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하드록의 미래…`게이트 플라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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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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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브락-166] 벌써 10년이 가까운 오래전 일이다. 졸업한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지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 '박○○'를 지하철에서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그 시절 록음악을 많이 듣던 친구 중 하나였다.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데 그쳤던 나와 달리 그는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 1등으로 들어와 입학식에서 학생 대표로 선서를 했던 친구였다. 늦은 밤 졸업한 지 한참 만에 만난 친구는 술을 한잔 걸쳤는지 한껏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마도 그가 CD를 선물로 준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한 밴드인데 정말 실력이 뛰어난 밴드라며 "꼭 들어보라"는 말과 함께 가방에서 CD를 꺼내던 모습이 생생하다. 오늘 CD의 주인공들 "공연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CD를 집에 가져온 뒤 한참 동안 꺼내보지 못했다. 한참 동안 기억에서 잊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후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들며 허겁지겁 CD를 찾은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2011년 여름부터 가을을 강타했던 록 경연 프로그램 '톱밴드'가 방송된 이후였다.

이 프로그램은 쉽게 말해 '슈퍼스타K'의 '밴드 버전'이었다. 한국의 숨은 록밴드 고수를 방송에 불러모아 경연을 통해 기량을 선보이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취지에 맞게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춘 밴드들이 속속 문을 두드렸다. 여기 나온 '게이트 플라워즈'란 밴드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당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는다. 그들은 자작곡 'F.M'을 들고 나온다.

게이트 플라워즈 /사진=매경DB
당시 방송 화면을 보면 보컬 박근홍의 묵직한 샤우팅에 "도대체 얘네는 뭐지?"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심사위원 신대철의 얼굴이 잡힌다. 기타 염승식이 느낌 있는 솔로를 연주할 때 신대철과 또 다른 심사위원 남궁연의 표정은 압권이다. "이런 밴드가 세상에 있었느냐"며 심사를 포기하고 감상을 하는 느낌이다.

연주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 반응은 더 이상 표현을 찾기 힘들 정도의 극찬이었다. 남궁연은 "사운드가 너무 안정되어 있고, 연주하는 매너까지 좋으시다. 이참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섭외를 힘을 모아서 해드리는 게 나을 정도로 너무 잘했다. 한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심사할 수 있는 팀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말주변이 없는 신대철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오늘 보여준 퍼포먼스는 최고였다"는 말로 심사평을 대신한다. 그렇게 톱밴드 예선을 통과한 그들은 톱밴드 4강까지 올라가며 밴드 음악에 굶주린 록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고등학교 동창에게 받은 앨범은 그들이 톱밴드 예선 서류를 내기 직전 만들었던 EP앨범이었다. 엄청난 음악이 담긴 앨범을 선물받았으면서 그 진가를 몰라보고 서랍 한쪽에 쌓아둔 것이었다.

그들은 톱밴드에 출현하기 전인 2011년 초 세 차례에 걸쳐 단독 공연을 펼쳤는데 평균 20여 명이 공연에 와줬다고 한다. 팔려나간 앨범은 약 200장. 그러니 그 친구는 당시 공연에 갔던 관객 20여 명 중 하나였고, 200장가량 팔린 EP앨범 중 하나를 나에게 선물한 셈이었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2005년에 처음 결성돼 우여곡절을 거치다 2008년 재결성한 밴드다.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한국의 펄잼, 한국의 사운드가든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블루지한 느낌을 기반으로 강렬한 하드록을 선보이는 밴드다. 박근홍은 베이스 성종을 타고났는데도 성대를 잘 갈고 닦아 허스키한 샤우팅을 내는데 특화된 보컬이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에서는 쉽게 예상하기 힘든 강렬한 샤우팅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왼손 기타리스트인 염승식은 '한국의 지미 헨드릭스'로 불릴 만큼 재능 있는 기타를 선보인다. '찐팬'을 보유한 기타리스트다. 다수 기타리스트가 그의 블루지한 톤과 느낌 있는 연주를 극찬한다. 전인권밴드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 드러머 양종은은 드러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베이스 유재인은 이장혁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고 '앨리스뮤직'이라는 레이블 대표라고 한다. 드라마 '하늘벽에 오르다'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톱밴드 출현 이후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을 기회를 얻었다. 워낙 장안에 화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최고 히트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 예선에 나가는 기회도 얻었다(더원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는 실패한다).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에도 신대철과 함께 나갔고 '세계를 흔들어라 K밴드 영국 진출기'란 프로그램에 섭외돼 영국까지 날아가 투어를 하기도 했다.

2012년 5월 말 첫 앨범도 내고 2014년 5월에는 또 한 번 EP앨범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앨범은 생각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이후 '게이트 플라워즈'로 활동은 뜸하다. 박근홍은 ABTB(Attraction Between Two Bodies)란 밴드(이 역시 극찬을 받는 밴드다) 보컬로, 염승식은 솔로 활동명 조이엄으로 종종 얼굴을 비친다. 베이스는 로맨틱펀치(추후 소개하기로 한다)의 객원 베이스로 주로 활동한다.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모여서 활동할 것이란 뜻을 밝히고 있다.

사실 게이트 플라워즈는 (물론 그들의 탁월한 실력 때문이지만) 나름대로 '뜨기 위한' 기회를 많이 부여받은 편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대중의 흥행 측면에서 볼 때)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금 그들이 헤어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건 한국에서 정통 하드록 밴드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하드록이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10년이 가까워오는 게이트 플라워즈와의 '소소한 해프닝'을 지금에서야 굳이 꺼내는 것은 (음악을 듣는 청자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이 같은 한국 풍토가 상당히 아쉬운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려준 곡 중 가장 인상적인 곡 하나만 꼽으라면 그들이 톱밴드 경선에서 들려준 'Purple Haze'를 꼽고 싶다. 전설적인 음악인이자 그들 멘토였던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의 곡 '미인'에서 기타리프를 차용하는 센스까지 보여준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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