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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찬호랑 조성민에 관한 질문
yumz**** 조회수 14,470 작성일2002.11.07
저겨..수행평가 질문때문에 그러눈데요...^-^;;

박찬호랑 조성민이 실력면에서는 별차이가 없눈데 대우가 다른이유는 먼가요??

화법이라눈 과목에서 면접을 수행평가하눈데 질문이 난해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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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은 차지하더라도 야구인생면으로도 박찬호 선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신화중에서 영웅에 관한 신화가 꽤 있습니다. 고난과 위기가 닥쳐도 묵묵히 자기일을 하다가 끝내는 영웅이 되어서 성공하는 이런 줄거리가 대부분이죠(문학교과서를 참조하세요).그리고 이런 영웅신화의 형식에 박찬호 선수의 야구인생이 잘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조성민'선수의 야구인생부터 살펴보죠.
73년도에 태어난 야구선수들중 훌륭한 투수들이 많은데 조성민 선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빅 3'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빅3는 조성민,손경수,임선동이었죠. 특히나 조성민 선수는 신일고 에이스로서 가장 두각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조성민 선수의 아버지는 구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의 운동선수 출신으로 지점장까지 지내신 관계로 가정환경도 비교적 좋았을 뿐더러 조성민 선수는 야구선수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대학도 고려대학교에 진학했고요. 하지만 고등학교때부터 무리를 많이 했기때문에 팔꿈치에 이상이 있었죠. 그래서 대학야구에서도 다른 투수들에 비해 적은 이닝을 소화했었고 대학졸업후에 일본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진출했으나 팔꿈치 이상으로 결국 은퇴를 하고 지금은 제과점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죠. 재능에 비해 성취가 조금 아쉬운 편이죠.

반면 박찬호 선수는 솔직히 LA 다저스에 입단하기전까지 거의 무명선수나 다름없었습니다. 공주고 시절에도 볼은 빨랐지만 컨트롤이 나빠서 선발투수보다는 마무리로 기용이 되곤 했죠. 그 당시 공주고의 선발투수는 손혁이었습니다.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에 대학진학보다는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에 입단하려고 했으나 빙그레측에서 계약금을 겨우 천만원을 부르는 바람에 한양대학교로 진학했죠. 훗날 인터뷰에서 천만원만 더 불렀더라면 아마 프로로 진출했을거라고 밝힙니다. 대학시절에도 항상 성실한 모습으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합니다. 참고로 박찬호 선수의 대학때 전공은 경영학인데 경영학관련 시험때 답안지를 3장을 달라고 해서 답안지 3장을 옮겨 적어가면서 정성껏 기재해서 제출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다른 운동선수는 시험지에 이름만 적고 나가는 것이 관례였지만요.
대학때 우연히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LA 다저스 관계자의 눈에 들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되었지요. 그 뒤의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실겁니다.

솔직히 박찬호 선수가 조성민 선수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다만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현실에 대한 충실함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 야구선수로서는 최고의 위치인 메이저리거가 되었죠. 이렇게 전혀 다른 배경으로 시작한 두 선수를 비교해 본다면 현재의 대우가 다른 이유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200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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