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년 DG의 파격…박혜상, 한국을 담다

입력
기사원문
고승희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 두번째 전속계약 ‘소프라노’
이례적 가곡 두편 담은 CD 발매
“정체성·한국인혼 레퍼토리 담아”
‘이시대 위한 클래식아티스트’ 호평
20일 앨범발매 기념 리사이틀
“포스트 코로나, 희망 전하고 싶어”


일명 ‘노란 딱지’. 클래식에 문외한이 사람들도 연주곡 음반에 붙은 도이치 그라모폰의 문장을 한 번쯤은 봤다. 유니버설뮤직 산하의 독일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는 클래식의 상징이자, 역사이며, 권위다.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전 세계 클래식 업계에 데뷔하는 것은 ‘성공 기준’이기도하다. 지난 122년간 DG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역작을 남겼다. 전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뛰어난 솔리스트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DG와 전속계약을 맺고 음반을 내는 아티스트는 드물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전 세계 ‘클래식계의 슈퍼스타’ 조성진이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DG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젊은 거장’으로 발돋움했다.

최근 DG는 한국에서 두 번째 아티스트를 선택했다. 떠오르는 스타 소프라노 박혜상(32·사진). DG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2018년 미국 패션지 보그(VOGUE)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초대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2018 매트 갈라’ 무대를 본 DG의 최고경영자(CEO) 클레멘스 트라우트만이 박혜상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이후 영국에서 열린 서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의 ‘세비야의 이발사’ 무대를 본 후 트라우트만 회장은 음반 녹음을 제안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세비야의 이발사’였다고, 너의 로지나는 특별하다고 이야기해줬어요. 그러면서 다음 CD는 뭘로 만들까, 했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트라우트만 대표는 “박혜상은 과거와 현대의 시대정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연결하고 있다”며 “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끈기와 열정에 그녀의 음악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위한 클래식 아티스트로 매 역할마다 놀라울 만큼 혼신의 감정을 쏟아낸다”고 평가했다.

박혜상이 합류한 DG에선 122년 사상 유례없는 음반이 나왔다. 오페라 아리아가 일반적인 기본의 성악 음반과 달리 한국 가곡 두 편이 수록된 음반이다. 박혜상이 최근 발매한 데뷔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를 통해서다. 음반에는 서정주 시인의 글에 김주원이 작곡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나운영 작곡가의 ‘시편 23편’이 담겼다. 박혜상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한국인으로의 정신을 담는 레퍼토리를 담았다고 했다.

“한국인이기에, 한국 가곡을 불렀다고 하면 가장 쉬운 답이었겠지만, 저한텐 제가 가진 ‘프리 스프리트’(자유로운 영혼)였어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한국인으로의 책임감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고,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저의 자유로운 정신을 전달하기엔 한국 가곡만한 것이 없었어요.”

해외 무대에서 한국인이자, 동양인으로 ‘경쟁’하고,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길고 험한 길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버텼다. 미국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 졸업 이후 박혜상의 행보는 두드러졌다. 2015년엔 플라시도 도밍고 주최 오페랄리아 국제 성악 콩쿠르 여성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고, 현지의 평론가들은 동양에서 온 소프라노를 주목했다. 오페라 뉴스는 “벨칸토에 화려함이 가미돼 뛰어난 표현력을 갖췄다”고, 뉴욕타임스는 “맑고 경쾌한 목소리, 인상적인 콜로라투라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아프리카나 스페인 노래도 잘할 수 있었지만, 가곡이 가장 저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도이치 그라모폰에도 한국 가곡은 무척 낯선데, 제가 그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어요.”

음반 녹음 과정에는 난관이 많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모임이 금지되며 녹음 일정이 취소됐다. DG 측은 발품을 팔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녹음 장소를 박혜상에게 제공했다. “DG도 코로나19 이후 첫 정식 녹음이라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코로나19를 통해 오히려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어요. 녹음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요.”

음반에는 글루크, 페르골레시, 헨델, 모차르트. 로시니, 벨리니, 푸치니 등 유명 작곡가의 오페라 아리아를 포함해 모두 18곡이 담겼다. 박혜상은 그 중에서도 ‘수브레트 아리아’를 특히나 좋아한다고 했다. 오페라에서 수브레트는 꾀가 많고 기지가 충만한 여성 역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잊지 않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한다.

“전, 제 스스로가 디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적이고, 내추럴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수브레트 아리아를 보면, 그들은 베르디나 푸치니 오페라처럼 자기를 희생하면서 극복해나가려 애를 쓰지는 않아요. 그들은 ‘내가 승리할거야’라면서 디바의 역할을 하지 않아요. 오페라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것이기에 전 제 할 일을 하면서 서포트하는 사람, 잘 드러나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박혜상은 올해 미국 뉴욕 메트 오페라 주역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레텔 역을, ‘돈 조반니’에서 체를리나 역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여파로 연기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코로나 때문”이었기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대신 한국 관객들과 만나 음악을 나눈다. 오는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리사이틀을 연다. 박혜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고승희 기자

▶환경적 대화기구 '헤럴드에코'
▶밀리터리 전문 콘텐츠 ‘헤밀’
▶헤럴드경제 네이버 채널 구독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