 어느 년도에 맡았는지 년도까지 상세히 적어주시면 ㄳ

2)사회,정치 활동

3)저서

4)사건(활동,주장),행적

5)시대배경

 

이렇게 5가지로 나뉘어서 질문하려고 하는데 대답해주시면 ㄳ하겠습니다.

특히 4),5)인 사건,행적,그당시 시대배경등 자세히 써주시면 더더욱 ㄳ하겠습니다

 

내공 무지 많이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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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k****
고수
한국사, 근로기준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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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력

 

최명길(崔鳴吉) : 1586 - 1647,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 또는 창랑(滄浪), 본관은 전주

             시호는 문충(文忠), 영흥부사를 지낸 기남(起南)의 아들, 공조판서 내길(來吉) 동생,

              도원수 장만(張晩)의 사위,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외손자, 이항복(李恒福)의 문인,

             1605년 생원시 장원, 문과 병과 급제, 승문원 부정자,전적,병조좌랑 역임

             1614년 파직,

             1623년 인조반정 주도세력으로 가담, 정사1등공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이조참판, 비변사 유사당상, 부제학, 대사헌 역임

             1627년 정묘호란때 화의 주장, 경기감사

             1631년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원종추존시 찬성 입장, 공서(功西)

             1635년 이조판서, 호조판서

             1636년 이조판서, 병자호란때 화의 주장

             1637년 우의정, 좌의정

             1638년 영의정

             1642년 영의정

 

김상헌(金尙憲) : 1570 - 1652,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본관은 안동,

             시호는 문정(文正), 도정 극효(克孝)의 아들, 대효(大孝)의 양자, 우의정 상용(尙容)의

             동생,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외손자, 윤근수(尹根壽)의 문인

              1596년 문과 병과 급제, 승문원 부정자, 부수찬, 좌랑, 부교리

              1601년 제주안무어사, 고산찰방, 경성판관

              1608년 문과 중시 급제, 호당 선발, 정언,교리,응교,직제학, 동부승지,광주부사 역임

              1613년 계축옥사 때 안동으로 낙향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조참의,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 역임

              1626년 성절사로 명나라 왕래, 예문제학

              1631년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원종추존시 반대입장, 청서(淸西)

              1635년 대사헌, 대사성, 대제학, 공조판서, 형조판서 역임

              1636년 예조판서, 병자호란때 척화 주장

              1637년 안동 낙향

              1639년 청나라로 압송되어 6년간 억류됨

              1645년 좌의정, 영돈녕부사 역임

 

2. 사회, 정치활동

    최명길은 인조반정이 1등공신으로서 인조의 신임을 받은 인물로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모두 화친을 주장하였음, 당시에도 화친을 하는 것은 매국노 취급을 받았으나

    현실적으로 승산이 없는 전쟁임을 인정하고 화친을 주장하였음,

    인조가 아버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고 할때에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찬성하였음. 다만, 당시에는 이것을 왕에 대한 아첨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음

 

    김상헌은 호란시 일관되게 척화를 주장했는데 당시에는 명분상 유리한 입장이었으므로

    많은 선비들이 추종함, 정원군의 추존에도 반대하였음

 

3. 저서

    후손이 편찬한 지천집, 청음집이 있음

 

4. 사건, 행적 : 위와 동일

 

5. 시대배경

    당시 중국은 명,청의 교체기에 있었으므로 조선에서도 의논이 갈림

    최명길 등 주화파는 현실적으로 조선의 국력이 약함을 고려하여 청나라와 화친을

    하자는 입장이었으나,

    김상헌 등 척화파는 임진왜란때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여 명분을

    강조함

 

    후에 최명길의 손자인 최석정(崔錫鼎), 최석항(崔錫恒) 등은 소론(少論)의 중심인물이

    되고,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항(金壽恒), 증손자인 김창집(金昌集)은 노론(老論)의 중심이

    되어 자손에 이르기까지 대립했음.

 

 

 

 

                   

             

200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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