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세계, 라틴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의 선입견 너머에 존재한다. 백인, 흑인, 미개한 원주민이라는 인종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편견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문화와 인종의 용광로처럼 모든 것이 녹아 구분이 없어진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다.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이고 이를 배경으로 종속 이론과 해방 신학 등이 발달하기도 했다. 반면에 문예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2010년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비롯하여 여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배출되기도 했다. 대도시와 빈민가, 사막과 밀림 그리고 고산지대, 유럽풍의 도시와 고대의 유적들이 혼재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본 최초의 본격 라틴아메리카 문명사
우리나라가 최초로 FTA를 맺은 나라는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아닌 칠레였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미개척지 라틴아메리카는 녹색 성장과 자원 개발을 위해 우리와 반드시 협력해야 할 동반자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 실업과 불황에서 벗어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각종 기반 시설 사업이 늘어나 황금 시장이자 블루오션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중동 등 아시아 지역에 편중되었던 우리나라 건설 회사들의 해외 사업은, 이제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 라틴아메리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화의 물결은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땅과 우리를 잇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각 나라들에서는 지금 자생적인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신화와 전설의 범주 안에서만 라틴아메리카 문명을 이해하고, 미국과 유럽의 편협한 시각으로만 오늘의 그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견과 거짓 신화가 아닌 엄정한 역사로서의 라틴아메리카 문명,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같은 제3세계에 속한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본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순간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는 라틴아메리카 문명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길을 모색하는 첫걸음이다.
한눈으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흥망성쇠
우리는 으레 1492년 꼴룸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의 역사만을 기억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유서 깊은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를 지녔다. 게다가 2012년 지구 멸망설과도 연관된 정밀한 천문학과 상형문자, 화려하고 섬세한 금 세공품과 이색적인 도자기, 경이로운 대규모 석조 건축물과 미스터리한 유적 등, 여러 모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륙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비로운 유적과 인신공양 등으로 잘 알려진 마야·아쓰떼까·잉까·나스까 문명뿐만 아니라 메소아메리카의 올메까·싸뽀떼까·떼오띠우아깐·똘떼까 문명, 남아메리카의 까랄·차빈·모체·띠와나꾸·와리·치모르 문명 등 중남미 지역에서 피고 진 여러 문명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조명한다. 이 책은 유럽의 침략자들이 어떻게 라틴아메리카 문명을 짓밟고 황금을 약탈해 갔는지, 그럼에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화되고 혼합되어 고유한 정체성을 갖게 되기까지 라틴아메리카인이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보여준다. 최근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 업적을 십분 반영하여 서술한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가 원래 얼마나 다채롭고 뛰어난 문화를 지녔는지, 에스빠냐 침략자들이 얼마나 무참히 이 문명을 파괴했는지, 그러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오래된 신대륙》의 지은이의 말
이 책은 약 한 달 반 정도의 원고 정리 기간을 통해 탄생했다. 그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약 10여 년의 시간이 녹아내린 어떤 결정체와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간의 마지막에는 한 노(老)연구자와 함께한 토론이 있었다. 그 토론이 이 책의 씨앗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 및 위트와 유머, 지적인 유희들이 이 책에 다 표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다. 아름다운 건물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되었다.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인류학도들이거나 고고학도들이었다. 그 건물은 대대로 인류학과 고고학을 연구하는 집안의 식구들이 사는 곳으로, 현재는 학생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몇 대에 걸친 연구 탓인지 집은 온갖 유물들과 책들, 논문들로 가득했다. 특히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사설 자료실과도 같았다. 그런 곳에서 열린 파티는 다른 여느 멕시코의 파티와는 사뭇 달랐다. 시 낭송을 하거나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는 전혀 없이 허브티를 마시며 잔잔한 음악 속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분위기였다.
그곳에 마치 슈퍼마리오처럼 생긴, 영국 출신의 한 인류학자가 있었다. 그는 약 20여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문명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능통했고 몇몇 유적의 발굴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마야(Maya)에 대해 연구했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거만하게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말하는 그의 모습과 침묵 속에서 경청해야 하는 나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그리고 가슴에서 덜컥, 오기와 비슷한 것이 올라왔다.
메모지를 빌려 그 슈퍼마리오의 동서양을 넘다드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동양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가소로운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날엔 어떤 분위기에 압도된 탓인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꽤 많은 페이지에 걸쳐서 메모만 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재미없고 어떤 면에서는 기분 나쁜 파티였다. 수업받는 학생이 된 것 같은 파티.
그날 이후 책에서 책으로, 참고 도서 목록에서 다른 참고 도서 목록으로, 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른 인터넷 사이트로,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 논문에서 저 논문으로 여행을 했다. 떼오띠우아깐(Teotihuacan)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눈을 감고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고 와하까(Oaxaca)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그려보기도 했다. 뻬루의 사막, 그 모래더미 안 찬찬(ChanChan) 유적에서, 마추핏추(Machu Picchu)의 정중앙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보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돌아보니 우리 역사가 다시 보이기도 했다. 어떤 역사적 장면에서는 우리 역사와 라틴아메리카 역사가 겹쳐지면서 마치 손에 닿을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슈퍼마리오와 만났다. 물론 그는 여전히 대단했다. 무엇보다 학문적 깊이는 단시일 내에 따라잡을 것이 못 되었다. 하지만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공격도 했던 것 같고 슈퍼마리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기도 했고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보편성과 보편적 구조 또한 이야기했다.
그 후로 그 슈퍼마리오와 수차례 만나, 비단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만이 아닌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토론은 그저 수다, 남자들의 수다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맥주도 한 잔씩 걸쳐가면서 아쓰떼까(Azteca)의 마지막 날과 잉까(Inca)의 마지막 날을 비교하기도 했고 무지(無知)한 에스빠냐 정복자들의 만행에 함께 분개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바꿔놓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공간과 시대를 함께 날아다녔다. 나는 그를 ‘마에스트로(el maestro)’, 우리말로 하면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와 함께한 즐거운 시간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끝이 났다. 일명 ‘돼지 독감(gripe porcina)’이라 부르던 신종 플루가 멕시코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유행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자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도 갑자기 사라졌다.
우린 항상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음’이란 게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전염병의 유행에 멕시코시티(Mexico City)는 마치 영화에 나올 듯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어떤 순간에는 마치 죽음의 도시와도 같았다. 나는 마치 홀로 남은 생존자가 모든 사건을 기록하듯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 책은 그렇게 준비하고 그렇게 토론했던 기록이다. 강의 중에 필기한 것을 책으로 만드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