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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세계올스타 vs 요즘 세계올스타?
대충 포지션을 짜서 해수제요 역대 세계적은 선수로는 저는 마라도나,펠레,차범근,반바스텐,요한크루이프,야신 정도 박에...포지션을짜서 해주세요..웬만하면 차범근도 너어서..후보말고..ㅋ
요즘은..쉐바, 로날도,리발도,라울 정도....다공격수 밖에 몰라서...
포지션을 짜서 붙으면 과연 누가 이길까용?>
그리고 각각의 선수 에대한 설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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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09.09 조회수 1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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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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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대 올스타(은퇴한 선수들)

-----------------------------------------------반바스텐(요한크루이프)------------------

---------------------마라도나(펠레)-----------------------------------------------------

----------------------------------------------------------------------------------------

------스키아피노(네스켄스)--------------(플라티니)--------------가린샤(차범근,네쳐)-----

----------------------------------------------------------------------------------------

----------------------------소크라테스-----------------마테우스-------------------------

----------------------------------------------------------------------------------------

------보비무어-----------베켄바우어-----------------바레시---------니우톤 산토스------

----------------------------------------------------------------------------------------

---------------------------------------야신(자모라,뱅크스)------------------------------


제가 함 역대 올스타를 짜봤는데요...제 나름대로는 현대전술상으로 포지션을 안배하느라 정작 넣고 싶었던 플라티니나 요한크루이프는 후보군요ㅠ.ㅠ 전술은 요즘 추세인 4-4-2의 개념입니다

선수소개 !!!

반바스텐(네덜란드)은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포워드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트라이커의 한사람입니다 요한크루이프가 아약스에서 발굴했으며,당대 가장 현대적인 스트라이커로 불리었습니다 그의 우아한 플레이는 현대 스트라이커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스트라이커의 그것이었습니다(잘 이해하시고 싶다면 반니스텔루이에다가 지단의 유연함,바티스투타의 강력한 오른발,셰브첸코의 가공할 스피드를 합친 선수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듯합니다) 모두가 평가하기로,스트라이커로써 반바스텐을 따라올 자는 현재에도 지금도 감히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펠레조차 그의 플레이를 보고 한수 접고 들어갔던 인물입니다 루드굴리트,라이카르트와 함께 88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일궜고 역시 이들과 90년대 AC밀란의 '밀란제너레이션'을 이끌었습니다 항상 부상을 달고 다닌 불운한 선수였고,겨우 31살이던 95년1월(실제로는 29세에)은퇴를 하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리그득점왕 타이틀은 거의 그의 것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선수였습니다

마라도나나 펠레는 말이 필요없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니 긴 설명은 필요없겠죠?!

마라도나는 '축구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86년 월컵을 아르헨티나에 바쳤고,그후 소속팀 나폴리를 세리에 정상에 올려놓은 선수입니다 '신의 편애를 받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테크닉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습니다 특히 왼발이 매우 능했구요 86월컵 잉글랜드전에서 보여준 '5인돌파'는 인구에 회자되구 있고요 월컵 역사상 가장 다이나믹한 골로 평가받습니다

펠레는 겨우17세때 58년 월컵에 출전하였지만,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이며 축구계를 경악시켰죠 6골을 넣으며 브라질에게 월드컵 첫우승을 안겼습니다 62 66 월컵에도 출전을 하며 1골씩 넣었지만 부상떄문에 많은 경기를 뛰진 않았고요 70년도 월컵때 다시 황제의 위용을 뽐내며 4골을 넣었고 결국 우승하며 줄리메컵을 브라질이 영구소유하게 됩니다 여기서 58년과 70년도 브라질 대표팀은 축구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꼽히며 펠레는 그 두팀에서 모두 뛴 유일한 선수입니다 산토스에서 줄곧 뛰었구요

스키아피노는 우루과이에게 50년도 월드컵 우승을 선사한 선수이며,우루과이 역사상 최고의 선수입니다 감히 레코바도 범접하지 못하는 전설의 선수이죠 54년도 월드컵 당시 최강이던 헝가리 대표팀조차 그를 가장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플라티니는 84년 유럽선수권 우승을 프랑스에 선사했습니다 지단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바로 플라티니입니다 그의 프랑스는 '아트사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죠 지단이 '제2의 플라티니'라고 불리죠...

