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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국의 마타하리는 ??

 

안녕하세요 ?

 

한창 궁금한게 많은 고1 학생입니다.

 

제가 며칠 전 추석특집으로

 

학생들이 나와서 하는 '퀴즈 대한민국'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한국의 마타하리'가 누구냐는 문제에

 

저는 당연히 국사 시간에 배운대로

 

'배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답이 '김수임'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여성분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저는 분명 '배정자'가 한국의 마타하리라고 배웠는데...

 

대체 '배정자'와 '김수임' 중 한국의 마타하리는 누군가요 ?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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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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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비공개
작성일2008.09.16 조회수 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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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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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열심답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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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답변 드리겠습니다.

 

 마타하리라고 하면 이중간첩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여성으로서 , 배정자(裵貞子. 1870∼1952년)를 말하면 흔히 이름 앞에 '요화(妖花)'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친일반민족자로 알려진 인물이고, 이에 반하여 김수임(金壽任, 1911년 ~ 1950년)은 대한민국에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두 사상체계를 넘나들던 여성입니다. 배정자는 이중간첩이 아닌 철저한 친일반민족자이었고, 김수임은  두 체계를 넘나들었기때문에 그러한 연유로 김수임 이름앞에 마타하리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AP통신이 2008년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기밀 자료를 토대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등, 당시 발표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수임은 1911년 개성출신으로,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능통한 영어 실력을 이용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역 일을 했다. 미군정 시기에는 군정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미군 간부 존 베어드와 옥인동에서 동거 생활을 했고, 북한 정권에서 초대 외교부장으로 발탁됐던, 독일에서 공부한 엘리트 공산주의자 이강국과 연인 사이이기도 했습니다.

 존 베어드와의 동거 기간 동안 이강국의 지시에 따라 각종 간첩 활동을 하고, 이후 이강국을 월북시킨 혐의 등으로 1950년 3월에 전격 체포되었고,  그해 6월 15일 ‘국방경비법’ 32조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돼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한국 전쟁 발발 무렵에 사형이 집행되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P통신은 비밀자료 기록에 의하면 당시 베어드 대령이 민감한 정보에 접근권이 없어 김수임이 북측에 넘겨줄 기밀도 없었으며, 나중에 북한에서 처형된 김수임의 애인 이강국도 사실상 미 CIA(중앙정보국) 요원이었을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문서에는 김수임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갖가지 고문에 못이겨 자백한 것이었으며, 그 내용도 당시 미군들이 언제 철수하는가 하는 것을 베어드 대령으로부터 들어 장래 해고상황을 걱정하던 동료 고용원들에게 전달한 것 뿐이었다며 간첩혐의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1956년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 따르면 이강국은 CIA의 비밀조직인 '한국공동활동위원회JACK(Joint Activities Commission, Korea)'에 의해 고용됐던 것으로 나와 있고, 1953년 정전 후 북한당국은 이강국을 '미국 간첩'으로 규정, 처형했다고 AP가 밝혔습니다.

AP통신은 또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은 김수임을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며 그녀는 결국 한국 경찰의 고문에 의해 그녀가 하지 않은 일도 허위자백했던 것으로 미군 관계자들은 결론내렸던 것이 확실하다고 전했습니다.

김수임사건은 이전부터, 당시 기소 내용으로 볼 때, 간첩 행위를 입증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으며, 그리고, 민간인 신분의 김수임을 군법 재판한 것이 타당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출처외신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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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coav****
채택답변수 342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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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타하리가 등장했지요.

 

위장 탈북 간첩 원정화씨.

 

