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170년 ‘歲寒’이긴 문향… ‘무가지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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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10. 오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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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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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그림 오른쪽 위에 제목과 함께 ‘藕船是賞(우선시상)’ ‘阮堂 (완당)’이라고 썼다. ‘우선’이라는 호를 쓴 제자 이상적에게 주는 그림임을 밝힌 것으로, ‘완당’은 추사의 또 다른 호다. 왼쪽 옆에는 그림을 그린 동기와 의미를 글로 직접 적었는데, 훗날 중국과 한국 학자들이 찬문(贊文·아래 사진)을 이어붙여서 10m짜리 서화가 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24일부터 ‘세한’ 특별전

1844년 제주 유배중이던 추사

제자의 인품 칭찬한 그림 선물

절제한 붓질·간결한 구성 일품

中학자들 이어 정인보 등 ‘찬문’

가로 69㎝ 그림이 훗날 10m로

일본인 - 서화가 - 사채업자 거쳐

손세기·창근父子 소유하다 기증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선보이는 특별전을 펼친다.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여는 이번 특별전 제목은 ‘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歲寒) 평안(平安) ’. 이번 전시는 수집가 손창근(91) 씨가 지난 1월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것을 기리는 성격을 지닌다.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 중이던 1844년에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이다. 훗날 여러 수집가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손에 넘어갔던 것을 서화가인 소전 손재형이 읍소해 되찾아왔다. 일본으로 건너간 손재형이 후지쓰카에게 매일 문안 인사를 하며 거금을 줄 테니 돌려달라고 간청하자, 후지쓰카는 그 정성에 감복해 돈을 받지 않고 그림을 내줬다고 한다. 그 후 세한도는 사채업자에게 저당을 잡히는 시련을 겪었으나 개성 출신의 사업가인 석포 손세기(1903∼1986)의 손에 들어간 뒤에 아들 손창근 씨가 이어받아 보유해왔다.

손 씨는 지난 2018년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국보·보물급 유물 202건(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서 작성 때 “이것만은 빼겠다”며 강한 애착을 보인 작품이 세한도였다. 값을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 불리는 세한도를 자식처럼 아꼈다고 한다. 그래서 중앙박물관에 기탁·보관해 온 상황이었는데, 손 씨가 올해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주변에 큰 감동을 안겼다. 170년간 문향(文香)을 뿜어낸 작품을 개인 기증자의 선의로 일반이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중앙박물관은 지난 2년 동안 상설 전시관에서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을 세 차례 열었다. 정선, 김득신, 장승업, 허련 등 조선 서화가들의 대표작들이 일반에 공개됐다.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등도 만날 수 있어서 일반 관객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안복(眼福)을 누렸다.

이번에 세한도를 선보이는 특별전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인 셈이다. 전시를 준비한 이수경 학예관은 “세한도가 왜 제작됐고 어떻게 전승됐는지를 살피고, 이 그림에 힘이 돼준 분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세한도는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고단한 유배 생활을 견디고자 하는 추사의 내면세계를 담고 있는데, 극도로 절제한 붓질과 여백을 둔 간결한 구성이 문인화의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추사는 발문을 써서 그림을 그린 경위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보면, 귀양살이하는 자신에게 귀한 책을 구해준 제자 이상적의 선비 정신을 크게 칭찬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르름을 간직하는 소나무, 잣나무와 같은 절조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추사는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염량세태(炎凉世態)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 학예관은 “추사의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를 확대해서 보면 그 멋스러움에 빠지게 되더라”고 했다.

세한도는 당초 세로 23.3㎝, 가로 69.2㎝ 정도였으나 훗날 10m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이 됐다. 이상적이 1844∼1845년 사절단 일원으로 연경(燕京·베이징)에 갔을 때 세한도를 본 중국인 학자 16명이 감탄해 제찬(題贊)의 글을 붙였기 때문이다. 또 일제강점기 말에 손재형을 통해 그림을 만난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등도 찬문(贊文)을 붙인 덕분에 대작이 됐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중국과 한국의 최고 문사들이 ‘댓글’을 쓴 셈이다.

손창근 씨의 아들인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과 한국 학자들의 찬문까지 보니 크기가 정말 엄청나더라”고 했다. 손 교수는 “그동안 세한도를 볼 기회가 세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후 수장고에 있는 것을 가족과 함께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제가 세한도를 관람한 것을 아버지가 나무랐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알고 계신 상황에서 관람한 것이라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 손 교수는 “귀하게 여겨온 그림을 기증한 아버님의 뜻에 따라 많은 분이 이번 특별전을 통해 굉장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세한도의 가치를 느끼시길 바란다”고 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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