요한크루이프는 유럽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며,월컵우승이 없음에도 펠레나 마라도나와 비견되는 몇안되는 선수입니다 74년 당시 '토털사커'로 세계를 풍미한 네덜란드를 이끌고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생소했던 토털사커를 가장 잘이해하는 선수였으며 기술중에 '크루이프턴'같이 그가 창안해낸 기술도 있을만큼,그는 상대수비수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린샤는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어로써, 마라도나의 출현전까지 펠레와 비교되는 유일한 선수였으며,그의 테크닉은 축구역사상 최고로 손꼽힙니다 그를 상대했던 선수들은 지금까지도 그가 보여준 플레이에 한결같이 경이를 표할 정도입니다 브라질에서는 오히려 펠레보다 위의 선수로 대접받구 있습니다 이런말이 있을정도입니다 '펠레는 최고의 선수지만,가린샤는 그 이상이었다' 펠레가 없던 62년 월컵때 최고의 활약으로 브라질에게 월컵 우승을 선사했으며,그가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에서 패한 적은 단 한번 뿐이었습니다 불행히도 49세로 83년 사망했습니다

네쳐는 유럽최강이었던 독일축구에 있어서 가장 천재적인 미드필더로 불립니다 창의성은 상상을 초월했었고 테크닉은 센티미터단위로 패스를 조절했다는 천재였습니다 현재 부상때문에 기량을 못찾고 있지만 다이슬러가 '네쳐의 환생'으로 불렸었죠

차붐은 당시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습니다 당대의 피구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베켄바우어가 당시 최강이던 독일대표팀에 그를 포함시키기 위해 '붙박이 오른쪽 공격수를 보장한다'며 귀화를 시키려고 하다가 거절당한 일화도 있습니다 마테우스조차 그가 최고의 공격수라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최강이던 82년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이고,

마테우스는 독일에서 '황제'베켄바우어 다음으로 손꼽히는 '왕'입니다 마라도나와 '영원한 라이벌'로 손꼽혔으며,그와 동등한 실력을 갖춘 선수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네스켄스는 74년 네덜란드 대표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요한크루이프에게 가렸으나,그의 왼쪽 돌파는 당대 제일이었다'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보비무어는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앙과도 같은 선수입니다 그야말로 '전설'이죠 66년 잉글랜드에게 지금까지 유일한 월컵 우승을 선사했죠 '주장 중의 주장'으로 불릴정도입니다 수비수가 가장 갖춰야할 침착성이 특히 뛰어났던 선수로 공격수의 타이밍을 읽는 태클은 최고로 평가받았던 선수입니다

베켄바우어는 펠레와 마라도나 등과 함께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는 선수로 '리베로'라는 공격형 스위퍼라는 개념을 첨 만들었던 선수입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최고의 선수입니다 '카이저(황제)'입니다

바레시는 아주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며 90년대 밀란제너레이션의 일원입니다 두말할 필요없는 최고의 수비수로,홍명보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죠

니우톤 산토스는 역사상최강 58년도 브라질 대표팀과 62년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로,역사상 최고의 라이트풀백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1:1대인방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수비에서 공격으로 한번에 나가는 패스가 매우 훌륭했던 선수입니다

야신은 두말할 여지없는 최고의 골키퍼로 60년도 유럽선수권 대회 소련 우승당시 현재까지 유일한,골키퍼로써 최우수 선수에 올랐던 선수입니다 경기중 페널티킥 중 반은 막아낸 선수라죠;;;

뱅크스는 잉글랜드 출신이며,펠레도 고개를 흔들게 만든 철벽이었습니다 70년도 월컵당시 펠레의 헤딩슛을 막아낸 그의 방어는 역사상 최고의 방어로 손꼽히며 그가 맥주로 인한 배탈때문에 출전못한 8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서독에게 2:3으로 패하자 언론에서는 '맥주한잔이 축구역사를 바꿨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자모라는 축구초창기인 30년 즈음에 활약했던 전설의 골키퍼로, 스페인 선수입니다


2.현재의 세계올스타(현역)