이른바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공안당국이 내사해온 또 다른 여성 간첩 혐의자가 원정화 사건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3월경 중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2의 원정화’로 불릴 만한 이 여성 간첩 혐의자는 원정화(34)와 동갑인 탈북자로, 원정화처럼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며 중국과의 무역업에 종사해왔다. 국내 입국 이후로만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이 있는 이 여성은 탈북자단체 핵심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등 ‘수상쩍은 행동’을 해오다가 동료 탈북자의 신고로 공안당국의 내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여성은 지난 3월경 중국으로 출국해 6개월째 귀국하지 않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 탈북 여성에 대해 간첩혐의로 내사를 진행해 왔고 현재도 행방을 쫓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귀국 가능성 여부 및 현재 어디 있는지 등에 대해선 자신하지 못하는 상태다. 간첩 혐의자가 공안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사실상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탈북 여성은 탈북자 집단 거주지역인 서울 모 아파트 쫛쫛쫛동 ×××호에 거주해온 박모씨이다. 하지만 지난 9월 3일 찾아간 박씨의 집은 불이 꺼진 상태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박씨가 지난 3월 이후 현재까지의 관리비를 체납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 이웃은 “예전에 그 집에는 여행용 가방을 든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출입이 잦아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들을 했었다”며 “하지만 요즘은 수개월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박씨에게 4살된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도 못 본 지 한참 됐다”고 했다. 박씨가 아파트 관리비를 올 2월분까지 낸 것으로 보면 지난 2월 말~3월경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공안당국은 박씨에 대한 세세한 인적 사항과 내사 시점 및 구체적 혐의점, 그리고 정확한 출국 일시에 대해 명쾌한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다만 “내사가 진행 중인 보안사항”이라는 점과 “박씨가 올 초 중국으로 출국한 뒤 현재도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정도만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박씨가 왜 돌연 중국으로 출국해 이례적으로 장기간 체류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박씨와 친분이 있는 동료 탈북자들은 “박씨가 중국사업을 한다며 출장이 잦았지만 6개월씩 집을 비운 적도, 이렇게 오랫동안 주변과 아무 연락이 없던 적도 없었다”고 말한다. 공안당국의 관계자는 “내사를 받아온 박씨가 원정화에 대한 수사가 무르익자 불안을 느껴 도주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내사 중인 간첩 혐의자라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출국금지를 하게 되면 우리 쪽의 수사 사실이 노출되고 인권위 제소를 비롯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출국한 3월경은 원정화에 대한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다. 원정화가 국내에서 한 간첩활동과 계부이자 상책인 김동순의 존재도 확인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수사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이며, 언제 어떻게 원정화를 체포할 것인지를 논의하던 단계였다. 박씨가 원정화 수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당연히 신변 위협을 느끼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 초 탈북자 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온 박씨는 원정화와 여러 모로 비슷했다. 원정화와 동갑인 데다가 원정화처럼 서울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말이 서툴기 마련이지만 박씨는 2001년 입국 직후부터 북한 어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 탈북자들이 ‘특수훈련 받은 게 아니냐’며 간첩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도 우선은 말씨 때문이었다.

박씨가 원정화처럼 대중국 사업을 하면서 탈북자단체 임원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탈북자단체 동향을 묻고 다닌 것도 의심을 샀다. 박씨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었고 특히 탈북자단체 핵심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고 한다. 한 동료 탈북자는 “박씨는 남한 정착에 힘쓰기보다 탈북자단체에 훨씬 관심을 기울이는 등 (간첩으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삶 역시 원정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원정화처럼 국내에 들어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자식을 낳았고,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박씨는 국내에서 두 번 이혼을 했고 출국 전까지 한 남자와 동거 중이었다. 군인들과 주로 교제했던 원정화와 달리 박씨는 여행사 대표, 회계사 등 비교적 안정적 직업을 가진 중상류층 남자들과 교제했다는 것이 주변 얘기다. 박씨는 키 165㎝의 날씬한 체형과 미모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대북 전문가들은 “여성 탈북자들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이른바 ‘신분 세탁’을 하는 것은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 결혼 상대를 고른 원정화처럼 박씨가 결혼정보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원정화는 결혼정보회사에 고객으로 접근했지만 박씨는 아예 결혼정보회사의 상담원으로 취업했다. 입국 직후인 2001년 8월 유창한 서울말과 우리 사회 사정에 밝은 점을 앞세워 유명 결혼정보회사의 상담 컨설턴트로 취업, 2002년 8월까지 1년간 일했다. 이 결혼정보회사의 관계자는 “탈북자 정착을 돕기 위해 정부가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박씨가 채용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결혼상담 컨설턴트를 그만둔 후 원정화처럼 대중국 무역에 종사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무역을 했는지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동료 탈북자들은 “임대아파트에 살면서도 비교적 풍족하게 살기에 사업이 잘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아직 내사 중인 상태이므로 자세히 얘기할 순 없지만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상하다’는 얘기가 많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공안당국의 의심대로 진짜로 간첩 활동을 했다면 원정화처럼 성(性)을 미끼로 정보원에게 접근하는 ‘마타하리형 간첩’이 북한의 새로운 간첩 유형이 되는 셈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간첩은 남성간첩보다 정보수집에 유리한 면이 많아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1511명(2008년 5월 현재) 가운데 여성이 1176명으로, 77%에 이른다. 이와 관련 한 탈북자단체 임원은 “이번 원정화 사건이나 박씨 문제 등과 관련해 다수의 선량한 탈북자들, 특히 여성 탈북자들이 오해나 불이익을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


박씨 행적 - 입국에서 도피까지

생년월일:1973년 12월 25일 (원정화와 동갑)

거주지:서울 모 아파트 ○○○동 ×××호

 2001년 초 탈북자 신분으로 입국
  (원정화는 2001년 10월 입국)

 2001년 8월~2002년 8월  유명 결혼정보회사 근무

 2003~2004년경 남한서 첫 결혼

 2005년 초  첫 출산

 2005년 경  이혼 및 재혼 (재혼 후 다시 이혼함)

 2006년(추정)  국정원 및 경찰이 간첩 혐의로 박씨 내사 시작

 2007년 5월 재혼한 남편과 결별

 2008년 3월경  박씨 중국으로 출국
  (원정화에 대한 내사 마무리돼 가던 시점)

 2008년 7월  공안당국, 원정화 체포

 2008년 9월  현재 박씨 중국 체류 중으로 추정(원정화는 구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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