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업적을 내일까지 조사해야되요ㅠ_ㅠ
그렇게 길게 말고, 그렇게 짧게도 말고
간단하면서 자세하게!
프로골퍼 박세리의 업적이라..
인터넷 검색 하면 많이 나오겠죠. 그의 성적이나 성장 과정이요.
대표적인 거로는..
- 아마시절 최고의 선수: 고교시절부터 프로들도 참가하는 오픈대회를 석권하며 한국
골프의 기대주로 뽑힘.
- 프로대뷔 첫 해 국내무대 석권: 1996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4승을 거두며 상금왕,
신인왕, 다승왕을 석권함.
- 1997년 LPGA Q스쿨을 수석으로 통과: 미국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그 전초전인 Q스쿨에서 세계 각지의 유망주들을 제치고 1위로 LPGA 출전
풀 시드를 얻게 됩니다.
- 1998년, 루키로서 가장 화려한 미국무대 데뷔: 박세리는 LPGA무대에서, 그것도 메이저
대회인 LPGA챔피언십 대회에서 첫승을 거둡니다. 그리고 다음 메이저이자 최고 권위인
US오픈도 석권합니다. 신인으로 두 개 메이져 연속 제패, 4승으로 다승 왕, 상금랭킹
2위 등 엄청난 기록을 냈죠. 이런 기록 외에 그가 보여준 다이내믹한 경기력, 큰 경기에
강한 카리스마 등.. 1998년의 박세리는 타이거 우즈와 비견될 만큼 엄청났습니다.
그 해 전 세계 여성 스포츠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올해의 여자 선수상'도 여러개
수상했습니다.
- 98년 이후 현재까지 LPGA에서 거둔 승수: 메이저 4승 포함 총 22승
- 2003년에는 그 해 최저타상 수상(야구로 치면 방어율 상 수상)
-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 획득: 명예의 전당이란 그야말로
모든 선수에게 최고의 꿈으로써,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업적을 이룬 선수들만 가입이
가능합니다.
여기까지는 박세리가 이뤄온 기록입니다. 그 외의 것들을 살펴보면...
- LPGA에 한류열풍을 일으킨 장본인: 박세리 진출과 성공 이후 그의 성공을 동경한
많은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해서 성공했죠. 김미현, 한희원, 장정, 이미나... 이런 한류
열풍의 시발점은 당연히 박세리입니다.
즉 코리안 드림을 이룬 가장 대표적인 여성 스포츠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혔으며 타임지에도 나왔습니다.
-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를 볼 때 소렌스탐, 카리 웹과 더불어 빅3로 뽑혔습니다.
== 현재 박세리는 최악의 부진에 빠져있습니다. 거기에 부상도 겹쳤죠. 그리고 그동안
박세리 외에 다른 훌륭한 선수들도 등장했구요. 그러나 그 원조는 박세리입니다.
골퍼, 아니 모든 운동이나 다른 사회 전반을 봐도 박세리만큼 세계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은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IMF시절 시원한 우승 소식으로 국민에게 큰 기쁨을
준 우리시대의 영웅이죠. 다시금 그녀가 부활하기를 기대합니다.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05.12.08.
프로골퍼 박세리 말씀하시는 거죠?
검색을 해보시면 박세리의 기록이나 프로필은 잘 나와있을 거에요.
하지만 박세리는 좀 더 특별하죠.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선수이자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스타니까요.
1977년생인 박세리는 고교시절부터 오픈대회(프로와 아마가 모두 출전하는)를
석권하게 됩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선수들을 제치고 여고생인 박세리선수가
국내무대를 석권하기 시작한거죠. (당시 박세리의 라이벌은 동갑내기인 김미현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 드디어 프로에 데뷔합니다. 아직 스무살도 안 된 나이였지만
모든 프로들을 제치고 4승을 거두며 한국골프의 여왕이 되었죠.
(그 해 총 대회가 10여개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신인이었던 김미현선수가 3승을 했죠.
신인이었던 두 선수가 대회의 절반을 우승한거죠)
그 후 박세리는 삼성의 후원을 받고 미국진출을 노립니다. 1997년에는 국내무대는
뒤로하고 LPGA진출을 시도했으며, Q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1998년
미국무대에 진출하게 되었죠. 그때까지 골프의 본고장인 미국무대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었기에 박세리의 미국 진출은 기대도 있었지만 염려도 있었죠. 당시에는 한국 유명
골퍼들은 일본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암튼 삼성에서도 몇년간은 적응기를 가질거라고 생각했고 1998년에는 1승만 거두어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을텐데, 무려 4승을 거두었습니다.
더구나 메이져대회 2승이 포함되어있었죠. 동양에서 온 박세리는 첫 해에 각종 기록과
화제를 집중하면서 미국무대를 평정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껏 어떤 선수도 이런 충격적인
데뷔를 하지 못했죠. 여자 타이거우즈란 말이 딱 어울렸죠.
그 해 세계언론이 주는 각종 '올해의 여성 스포츠상'을 받기도 했고 가장 영향력있는
아시아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타임지에도 나왔습니다.
쉬운 말로 소렌스탐이나 샤라포바, 비너스 윌리엄스같은 선수들이 받는 상을 우리의
박세리가 받은거죠.
무엇보다 US오픈에서 보여준 맨발의 연못샷은 절정이었습니다.
IMF로 풀 죽어있던 그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 기적같은 샷으로 우승을 만들어냄으로써
박세리는 국민적 영웅대접을 받기도 했죠.
1999년에도 4승을 거두며 박세리는 소렌스탐, 웹과 함께 세계골프계의 '빅3'로 불리게
됩니다. 2000년에는 1승도 못 거두고 부진했습니다.
또한 남자친구로 인해서 성적이 부진하다, 자신은 미국인이 되고싶어한다, 성공하더니
변했다 라는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면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박세리는 2001년 2002년 각각 5승을 거두며 소렌스탐과 양강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003년에는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충족하죠. 즉 골퍼로서 경기력이나
성과가 최고라는 것을 미국에서도 인정받게 된겁니다.
그 후로는 거짓말처럼 부진의 늪에 빠집니다. 정신적인 슬럼프다, 너무 골프에만 매달렸다
하며 말이 많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올해에는 최악의 한해를 보냈습니다.
박세리가 다시 재기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박세리가 보여준
기록과 업적만으로도 우리의 스포츠영웅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박세리 개인으로 뿐 아니라 그 후 많은 한국골퍼에게 새로운 길과 기준을 제시한거죠.
박세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골프 한류열풍이 있었으니까요.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기를 바랍니다..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0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