---------------------------------------------호나우두(라울)----------------------

-----------------------앙리(셰바)------------------------------------------------

----------------------------------------------------------------------------------

----------------------------------------지단(네드베드)-----------------------------

------------------긱스(키웰)------------------------------------------베컴(피구)----

--------------------------------------비에이라(로이킨)-----(다비즈)------------------

------------------------------------------------------------------------------------

------카를로스-------네스타(말디니)--------칸나바로(페르디난드)-------튀랑(푸욜)----

------------------------------------------------------------------------------------

--------------------------------------부폰(카시야스)-------------------------------


이것두 4-4-2인데 원보란치라 좀 수비가 불안하네요 하지만 지단을 안넣을 수 업었죠 원톱도 그렇구...

호나우두는 요한크루이프로부터 '마라도나 이상,게르트뮐러의 3배'라는 평가를 받았던 최고의 선수죠 부상 이후 예전의 그런 몬스터적인 돌파력은 좀 줄었지만 스트라이커로서의 그의 능력은 줄은 것 같지 않습니다 94년월컵당시 페레이라 감독은 '호나우두,그를 쓰지 않은건 그의 재능을 좀더 아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죠 아인트호벤을 거쳐 바르셀로나 인터밀란을 거쳐 현재 레알마드리드 소속이구요 02월컵 때 8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구 브라질에게 5번째 월컵 우승을 안겼죠 현재 월컵득점 통산 11골인데 통산역대최다득점인 14골을 06년 월컵때 충분히 깰것으로 보입니다

앙리는 프랑스 선수이구 아스날 소속이며 현재 세계최고포워드 중 하나입니다 스피드는 현역최고이며 매우 다재다능하여 공격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지난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2위죠 그전시즌은 득점왕이었구요

지단은 말이 필요업는 최고의 게임메이커입니다 레알마드리드죠

긱스는 말이 필요업는 레프트윙의 '지존'이죠 환상적인 돌파력과 스피드는 그의 전매특허이고 왼발을 매우 잘쓰는 선수입니다

베컴은 킥에 관한한 최고의 선수죠 피구와는 또다른 스타일로 상대에겐 껄끄러운 선수입니다 최고의 라이트윙어중 한명

비에이라는 아스날 소속이구 장신의 압박을 보여주죠;;; 매우 뛰어난 수비형 미들이죠 세네갈 출신...신체조건이 워낙 좋아서 상대에겐 참 넘기 힘든 존재죠

카를로스는 현존 최고의 레프트윙백이죠 강력한 왼발은 그의 상징이죠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너무나 활발한 오버래핑...

네스타와 칸나바로는 아주리의 센터백들이고 둘다 최고의 수비수들이죠

튀랑은 프랑스의 라이트윙백이구 역시 매우잘하죠
출처직접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1번째 답변
he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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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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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올스타 designtimesp=22402 designtimesp=24924>
괄호 안은 후보선수입니다..

 

(저도 짧은 지식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이해바람 ㅡㅡ;

갈구지 마세요)


--------반니스텔루이(FW)---호나우두(FW)---
-----------(라울)----------(델피에로)-----
-----------(앙리)----------(오웬)---------
-----------(히바우두)------(사비올라)-----
---------------------------(비에리)-------
------------------------------------------
----긱스(MF)-----지단(MF)-------피구(MF)--
----(네드베드)-----(베론)---------(베컴)----
-----------------(발락)------(호나우딩유)--

-----------------(토티)-------------------
------------------------------------------
---------다비즈(MF)----비에이라(MF)-------
------------------------------------------
--------말디니(DF)--------카나바로(DF)------
--------(카를루스)-----------(카푸)---------
------------------------------------------
-----------------네스타(DF)---------------
------------------------------------------
------------------------------------------
-----------------부푼(GK)-----------------
------------------(시먼)------------------
-----------------(카시야스)---------------
-----------------(칸)---------------------

(이거 만드는데도 힘드네요...  이건 제가 직접 짠거라서...)

 

호나우두, 라울, 앙리, 오웬, 델피에로, 사비올라 등을 따로 설명이 필요 없죠?

 

긱스는 예전 맨.유에서  베컴과 함께 짝을 이뤘죠...

