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세계화 더 진전시켜"

2020-11-18 11:56:15 게재

경제사학자 해롤드 제임스, '노어블매거진'과 인터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폐쇄와 무역갈등, 공급망 차질 등이 벌어졌다. 각국은 국내 문제에 정신을 집중하며 서로 단절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많은 이들이 탈세계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사학자 해롤드 제임스는 다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제임스는 지난 40년 동안 세계화 또는 세계화의 종말에 대한 글을 썼다. 그의 2002년 책 '세계화의 종말'은 대공황이 세계화를 어떻게 후퇴시켰는지 보여준다. 극심한 금융위기를 맞아 전 세계 주요국들은 다른 나라와의 문화 경제적 연대에서 뒷걸음질쳤다.

그는 '세계화의 종말'에서 "각국이 대공황 이후 21세기에 진입하기까지 무역과 이민, 기술교류 등을 통해 더욱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됐다. 하지만 1930년대 세계화를 반대하게 만든 요인들은 21세기 들어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최근 비영리 과학저널 '노어블매거진'과 인터뷰에서 "대공황의 교훈 중 하나는 세계화가 내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라며 "역병이나 테러, 다양한 다른 위기들에 좌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초반 10년이 흐르면서, 실제 '다른 위기들'이 등장했다. 제임스는 '2018년 애뉴얼 리뷰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에 쓴 글에서 "2008년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많은 정치인들이 글로벌 시장을 비난하고 무역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세계화 반대자들이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 증대 속도가 생산성 증대 속도에 뒤처졌다. 그러나 자본과 사람들은 전 세계를 더욱 자유롭게 오가게 됐다.

올 한해를 지켜본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세계화 반발 흐름이 대세가 됐다고 여길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면봉과 주사기 공급이 부족해졌다. 각국은 국내 상황으로 눈을 돌렸다. 선진국들은 한때 중국이나 인도에서 구매했던 의료장비를 제조하기 위해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제조업 일자리를 본국과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리쇼어링'을 추진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상호교류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일각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끔찍한 방식은 아니다. 제임스는 '노어블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화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더 확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인터뷰 요지.

세계화는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세계화는 상품과 사람, 자본의 이동이다. 이는 전 세계를 한데 연결하는 개념의 세계화와 연관돼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해 그랬다. 지난 10년 고고학자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견한 로마제국 시대 미이라에서 아시아인의 DNA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시대에서 새롭고 강력한 세계화의 계기가 있었다. 현대 초기 범선의 개발로 장거리 항해가 가능해졌다. 19세기 철도가 대륙의 내륙지방을 열었다. 20세기 초반 비행기와 20세기 후반 인터넷은 세계화를 새로운 영역으로 안내했다.

세계화는 부분적으로 물질적 필요와 효율성에 의해 추동된다. 모든 나라가 모든 종류의 상품을 생산한다는 건 합리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세계화는 다른 곳에서만 생산되는 매력적인 상품을 얻는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호기심과 모험의 차원이기도 하다. 인간은 환경적 제약을 겪는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길 원한다. 역경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이 가속화된다.

1920년대와 30년대 중국 광저우 황푸 군관학교의 사관생들은 파시스트당을 만들자고 결의했다. 이탈리아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 상품과 자본의 이동량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일어난 금융위기는 전 세계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미국 모기지시장의 붕괴가 2008년 전 세계 경제를 무너뜨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2018년 애뉴얼 리뷰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살폈다. 세계화와 탈세계화를 상품과 사람, 자본, 데이터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다. 탈세계화가 시대적 흐름이라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당신의 책 '세계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과장된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슬로벌라이제이션'(slobaliza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세계화 둔화 또는 더딘 세계화다. 종말이라기보다 둔화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확실히 세계화에 대한 일부 반발을 불렀다. 세계화는 바람직한지, 민주주의와 양립가능한지, 세계화가 작동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많은 이들은 세계화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저의 조건들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 2008년 이후 무역갈등이 많아졌다. 이민에 대한 반발도 커졌다. 특히 유럽에선 일부 금융시스템의 국영화도 있었다. 무역 패턴도 변했다. 일부 국가들은 생산기지를 자국 근처로 옮겼다.

이런 변화는 글로벌 경쟁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소비자 수요와 정치인의 조바심으로 이뤄졌다. 예를 들어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패스트패션을 보자. 유행은 빠르게 변하기에 아시아처럼 먼 곳보다는 가까운 나라에서 생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미국 제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극히 미미했다. 일부 유럽 기업들은 중국 대신 루마니아나 우크라이나 등 유럽 동남부로 갔다. 규모 면에서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중요한 트렌드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는 확실히 세계화에 대한 상징적인 반발 사례다. 하지만 2020년 현재, 두 사례가 어떠한 실제적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선 매우 엇갈린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올해 새로운 상황이 더해졌다.

- 코로나19 팬데믹인가

=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 피터 나바로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가 코로나19 위기를 낳았다'고 비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초기 국제적 연계도가 높은 도시에서 크게 확산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나 미국 뉴욕시 등이다. 글로벌 여행관행을 비난하기는 쉬웠다. 또 의약품 등의 상품을 먼 나라에 의존하면서 코로나 위기가 더욱 악화됐다고 생각하기도 쉬웠다. 한가지 놀랄 만한 통계는 미국 약품들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는가였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항생제의 97%는 중국산이었다.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했다. 여행이나 국제 이민은 더 어려워졌다. 세계화의 그같은 측면들이 새로운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보다 긍정적인 상황도 있다. 코로나 위기는 거대한 기술적 변화가 막 시작하려던 때에 들이닥쳤다. 그러한 기술 중 일부는 사실 세계화를 더 진척시키고 있다. 세계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봉쇄와 격리를 세계화의 요인으로 생각하나

= 주택과 교육, 의료서비스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값비싼 요소다. 또한 현재까지 여전히 지역적인 특징을 갖는 요소다. 코로나 위기 동안 주택과 교육, 의료 모두 커다란 리스크에 노출됐다. 많은 사람들과 주거와 노동의 공간을 공유하고, 병원에 들러 의사와 상담하고, 학교나 대학에 출석해 배우는 모든 과정이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높인다.

