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문재인 대통령, 2019. 11.)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 올랐다.… 부동산 상승세는 멈췄다.”(김현미 국토부 장관, 2020. 7.)
국민 68%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잘못됐다.”(한국갤럽여론조사, 2020. 11.)
‘0.62% 오를 때마다 대책 한 번ㅋㅋ.’ 문재인 정부가 23번 쏟아낸 부동산 대책과 정부 공식 통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3년 14.2%”를 조롱하는 말들을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 정부는 집값이 폭등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인식은 국민들에게 일반적이다. 지금 중요한 건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왜 이렇게 집값이 올랐는가, 즉 누가 어떻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집값을 끌어올렸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또한 ‘전임 정부 책임론’, ‘공급 확대론’ 등 정부의 실패를 회피하거나 또 다른 사태 악화를 불러올 논리의 맹점을 정확히 짚고 집값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부동산 개혁 전문가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과 노동, 주거, 재벌 개혁 시민단체 더불어삶의 안진이 대표의 ‘시민 대화’는 이러한 목표로 약 6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 3년 부동산 정책 복기, 관료와 재벌 문제, 참여정부와 현 정부 여당 인물들에 대한 회고,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대안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불로소득주도성장’과 ‘불공정경제’,
관료와 재벌은 웃었고 대다수 국민은 울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는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정확히 반대로 작동됐다. 주택임대사업자 특혜로 50만 투기 세력이 생겨났고, 주택 100만 채가 ‘사재기’ 됐다.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도시재생 뉴딜(50조), 3기 신도시(150조 예상), 한국형 뉴딜 SOC(30조 이상) 등에 엄청난 규모의 돈이 몰린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은 ‘4대강 사업’을 진행한 MB보다 이미 더 많다(MB 5년 60조, 문재인 정부 3년 103.5조). 세율을 올린다고 하지만 ‘진짜 부자’인 재벌과 법인의 토지 세율은 건드리지 않고(보유세 최대 0.7%) 개인만 들쑤신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정책실장들의 아파트값은 10억 원씩 올랐다(장하성, 김수현). 서민들이 1년에 500만 원 저축할 때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아파트값은 3억, 5억씩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집값이 일부 하락할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직접 미니 신도시 개발, 공기업 참여 서울 도심 재개발ㆍ재건축 계획을 발표해서 반전 시켜버렸다(2020년 5.6대책). 이를 직접 발표한 국토부 관료(박선호)는 해당 지역에 500평의 토지가 있어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부동산 자산 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심화ㆍ고착되면서 절대 다수 국민들은 패배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 사이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는 더욱 부자가 됐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하고 최장수 국토부 장관은 “상승세가 멈췄다”고 한다. 속 터지는 소리에 대다수 국민은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작이 의심되는 통계 그리고 각종 특혜,
투기와 폭리의 거대한 실체를 밝혀라
부동산 투기와 집값 폭등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권뿐만 아니라 투기의 또 다른 몸통, ‘관료’와 ‘재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국토부는 매해 1800억 원을 들여 공시지가를 조사하고 관련 통계를 작성한다. 그 결과가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 14% 상승”이다. 믿을 수 없는 통계의 원자료 및 산출 근거 공개는 “통계법상 불가능”하다고 거부한다. 산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를 어떻게 믿으라는 것일까? 경실련은 자체 데이터베이스와 여러 민간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52%로 추산했다. 경실련의 ‘책임질 수 있는 인물과의 공개 토론’ 요구를 국토부는 여전히 모르쇠를 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료들이 ‘정권 교체에 영향 받지 않고’ 주요 부동산 정책의 틀을 짜고 집행한다는 점에 있다. 관료들은 기록, 정보,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관계 법령을 이유로 전혀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알 수 있었던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 토지 거래 현황 등을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이래 놓고 시세의 33%에 불과한 공시지가가 67%대(상업ㆍ업무용 토지)라는 정부의 주장을 비판하면 ‘정부의 통계가 가장 공신력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진보와 개혁으로 포장하는 데에 급급한 정권은 이러한 관료들에게 어김없이 휘둘린다. 오히려 정권은 자기 자산도 늘려주고 대국민 논리도 개발해주는 국토부와 기재부의 관료들을 좋아한다. 이러한 관료들 중 곳곳의 알짜 토지를 소유한 다주택자들이 수두룩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국민의 머슴’이어야 할 관료들이 실제로 챙기는 집단은 바로 ‘진짜 부자’ 재벌이다. 한국의 재벌은 겉보기에는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토지 불로소득에 매진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롯데 등 재벌들이 부동산 개발, 임대, 매매를 통해 얻는 이익은 수십조 원에 달한다. 이들은 개인과 비교할 수 없는 보유세율 특혜와 공시지가 조작 특혜를 누리고 있다(현대차가 매입한 삼성동 구 한전부지의 세금 액수는 실거래가 10.5조의 0.14%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예가 수두룩하다). 또한 재벌들은 자신들의 수십 개 건설 계열사를 통해 재개발ㆍ재건축ㆍ신도시 사업에 참여하는데,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이윤뿐만 아니라 시민을 상대로 판매 ‘바가지’를 씌움으로써 집값 상승의 최고 수혜자가 된다. 재벌들은 지난 10년간 생산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부동산 계열사를 늘려왔다. 그게 돈 벌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30평대 아파트, 서울에서도 2억 이내로 당장 공급 가능한 이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집값을 경기 관리용이 아닌 주거권 보장 수단으로 여기는, 진짜로 집을 사는 게(buy) 아니라 사는 곳(live)으로 보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서 뚝심 있게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처럼 주요 정치인이 다주택자, 부동산 자산가, 토건족, 재벌 친화적인 상황부터 타파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이라면 펼칠 수 있는 정책 대안은 단순하면서도 무궁무진하다. “대통령만 의지가 있다면 집값 낮추는 건 쉽다”고 말하는 이유다.
