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전 32명의 집단 자살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인연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의 실 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회장 관련 보도. JTBC 화면 캡춰.
세월호 참사 사건과 관련해 27년 전 오대양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대양 사건은 지난 1987년 32명이 집단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시 풀리지 않고 뭍혀진 진실이 이번에는 드러날 것인가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소재한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압수수색했다. 또한 청해진해운 관계사 등 20여 곳을 비롯해 이 회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설립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일명 ‘구원파’로 불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은 1962년 장인 권신찬 목사와 ‘구원파’ 교회를 공동 설립했고, 목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종교의 신도는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국민 놀라게한 1987년 오대양 사건과 대전과 인연

특히 구원파는 지난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자살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다. 오대양사건은 1987년 구원파 신도로 170억 원의 사채를 빌려쓰고 잠적한 ㈜오대양 대표 박순자 씨를 비롯해 그의 자녀와 종업원 등 32명이 집단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오대양 공장은 대전 서구 가수원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박순자 사장이 대전에서 조사를 받았었다.

오대양 사건은 현재 대전시청을 출입하는 임정재 세계일보 기자가 1987년 당시 대전일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특종했던 사안이다. 1987년 8월 24일 병원과 경찰에서 ‘마우리’ 돌던 임 기자는 이상한 폭행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1987년 대전일보에서 오대양사건을 취재한 임정재 세계일보 기자,(대전충남 언론100년-나라를 바꾼 지역언론 특종기 발췌) 
당시 대전일보가 1987년 8월 25일자에 보도한 ‘변제 요구 부모 감금 폭행’ 사건 기사가 그것이다.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에 빚 변제요구를 하다가 폭행당한 사건 이었다. 폭행사건으로 조사받던 박순자 대표가 경찰 조사 도중 실신해 대전성모병원으로 옮겼고 이후 잠적해 버렸다.

사건 발생 사흘째 오대양 회사 직원을 비롯한 육아원생 150명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 때부터 대전일보는 임정재 기자를 필두로 특별취재반을 구성해 오대양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를 했다.

하지만 5일 뒤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의 공예품 공장 '오대양'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이 회사 대표 박순자씨를 비롯해 32명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박 씨가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고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과 집단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대전일보는 이 내용을 한달 이상 집중취재해 보도해 왔다. 속보성이 아닌 탐사보도형의 의미있는 특종이였다.
   
오대양 사건을 보도한 대전일보 기사(대전충남언론100년 나라를 바꾼 지역언론 특종기 발췌).

1987년 오대양 사건, 대전일보 특종보도 및 심층보도로 알려져   

오대양 사건은 돈과 종교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지만 발생 당시에는 원인 등에 대해 명확히 규명된 게 없었다.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된 오대양 변사사건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사망한 시체에 매맞은 흔적이나 묶인 흔적 등이 나오며 타살설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 이틀만에 변사체가 화장되면서 구체적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됐다.

결과적으로 구원파 신도인 박순자 대표가 사채 170억 원을 갚지 못해 집단 자살했다는 것이 당시 검찰과 경찰의 설명이었다. 숨진 사람 모두가 구원파 신도들이었으며 남자 3명이 나머지 29명을 목졸라 살해한 뒤 자살했다는 사건이 오대양 사건이며 검경의 수사가 종결됐지만 의혹만 쌓여 갔다.

1991년 대검중수부는 오대양 사건 배후에 구원파 창설자인 고 권신찬 씨와 사위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관련성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대검중수부는 사채 동원에 유 씨가 개입한 정황을 일부 찾았고 당사자들이 집단 자살을 하는 바람에 기소하지 못하고 유 씨를 상습 사기죄로만 기소해 징역 4년을 살게 했다. 유 씨는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수사 검사들은 유 씨가 배후라는 의혹을 여전히 품고 있다.

임정재 부장은 최근 대전언론문화연구원이 편찬한 '대전충남 언론100년'에서 당시 기사에 대해 "사 금융과 사이비 종교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은 성공했으나 정치권과의 유착문제, 집단자살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특종" 이라며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기사로 만들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특종"이라고 회고했다.
 
[오대양사건 사망자 관련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신문은 지난 4월 23일 홈페이지 사회면 뉴스에서 “세월호 참사와 오대양 사건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설립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일명 ‘구원파’로 불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은 1962년 장인 권신찬 목사와 ‘구원파’ 교회를 공동 설립했고, 목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구원파 신도인 박순자 대표가 사채 170억 원을 갚지 못해 집단 자살했다는 것이 당시 검찰과 경찰의 설명이었다. 숨진 사람 모두가 구원파 신도들이었으며 남자 3명이 나머지 29명을 목졸라 살해한 뒤 자살했다는 사건이 오대양 사건이며 검경의 수사가 종결됐지만 의혹만 쌓여 갔다” 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확인한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81년에 설립되었으며,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기독교복음침례회의 목사로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오대양사건의 박순자씨와 사망한 사람들은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신도가 아니었으며, 오대양사건과 기독교복음침례회와의 무관함은 1987년과 1989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검찰 수사결과에서 밝혀졌으며 이를 검찰은 지난 5월 공문을 통해서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이에 해당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2014.10.31)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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