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이 미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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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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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장애인의 이민은 엄격히 제한했다. 뉴욕 이민국 심사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몸'을 가진 것으로 입국이 제한됐던 프로테우스 스타인메츠는 키 작은 곱추 남성이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심사를 통과한 그는 훗날 2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세계적 과학자로 이름을 알린다. 1921년 마르코니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한 뒤 동료 과학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스타인메츠.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이다.


책은 미국의 장애 역사를 풀어놨지만, 한국으로 대입해 읽어도 무방하다. 개척, 자유, 자치를 따라온 미국의 역사는 ‘독립은 좋은 것, 의존은 나쁜 것’이란 특유의 서사를 만들어냈고, 몸의 세계를 둘로 갈랐다. 온전한 시민의 자격을 갖춘 ‘능력 있는 몸’과 퇴행적 결함을 지녔다고 낙인 찍힌 장애인의 몸이다.

미국은 시민에서 탈락한 장애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흑인들은 사망 시 보험금이 그들의 몸값보다 높다는 이유로 바다에서 버려지거나, ‘폐품 노예’로 불리며 헐값에 팔려나갔다. 미국 대법원은 인지장애나 뇌전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민이 되기 부적합하다며 강제단종수술을 명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차별과 배제에 연대와 포용으로 맞섰다. ‘능력 있는 몸’에 끼지 못했던 여성과 흑인들과도 손 잡고 투쟁했다.

장애의 역사ㆍ킴 닐슨 지음ㆍ김승섭 옮김ㆍ동아시아 발행ㆍ360쪽ㆍ1만8,000원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의존’은 나쁜 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가치라고. 미국의 공동체와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건 '의존하는 존재들'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시민과 비시민,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정의는 권력과 사회의 필요에 의해 달라져왔다. 신체적 손상과 질병이 아니어도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몸’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장애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단 얘기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등의 저서를 통해 소수자, 약자의 몸의 경계를 탐구해온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고민을 가득 담아 번역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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