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실존인물중에 유명한 카사노바는 누구였나요.
제가 알기에는 군사정권시절에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유명했던 카사노바가 있었다고
판례를 배우는 시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백명의 여대생과 잠을 잤고 그중에 한명이 고소를 하였지만
결국 무죄로 판결났던 사건이었는데요. 이 인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질문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 인물이 엄청 못생겼는데. 작업을 시작하면 않넘어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나온 단편 드라마(?) 있는데 제목이 '유혹의 기술' 인것 같았습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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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1위, 사람과 그룹 5위, 창원시 1위 분야에서 활동
저는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데요.
박인수사건이라고 그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카사노바하면 박인수 사건이 떠오르죠.
그리고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 라는 말도 엄청 유명해진 알이었고요.
(참고자료)
박인수 사건이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 시기였던 1950년대 중반 대한민국 현역 해군 헌병대위 박인수가 70여명의 여성들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졌던 성추문 사건을 말한다. 사건 초기 일부 여성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 주장하였으나 쌍방 합의에 의한 간통으로 드러났으며, 이 중 1명의 여성만이 처녀였다고 한다.
1954년 4월부터 1955년 6월까지 해군 헌병 대위를 사칭한 박인수가 여대생을 비롯해 70여명의 여인을 간음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박인수는 중학을 중퇴하고 해군에서 헌병으로 복무하던 중 애인에게 배반을 당하자 타락하기 시작했다. 박인수는 군에서 전역한 1954년 4월부터 주로 해군장교 구락부, 국일관,낙원장 등을 무대로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하며 소위 '처녀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70여명의 여성과 관계하였다.
훤칠한 키의 미남자였던 박인수는 헌병으로 복무시절 익힌 사교춤 실력으로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피해여성들의 상당수가 여대생들이였으며 국회의원과 고위관료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검사가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라고 주장했으나, 박인수는 이를 부인하였다. 박인수는 '자신은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제공했다.'하면서 그 많은 여대생은 대부분 처녀가 아니었으며 단지 미용사였던 한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런 박인수의 주장은 '순결의 확률이 70분의 1이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세상의 큰 관심을 모았었다.
이에 1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단지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여 2만원의 벌금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2심, 3심에서는 유죄가 선고, 1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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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