만약 긱스가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면 베컴과 함께 국가대표에서 화려한 콤비를 보여줬을텐데,,,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 하고 있죠...

그만큼 긱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긱스는 맨유 유소년시스템 산물로 10대부터 맨유 왼쪽 주전이었습니다. 베컴보다 5년은 먼저부터 주전을 꿰찬선수고요, 그후에 베컴이 긱스에게 인정받았다면 모르지만, 너무 심한 거짓말같군요.

그리고 잉글랜드 출신이 아니라서 긱스가 촌놈이라고요? 어디 대한민국에서나 통할 사고방식인지... 그러는 잉글랜드 라이벌 아일랜드출신의 로이킨은 맨유의 주장입니다. 역시 10년은 우려먹었죠.
베컴이 기껏맨유에서 주전자리한게... 96년도에 퍼거슨경이 맨유의 주력선수를 무대기로방출하고, 그즈음일테니 기껏해야 7년? 반면 긱스느 10년넘게 맨유 주전입니다. 아니라고 우기시려면 어디한번 맨유 왼쪽라인은 그럼 누구였나 말해보시죠?
베컴전에는 체코출신의 선수있었습니다. 맨유에서 방출후에 라치오로 갔고요, 2년전에가 체코리그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베컴이 먼저라니.. 참..

수비력은 자료찾기도 귀찮고, 주관적인 내용이니 넘어가더라도, 왼발이 차기좋은 장소에서는 베론이 있기전에 베컴대신 긱스가 찰정도로 긱스는 프리킥에도 능합니다. 장거리슛이 위력적이 아니라니...

긱스가 세계 최고의 윙으로 평가받는것은 그가 솔직히 윙으로서 필요한 모든걸 갖췄기때문입니다. 왼쪽윙에게 필요한 모든것이죠. 일단 기본적으로
스피드,돌파력,개인기,왼발사용,센터링,패스력,움직임,체력,득점력에 긱스는 칼날같은 태클의 수비력으로도 인정받는 선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오베르마스가 세계최고라고 여러사람이 생각합니다. 오베르마스역시, 스피드 돌파력등에서 빠질게 없는선수이지만, 일단 몸싸움에서 밀리는 체격과 수비력이 부담됩니다. 바르셀로나이있을때 역시, 오베르마스가 들어가면 거의 3톱형식으로 공격수같이 뛰어다녀서 잠시 외면을 받기도했습니다.

왜 세계최고의 윙인지.. 갖출만한 모든걸 갖췄기때문입니다.

반면 피구는 중앙과 좌우를 가리지않고, 공격수급으로도 활약이 가능하기때문에 정통윙에서는 제외되는수가 많습니다. 물론 피구를 끼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죠. 하지만 명성면에서는 피구가 확실히 앞설듯 싶군요. 유럽최우수선수상 부문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다음은 긱스가 언제주전을 시작했는지에관한 사커라인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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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긱스의 명성은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큼 높아갔다. 1991년 긱스는 주로 2군과 청소년 팀을 오가며 경기를 했다. 그러나 곧 전격적으로 1군에 합류했고, 3월 2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니스 어윈의 교체선수로 들어가 그의 리그 데뷔를 가졌다. 그 후 긱스는 5월 4일 더비 매치로 열린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전경기를 소화했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모든 사람들에게 라이언 긱스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 리 샤프의 부상으로 긱스는 주전 도약의 해를 맞이한다. 시즌이 시작되고, 긱스는 첫 15경기에 연속 출전했고, 총 38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긱스는 이 해에 웸블리에서 열린 리그 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Utd가 노팅햄 포레스트를 1 : 0으로 제압하면서 그의 프로 경력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맨체스터 Utd가 시즌 초반의 압도적인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라이벌 리즈 Utd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면서 긱스는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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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부터 주전도약을 했음을 알수있습니다. 한 12년차가 되겠군요.
다음은 베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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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은 1995년 4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주전 오른쪽 윙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했던 그는 '올해의 신인 선수상'을 차지했던 96/97 시즌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윔블던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골키퍼 설리반을 농락시키는 그 유명한 60야드짜리 초장거리슛을 성공시키면서 베컴은 어느덧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잉글랜드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표적인 기대주로 손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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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부터가 95년이고, 그다음해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goldbj 님의 답변 중>


 

다비즈는 뭐 세계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보면 되구요,,,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말디니와 카를루스, 지단은 역대 올스타에도 뽑힐 정도의 실력이었으니까

정말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죠?