코로나 위기는 주택과 교육 의료 세 가지 모두 원격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잘 관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원격의 정의상, 우리 삶은 덜 지역적이게 된다. 국경은 더 이상 확고한 제약요인이 아니다.

값비싼 글로벌 거대도시들은 매력을 잃게 될 것이다. 맨해튼이나 런던 중심가에 거주할 필요가 없다. 보다 즐겁고 보다 저렴하게 다른 어떤 곳에 살면서 원격으로 일할 수 있다. 미래에는 집에서 일하고 한달에 며칠 동안만 특정한 물리적 장소로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형태가 자리잡을 것이다.

만약 내가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다면, 의사에게 직접 가 진찰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화나 영상으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기기에 접속해 혈압을 재거나 혈당을 재고, 이 데이터를 의사에게 보내면 된다. 내가 거주하는 곳 인근에 병원이 있을 필요가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화상회의 앱 '줌'이 모든 것의 해답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학술회의 등 일부 업무는 줌을 통해 효율성이 커졌다. 프린스턴대학에서 내가 직접 가르치던 학생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자카르타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등에서 컴퓨터를 앞에 놓고 수업을 받았다.

이처럼 미래의 교육은 개별적 만남을 동반한 장기 학년제가 될 것이다. 보다 저렴하고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학생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다. 반면 많은 대학들은 기존 사업모델이 와해되면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탈세계화 논리를 뒤바꾼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정보 또는 데이터의 흐름과 교환과 관련해선 역사상 그 어떤 탈세계화도 없었다. 매일 사람들은 보다 많은 바이트의 데이터를 전 세계로 보낸다. 줌으로 화상회의를 할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바이트를 교환한다. 정보와 관련한 상호연계성은 날로 커지고 중요해진다.

- 물리적 실체, 즉 의료장비 제조와 같은 필수사업에선 '리쇼어링' 이야기가 많다

= 그렇다. 의료장비는 명확한 사례다. 자국내 생산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상품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코로나 백신을 찾으려는 경쟁이 중국과 러시아,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몇달 내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어떤 백신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자국 내에서 백신을 생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백신을 생산하는 건 의미가 없다.

물론 이는 백신과 같은 상품이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지난 세기 건설된 세계화의 기반 위에서 백신에 대한 다국적 수요가 클 것이다. 여기서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들은 국내문제로 눈을 돌리고 포퓰리즘 정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탈세계화 심리를 더 자극할까

= 나는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얼핏 생각하면 전 세계와 광범위하게 접촉하는 건 하지 말자는 심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심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보건과 경제의 상황을 보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모든 것과 단절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 의료장비가 좋은 사례다. 미국은 여전히 국제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의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협업하는 게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의 혁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하는 일이다.

- 역사적인 팬데믹들은 글로벌 무역과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규모로 보면 두 번의 거대한 팬데믹이 있었다. 6~7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과 1348~1350년의 1차 흑사병이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유럽인구 1/4에서 1/2 정도를 죽였다. 로마 제국의 쇠퇴와 멸망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탈세계화 요소였다.

반면 흑사병은 유럽이 과잉인구의 조짐을 발할 때 닥쳤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점차 주변부의 토지로 밀려났다. 토지생산성은 하락했고, 식량공급이 불안정해졌다. 임금 역시 하락했다.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흑사병의 즉각적인 결과는 사실 임금 상승과 삶의 조건 개선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다른 것에 더 많이 지출할 수 있었다. 문화와 무역 등의 전성기를 이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나 흑사병에 비교될 정도도 아니다. 임금 수준에도 극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1세기 전 스페인독감 동안에 많게는 5000만명이 사망했다. 심지어 그때도 임금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 코로나19 팬데믹이 수년 내 잠잠해진다면, 세계화와 탈세계화 흐름과 관련해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 거대 도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 교육과 의료에 기술이 어떻게 적용될지를 유심히 지켜보려 한다. 만약 사람들이 주거와 교육, 의료 등 필수서비스에 돈을 덜 쓰게 된다면, 가처분소득이 많아지고 새로운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흑사병처럼 역병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의 구매력이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진행중인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할 것이다. 전통의 화폐에서 벗어나 전자화폐, 디지털화폐로 가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팬데믹으로 많은 상점에서 더 이상 지폐를 받지 않는다. 감염의 위험성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최근 디지털화폐 도입에 대한 집중연구를 선언했다.

조만간 비국가 행위자인 민간이 발행하는 화폐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돈은 국가가 발행해야 한다는 오래된 개념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 코로나가 정치적 민족주의에도 영향을 미칠까

= 2008년 위기는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을 부른 강력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퓰리즘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포퓰리즘 정치의 일부 구성요소는 전문가에 대한 불신, 성급한 직감적 결정, 지나친 논리적 비약 등이다. 포퓰리즘 정책들은 내용상 모순이 많다. 반면 독일처럼 유능한 정부들은 코로나19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대처했다. 이는 포퓰리즘적 공격의 근거를 약화시켰다.

나는 코로나19 위기로 포퓰리즘이 잦아들 것이라 생각한다. 포퓰리즘은 동력을 잃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