먼저 지금처럼 공기업이 재벌 흉내를 내며 땅장사, 건물장사를 하게 놔둘 것이 아니라 ‘3대 권력’(토지수용권, 용도변경권, 독점개발권)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 강력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지금은 이 권한을 기득권을 위해서만 쓰는 게 문제다. 여기에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 등을 섞어 적정건축비를 도입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을 쓰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2억 원 이내로 30평대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꾸준한 공급 신호가 확실하다면 집값은 반드시 떨어진다. MB 정부 보금자리주택 도입 이후 서울 집값 동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공급 시스템 개선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재개발ㆍ재건축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 고쳐 쓰면 되는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은 이제 끝나야 한다(건설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도 엄청나다). 공공이 건물만 분양해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주택자들의 버티기도 불가능하다. 집값을 잡으면 그에 연동되어 움직이는 전월세도 기본적으로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주택자(특히 50대), 전월세 세입자, 청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잡고 관료와 재벌의 입김에서 벗어나 국민 기본권 보장의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 정부에는 확실하게 “잘못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문제는 대안이 없는 게 아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재벌과 공기업과 토건 기업이 반대할 정책은 도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국민이 느끼는 분노는 심각하지만, 현 정부에는 “잘못을 책임지겠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지기는커녕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때로는 국민을 탓하기까지 한다. 시간이 흐르면 거짓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옹색한 논리로 당장의 상황만 모면하려고 든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더 하락하여 바닥에 떨어져야 제대로 된 대책을 제시할 셈인가?
더 이상 권력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하여!
‘대폭로’와 ‘실명 비판’에는 이유가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MB, 오세훈과 같은 인물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무난했던 반면, 참여정부와 현 정부의 주요 인사 대다수(김수현, 이해찬, 유시민, 김진표 등)야말로 기대와 달리 개혁 의지가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토건 관료들과 야합해 집값을 폭등시키는 정책을 펼쳐왔다고 말한다. 김헌동 본부장은 참여정부를 도우려고 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며, (공기업 중에)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라는 발언을 통해 당시 2년간의 부동산 개혁 논의를 부정했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를 서울시에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악화된 형태로 나타난 “무늬만 진보, 포장만 개혁” 세력이 문제라고 일갈하는 이유다. “좋은 말들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무능한 정치 세력”의 부동산 정책에 2016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더욱 분노하고 있다.
2014년 ‘3박 야합’(박근혜, 박덕흠, 박기춘) 이후 당파를 초월해 형성된 정치권의 부동산 투기 동맹은 2020년 현재, 비록 여야의 위치는 바뀌었을지언정 정권의 투기 질주와 함께 여전히 강력하다. “관료 국가” 국토부와 기재부의 투기형 개발 관료들 역시 정치권의 비호 아래 장관, 차관, 비서관 등으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개혁 과정은 거대 기득권과 대다수 국민의 대결일 수밖에 없다. 방향은 명확하지만, 실현은 쉽지 않다.
안진이 대표는 독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면 마음이 더 무거워질지도 모르지만, 권력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직접 나서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더 이상 권력자들의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자신의 주거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불로소득만 폭증하는 ‘불로소득주도성장’, 가계부채만 늘려놓은 ‘부채주도성장’, 집과 건물과 땅을 사고팔아 성장률 수치만 떠받치는 ‘콘크리트주도성장’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가 진행한 대담 속 ‘대폭로’와 ‘실명 비판’은 진실을 통해 국민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시도의 시작이다. “이게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에서 미래 세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