 

다음은 역대 올스타 입니다



<역대올스타 designtimesp=22430 designtimesp=24952>

호마리우----펠레----요한 크루이프
지단--바지오--마라도나--미셜 플라티니
카를로스----베켄바우어----말디니
-----------야신------------------

또는

----------펠레----뮐러----------
---------------------------------
기린샤--------지단-------마라도나
-------------------------(차범근)
---------------------------------
--------------몬티---------------
---------------------------------
카롤로스-베켄바워--마테우스--포크츠
---------------------------------
--------------야신---------------

아무래도 차범근 포지션은 마라도나 있는 쪽에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펠레:
15세까지 바우루 클럽 소년 축구팀에서 공을 찬 펠레의 능력은 이미 눈에 뛸 만큼 뛰어났다. 56년 만 16세가 되기 전 펠레는 브라질 최고의 명문 팀인 산토스로 옮겨 마침내 프로선수가 됐다. 그 해 벌써 데뷔 전을 치렀고 이듬해에는 국가대표로 뽑혔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국가대표로서 처음 뛴 게임이다.
그리고 58년 채 18세가 되기 전, 정확히 말해 17년 6개월 만에 당시 사상 최연소 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브라질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62년 월드컵에도 물론 출전했다. 그러나 초반에 부상, 결승전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브라질이 또 우승했다.
66년 월드컵에서는 펠레는 상대 수비들의 표적이 돼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들것에 실려나갔다. 그가 빠진 팀은 이제 브라질 팀이 아니었다. 여지없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부상으로 몸이 망가지고 팀이 준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을 때 펠레는 말했다. "스타를 보호하지 않는 월드컵에 다시는 출전하지 않겠다."
69년 사상 세 번째로 1000골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그런 펠레를 브라질은 다시 원해 70년 네 번째로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펠레의 기량은 절정에 달해 브라질이 월드컵을 세 번째로 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리고 71년 13만 관중이 지켜보는 말라카냥 구장에서 대표선수로서 은퇴경기를 가졌다.
56년 산토스 팀에 입단한 펠레는 74년까지 18년 간 줄 곧 산토스 팀에서만 뛰었다. 산토스팀은 58년에서 62년까지 상파울루 선수권대회에서 네 번이나 연속 우승하고 64-65년, 67-68년에도 계속 우승했다. 또 62-6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넴탈컵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때도 펠레가 주역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59년 127골, 62년 110골, 65년 101골을 넣는 등 매 시즌 70골 이상을 기록해 최고의 골잡이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74년 산토스 팀에서도 은퇴했다. 팬들은 이제 펠레의 경기를 볼 수 없게 됐다고 모두 아쉬워했다.
그는 1년6개월 동안 쉰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75년 사상 최고액인 350만달러를 받고 코스모스팀에 입단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펠레의 진심은 축구 불모지 미국에 축구를 보급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코스모스 팀에서 2년간 활약했다. 77년 소속 팀을 세 번째로 NASL(북미축구리그)에서 우승시킨 후 완전히 축구화를 벗었다.
펠레는 생애 통산 1362경기에 출전(세계기록)해 1280골을 넣었다. 국제대회에서 7회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모두 92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세계기록).
축구의 달인 펠레, 그는 오직 선수였다. 남들처럼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은퇴 후 사업에 전념하다 현재 브라질 체육부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훌륭한 선수일 뿐 아니라 참된 인생을 살고 있는 위대한 인간이다.

마라도나

 

 


팰래,마라도나.

정말 이 축구라는 스포츠가 존재하는 이상 언제나 거론 되는 인물 들이죠.

둘다 정말 최고의 스타죠.

하지만 둘의 길은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포지션 상으로도 다릅니다.

시대 상으로도 다르죠.

가령 이런 말이 생각이 나는 군요.

보통 축구 팬들 그리고 저도 그렇고요.

둘중에 누가 더 잘할것 같냐?

