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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27. 2020

부뚜막 고양이와의 만남

자기야 밖에 부뚜막 고양이 있어!


부뚜막 고양이? 옥탑방 고양이도 아니고 부뚜막 고양이는 누구야.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니 또 길고양이가 있다고 농담을 하는 건가.

근데 진짜 있었다. 부뚜막 고양이.


앞 베란다 창문으로 슬쩍 보니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식빵을 굽고 있었다. 

부뚜막 고양이와의 첫 만남은 밤이었지만, 사진은 다음에 만난 낮에 찍은 사진


많이 늙고 아파 보였다.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끔뻑끔뻑 눈인사를 해주는 것을 보니 동네에서 밥 꽤나 얻어먹어본 묘생짬밥이 보였다.


아, 우리 집이 계속 밥 주는 줄 아는구나.

사건의 발단은 오즈의 셀프 배식이었다. 오즈가 사료 봉지를 다 뜯어버려서 새벽 내내 사료가 공기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러면 사료가 빨리 상한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이 동네에 고양이 많던데. 밖에 내놓으면 누구든 먹겠지? 이왕 주는 김에 내가 인심 써서 비싼 캔도 같이 주지 뭐.


내 오만이었다. 내가 쓰레기 처리하듯 내놓은 사료가 부뚜막 고양이에게는 간절한 한 끼였을 수도 있는데.

다음날 오전에도 부뚜막 고양이는 같은 자리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괜히 밥을 줬나 싶다가도 이 동네에 캣맘 많은데 얼마나 영역다툼에 치였으면 여기까지 와서 기다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부뚜막 고양이는 왜 그리 꼬질꼬질 아파 보이는지. 마음이 자꾸 쓰였다.


그래. 내가 백수지만 너 하나 밥 챙겨준다고 지갑에 빵꾸나겠어?

하루는 간식을 주고, 하루는 캔을 까주고.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배를 채워줬더니. 이 집주인 호구라고 생각했는지 부뚜막 고양이는 매일매일 담벼락에 출석했다.



하루는 부뚜막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기에 지켜보는데 발 밑에서 씩씩이가 만져달라고 야옹야옹 울어댔다.


이놈 그만 울고 밖에 부뚜막 고양이랑 인사해!


장난으로 창가에 올려줬는데 씩씩이는 한참 동안 부뚜막 고양이를 쳐다봤다.

집고양이로 태어나고, 집고양이로 묘생 3년을 살아온 씩씩이에게 부뚜막 고양이는 어떤 존재일까. 집고양이는 길고양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뚜막 고양이는 씩씩이와 눈이 마주치고는 눈을 끔뻑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부뚜막 고양이는 집고양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적어도 5~6살은 되어 보이는데, 짧지 않은 묘생동안 따뜻한 집의 온기를 느껴본 적은 있을까.


의외로 아무 생각 없을 수 있는 고양이들에게 감정 이입하니 괜히 센치해졌다.



하루는 오즈가 창밖을 계속 바라보길래 오즈야 거기 뭐 있니? 하고 가보니 부뚜막 고양이였다.

야 부뚜막 고양이야 너 출석률이 나 대학 다닐 때보다 좋은 것 같다. 성실한걸.


처음에는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후다닥 도망가서 담벼락 뒤로 숨곤 했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혀를 낼름거리며 쳐다본다.

그래. 밥 주는 사람이 최고지. 나도 나한테 밥 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


부뚜막 고양이 먹으라고 밥을 매일같이 줬더니, 이 집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나 보다.

하루는 코코가 창가에 앉아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다. 너는 왜 혼자 웨에엥거리면서 화를 내니. 가까이 가서 보니 아기 고양이 둘이 코코 눈치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야 왜 애기들 밥 못 먹게 화를 내냐. 그만 화내 하고 코코를 안는데 아기 고양이들이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도망갔다.

어른 고양이가 화내는 것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가 보다. 미안해. 사람이라서 내가 미안해.



그 후로도 덩치 큰 치즈 고양이, 젖소인 듯 턱시도인 듯 헷갈리는 고양이. 옆 빌라 화분에 자주 앉아있던 고양이. 지난번에 마주쳐서 나한테 건조 북어 간식받아간 고양이.

동네 고양이들이 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젊은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가자 부뚜막 고양이는 마지막으로 와서 밥을 먹었다.


아 이러다 민원 들어오면 어쩌냐. 누가 나보고 왜 고양이 밥 주냐고 뭐라고 하면 어쩌지. 요새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예민한데. 미친놈한테 잘못 걸릴까 봐 겁이 났다.

이제 미안하지만 밥은 주지 말까?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부뚜막 고양이는 이제 대놓고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웃겨서 사진을 찍으려고 방충망을 열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도망갔을 녀석이 도망가지 않고 또 눈만 끔뻑끔뻑거렸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어. 계속 밥 줄테니까. 우리 오래오래 보자.

내가 브런치에 너네 이야기 남기려고 매거진도 새로 만들었으니까. 어디 가지 말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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