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하나인데 직업은 서너 개…‘엔(n)잡러’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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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22. 오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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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엔잡러로 살아간다는 것

〇〇씨, 선생님, 작가님 3년차
최저임금 수준 월급에 시작한 ‘n잡러’
불금과 토요일 늦잠 포기 대신 얻은
작은 적금과 가끔 ‘피맥’ 할 자유

그보다 더 기쁜 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 것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나를
가장 뜨겁게 응원하는 건 나니까
일주일 동안 세 가지 일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는 것은 저글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각각의 공이 내 손을 떠났다 돌아오기까지는 잠시의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통해 균형감을 얻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10월 월급이 150만원을 찍었다.

9월까지 코로나19 때문에 회사에서 하루걸러 휴업을 했다. 그러느라 깎인 급여가 한 달이 지나서야 반영된 것이다. 9월 말에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회사는 정상 근무로 돌아갔다. 하지만 눈에 띄게 수입이 줄어든 여파는 지난달 월급으로 생활하는 이번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행이라면 내 월급봉투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 회사에서 월급이 들어온 다음날, 주말에 강의를 나가는 학원 실장님이 월급을 이체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저축을 건너뛰진 않아도 되겠구나.’ 월급통장 잔액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간단히 연구원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주말에는 학원에 나가 반나절 동안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말하기를 가르친다. 또 틈틈이 에세이를 쓰고, 이 지면에 연재할 칼럼도 다듬는다. 그러니 회사에서 받는 월급에다 시급으로 받는 강의료, 편당 원고료를 합친 게 내 진짜 월 소득이다. 나는 회사에서는 〇〇씨, 학원에서는 선생님, 신문사와 출판사에서는 작가님으로 불린다. 회사와 학원 투잡을 한 지는 5년, 여기에 글쓰기를 보태 ‘엔(n)잡러’로 살게 된 지 이제 3년차가 되었다.

사람들이 투잡이나 엔잡을 하는 계기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나도 월급 하나만으론 생활이 빠듯했다.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은 100만원대 후반. 세전 20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은 내 또래 30대 중반 직장인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제집살이라면 모르겠지만, 자기 힘으로 월세를 내야 하는 경우엔 월셋날부터 월급날까지가 잔액과의 생존 게임이 되기도 했다.

회사 월급은 매년 최저임금과 팔짱을 끼고 오르기에, 연구원이 된 후에도 학생 때부터 해온 주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긴 어려웠다. 불금과 토요일 늦잠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운신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적금이라도 붓고,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사 읽고, 가끔 피자에 맥주도 한잔 먹을 수 있는 자유.

하지만 학원 일과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그 일들이 내게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더 번다’ 이상의 의미가 있어서다. 단순히 어느 일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느냐로 중요도를 매길 수도 없고, 본업과 부업이라는 편한 말로 칭할 수도 없다. 몸이 좀 피곤해도 내가 몇 년 동안 엔잡을 지속해온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효과 때문이었다.

첫째는 심리적으로 여유를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세 가지 일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는 것은 저글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각각의 공이 내 손을 떠났다 돌아오기까지는 잠시의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통해 균형감을 얻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부딪치는 한계가 있다. 가끔 회사에서 일을 하다 한계를 느낄 때면 ‘그래, 여기서 나는 나사다. 건전지다’ 하며 자조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일부러 배차간격이 긴 경의중앙선을 타고 퇴근한다. 한참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메모장을 켜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감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회사에선 작은 나사일지 모르지만 내 삶에선 내가 가장 크고 중요한 톱니바퀴라는 효능감을 되찾는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며 공회전하는 대신, 잠시 다른 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틈을 버는 것이다.

한곳에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안정감과 여유를 준다. 실제 업무 효율도 좋아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역량을 스스로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각의 일에 고민과 노력을 하며 키운 능력은 예상치 못한 다른 영역에서 발휘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한 엔잡의 또 다른 효과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내가 뭘 잘하고, 뭘 하며 살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해보면 알까 싶었지만 알 수 없었고, 취직을 해서 부딪쳐보면 답이 나올까 했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회사와 학원 일을 병행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러다 재작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듯이 나는 비로소 내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상사들과 대화를 하다 기쁜 말을 들었다. “제일 잘하는 일이 나를 대표한다는 건 큰 행운인데, 지금 ○○씨가 그런 것 같아. 본인도 그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고.” 그 일은 매주 회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회사 안팎에서 투고받은 수필이나, 어린이들과 전화로 인터뷰한 내용을 짧은 글로 다듬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파일 작업을 도와주던 업무로 시작해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수준으로 역할이 발전하기까지는 학원 강의와 글쓰기로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검색과 ‘복붙’, ‘좋아요’를 표현 수단으로 써온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을 익히기까지는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수많은 학생들과 그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당장은 짧고 상투적인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더라도, 그 사람 안에는 저마다 품고 있는 빛나는 생각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필자가 글 속에 담은 마음을 읽고, 아직 표현이 서툴고 쑥스러움도 타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 밖에서 얻어온 그 믿음 덕분에 가능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필사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쓴 <밥벌이의 지겨움> 같은 생업 에세이를 더욱 인상 깊게 읽었다. 아직 밥을 벌어본 적도 없던 학생의 마음에도, 일은 분명히 인간을 소모한다는 쓸쓸한 깨달음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김훈의 글처럼 사람이 저마다 자기 직업의 모양을 따라 닳는다면, 엔잡은 좀 입체적으로 닳으며 살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색다른 취향이나 멋내기 없이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개성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몇 년째 엔잡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는 사람의 모양은 무엇인가. 이제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서, 나와 세상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사람.’

주말 오후, 학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꾸벅꾸벅 조느라 버스 창문에 쉼 없이 이마를 찧곤 한다. 긴장이 풀려 일주일치 피로가 와르르 몰려오기 때문이다. 칼럼 원고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날은 두세 시간 쪽잠을 자고 밤새워 글을 다듬기도 한다. 그런데도 엔잡을 계속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가장 뜨겁게 응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첫 책이 나왔다. 그 뒤로 저녁마다 손그림을 연습하고 있다. 이제 만 두 살이 된 이 필명으로도 작은 그림을 곁들인 단정한 명함을 하나 만드는 것이 엔잡러의 올해 마지막 목표다.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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