저도 당연 개인적 기량에선 마라도나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그 외적인 면에서는 당연 팰래가 우세하다고 생각 합니다.

만약 정말 같은 팀에서 팰래와 같이 뛴다는 자체가 옆에 동료 들에게

엄청난 힘이 되겠죠?

하지만 어떤 언론 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라도나가 팰래보다 개인적 능력 면에서 더 높아 보이는것은

언론 매체때문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 냐면.

이렇 습니다.

팰래가 활동하던 시절

tv라는 것이 그리 보급되지 않았 습니다

방송기 술이 뛰어 난것도 아니 였죠

흑백 tv에 리플레이라는 말 조차도 없는..

정말 그런 시대의 스타죠

하지만 마라도나는 어떻죠?

94 월드컵 까지 나온 선수죠.

방송 기술 차원에서 상대가 안되죠.

그런 면에서 보다 마라도나가 화려하게 나올수 밖에 없다고 그러는 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팰래에 관한 실력은 그의 진 면목에

반도 안된다고....

음 그래서 제 개인적인 소관은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이둘의 비교는 절대 누가 잘했다고 말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요한크루이프 designtimesp=25059>

1982년 월드컵때 모방송국에서 요한 크루이프의 전기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축구하면 전 무조건 크루이프입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스트라이크의 배번은 10번과 14번인 선수들의 독무대였습니다.
지금은 수비수나 미드필더들도 14번 배번을 달고 뛰고 있을 정도로 14번 하면 주공격수라는 상징성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쉽게 14번의 스타선수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저의 막연한 기억으로 누구..누구라고 쉽게 말을 할 순 없겠네요...

먼저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순호선수가 오랬동안 14번의 주인이였죠...
그 다음 기억나는 선수로는 고종수선수가 약간 달고 있었고...그래도 고종수선수는 22번이 어울려요...2002년 월드컵때는 이천수 선수가 달고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아스날의 티에리 앙리...이태리대표팀과 인터밀란클럽팀의 루이지 디 비아지오....
아르헨티나대표팀과 라치오의 디에고 시메오네..일본 월드컵팀의 산토스....레알마드리즈의 떠오르는 샛별 구티..덴마크대표팀의 클라우스 얀센...등이 있겠네요...

예전의 경우는 짐작으로 예기 하기에는 좀 두렵네요...

갠적으로 티에리 앙리가 14번 선수로서는 제격이네요...나머진 미드필더(공격형)에 가깝거든요....

<invy35 답변중>


 

 

야신은 길게 설명 안해도 되죠?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서...

 

20년 동안 270경기에서 150개의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A매치 경기에선 78경기에서 70골만 먹어 0점대 실점을 국제 경기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은퇴후 야신은 무릎을 다쳐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그후 61이라는 나이에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검은 골키퍼 유니폼과, 많은 업적을 남긴 그의 모습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신이라고 부르며,그를 골키퍼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죠..
 

 

 

 

차범근에대해서..

 

본명 : 차범근
종목 : 축구
포지션 : 공격수
데뷔 : 서독(현 독일)의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Darmstadt) 입단
데뷔일 : 1978년 12월 25일

 

별명 : 갈색 폭격기, 차붐 생일 : 1953년 5월 22일 키 : 179Cm
몸무게 : 78Kg 출생지 : 경기도 화성 종교 : 기독교
취미 : 테니스 특기 : 강한 슛팅
가족사항 : 부 차금동 모 채규순의 3남 1녀 중 막내, 1977년 1월 7일 오은미와 결혼, 슬하에 2남 1녀
학력 : 경신중학교 - 경신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차범근 상세정보

<!-- 기사 -->
◇ 중학교 때 (하키 명문 영도중학교)필드하키 선수. 경신중학교로 전학하면서 축구 시작
◇ 1970년 경신고 2년, 부산 MBC 대회 최우수 선수. 대통령 금배 전국 고교대회 득점상
◇ 1971년 경신고 3년, 청소년 대표 발탁
◇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연대, 경희대 등) 끝에 고려대 진학
◇ 1972년 (고려대 1년) 국가대표 발탁 (100m 11초 04, 부동의 오른 날개)
◇ 1972년 한국일보 선정 최우수 신인상
◇ 1973년 5월 28일 뮌헨월드컵 아시아 A조예선 이스라엘전에서 연장 후반 4분 결승골
◇ 1976년 신탁은행 입단
◇ 1976년 신탁은행과 서울은행 통합, 당시 감독이던 민병대가 자동차보험으로 옮기며 스카웃 소용돌이
◇ 1976년 10월 공군 입대
◇ 1977년 1월 7일 3시, 3년간의 연애 끝에 오은미와 결혼
◇ 1978년 12월 25일, 서독 다름슈타트에 입단, 보쿰전으로 분데스리가 데뷔
◇ 병역 문제로 1979년 1월 5일 귀국
◇ 1979년 9월 22일 서독으로 다시 출국. 다름슈타트가 2부리그로 떨어지며 프랑크푸르트와 7월 16일 연봉 25만 마르크(7천8백) 계약
◇ 1979-80시즌, 31게임, 12골(득점 7위)
◇ 1980년 5월 21일, UEFA컵 결승전 보루시아전에서 어시스트(1-0승)
◇ 1980년 1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개최 '슈맨스타 11'(월드 올스타) 선정
◇ 1980년 10월, 40만마르크(약 1억 2천) 재계약
◇ 1980-81 시즌, 28게임 출장 8골(레버쿠젠 전 부상)
◇ 1981-82 시즌, 31게임 11골(득점 10위)
◇ 1982-83 시즌, 32 게임 득점 15골(팀 최다)
◇ 1983년 7월, 레버쿠젠으로 이적. 이적료 백35만 마르크(4억 5백만원), 연봉 52만 6천 마르크(1억 5천)
◇ 1983-84 시즌, 34게임 12골(팀 7위 진출)
◇ 1984년 프랑크푸르트 시절, 부동산 사기사건에 휘말려 차압당함(대우에서 도움)
◇ 1985년 11월 9일, 보루시아MG전 분데스리가 200회 출장(218게임 중 18게임만 빠진 것)
◇ 1985-86 시즌, 34게임 17골(득점 4위)
◇ 1985년 오른쪽 발목인대 이완, 수술
◇ 1986년 2월 20일, A급 코치 자격 획득
◇ 1986년 4월, 멕시코 월드컵 참여하는 차범근을 위해 바이에른 레버쿠젠에서 의사 2명, 비서 1명 특별 배치, 관리 지시
◇ 1987-88 시즌, 공격형 링커 전환(25게임 4골)
◇ 1988년 3월, 킥AIDS88 세계 올스타 선발(대 일본리그 선발팀) 경기 초청되었지만 출전 거절
◇ 1988년 UEFA컵 우승 마지막 동점골
◇ 1988-89시즌 29게임 3골
◇ 1988년 4월 15일, 카이저스라우테른 경기, 300게임 출장
◇ 1989년 은퇴, 통산 308게임 98골(외국인 최다 출전기록, 외국인 최다 득점), 게임당 1골, 91% 출장
◇ 1989년 쾰른대 축구지도자 코스 졸업 -1급 지도자 자격증 획득 ◇ 1991-1994년 현대 호랑이 축구단 감독
◇ 1997-1998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 1999년 중국 선천 핑안 감독
◇ 2001년-현재 MBC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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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경력
1979-1989년 독일 분레스리가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308게임),외국인 최다 득점(98골) 기록, 1994년 프로축구 감독상, 1989년 쾰른대 축구지도자 코스 졸업 -1급 지도자 자격증 획득, 1988년 UEFA컵 우승(바이에르 레버쿠젠 소속), 1980년 UEFA컵 우승(아인트 라흐트 프랑크 푸르트 소속), 198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개최 '슈맨스타 11' (월드 올스타) 선정, 1972년 한국일보 선정 최우수 신인상, 1970년 경신고 2년 MBC 대회 최우수 선수, 대통령 금배 전국 고교대회 득점상
대표경력
2001년-현재 MBC 축구 해설위원, 1999년 중국 선천 핑안 감독, 1997-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대표팀 감독, 1991-1994년 현대 호랑이 축구단 감독,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국가대표, 1972년 국가대표 선발, 1978년까지 한국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 1971년 경신고 3년, 청소년 대표

출처내머리 + 여러자료 =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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