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클럽팀에서 최고 축구영웅은 누구입니까 ?? 내공 1 0 0 겁니다

월드컵 및 A 매치 국제경기가 ..  결코아닌    클럽 팀에서  가장 보석같았던 선수는 이중에 ..

 

누구라고 보십니까 ??   1위부터 ~ 10위 까지 그선수의 팀에대한 영향력및 실력등 ..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공 100 걸겠습니다 ..  정말 성실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  

 

(   장난스런답변 및 불성실답변은  무채택 , 신고 들어갑니다     )  

 

*   목록에 있는 선수 외에는   제발  선수를 바꿔서  답변하지 말아주세요 ..   부탁입니다      *   

 

 

1. 디에고  마라도나      (  ssc 나폴리   ) 

 

2. 디 스테파노         (   레알 마드리드     )

 

3. 요한 크루이프          (  fc 바로셀로나   )

 

4.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피오렌티나    ) 

 

5. 조지 베스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6. 티에리 앙리    (    아 스 날    )

 

7. 파올로 말디니    (   A C  밀 란     ) 

 

8. 반 바스텐      (   A  C   밀 란    )

 

9. 라울 곤살레스     (   레알 마드리드     )  

 

10. 로이 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내 프로필 이미지
닉네임정보가 없는 사용자
작성일2008.03.30 조회수 5,949
질문자 채택
6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프로필 사진

1. 디 스테파노 - 클럽팀 커리어를 본다면 스테파노를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요?

 

레알에서 10여 년간 뛰면서 수많은 리그 우승과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5연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선수입니다 스테파노는 당시 레알과 바르샤의 영입 경쟁 끝에

 

레알로 가게 되었는데 전문가들은 스테파노가 바르샤로 갔다면 현재 세계 최고 축구클럽은 바르샤가

 

되었을거라합니다 월드컵에는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20세기 피파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펠레에 이어 2위를 했습니다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역대 아이콘 중 최고라고

 

할 수 있고 스페인에서 가장 사랑받던 축구선수 였습니다

 

2.조지 베스트 - 베스트도 역시 월드컵에 출전경험이 없고 더군다나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월드컵을 넘볼 수도 없는 약체국 중 약체국이었습니다 허나 클럽에서 이뤄낸 기록은 웬만한

 

월드컵 출전한 선수보다 뛰어납니다 50년대 후반 맨유의 스카우터 였던 비숍의 눈에

 

들어와 맨유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는데 베스트는 20대 초반에 리그 우승과 맨유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은 안기고 당시 최고 기록이던 윙어 최다골 32골을 기록하며 발롱도르 상까지 타게 됩니다

 

이때로썬 월드컵 우승 빼곤 더 이상 이룰게 없는 선수였습니다 어린나이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베스트는 마약과 스캔들이 끊이질 않고 결국엔 기량이 날로 쇠퇴해져 가고 맨유에 이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베스트는 북아일랜드 뿐만아니라 영국의 국민적 영웅이고 화폐에 까지 등장한

 

선수입니다 또 베스트는 끊임없는 사건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 그것마저 비틀즈의 멤버와 비견을

 

시키며 5번째 비틀즈 멤버라고 불렸습니다 또 베스트가 사망한날엔 잉글랜드의 1부리그부터

 

하부리그까지 경기중단을 하고 묵념을 하는 등 베스트는 실력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였습니다

 

 3.요한 크루이프 - 크루이프는 자신이 아닌 다른 선수들을 잘 비판하기도 하지만 또 잘 인정해주기도

 

하는 선수입니다 그래서 인지 크루이프가 인정한 선수이면 크루이프가 그 선수들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월드컵 우승없이 펠레나 마라도나에 비견되는 거의 유일한

 

선수입니다 크루이프는 바르샤에서 5년여간 뛰었는데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만 챔스 우승과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바르샤를 감독으로써 이끌면서 바르샤의 리그 3연패와 챔스 우승을 해냅니다

 

선수생활, 감독생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했던 크루이프는 바르샤 팬들에게 신이라고 불립니다 ;;

 

4.라울 곤잘레스 -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는 라울은 현역 선수들 중 가장 클래스가 높은 선수 중

 

한명 입니다 센터 포워드로 가장 많이 뛰었지만 어시스트가 골의 반이나 차지할 정도의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도 갖춘 선수입니다 라울은 17살 때부터 세계 최고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는 등 천재성도 갖추고 있었구요 20대 초 중반에는 이미 호나우두와 세계

 

최정상 선수였습니다 현재 프리메라리가 200호골 돌파, 20-20 클럽 가입자,

 

유럽 클럽 대항전 최다골 기록자, 챔피언스 리그 최다골 기록자, 한시즌 3개 대회 득점왕 기록자 등 ;;

 

이뤄놓은 기록도 대단하지만 앞으로 리그레서30여골을 더 넣으면 우고 산체스의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다 리그골 경신이고 60여골을 넣으면 사라의 프리메라리가 역대 최다골을 경신하게 됩니다 ;;

 

앞으로 이뤄질 것도 많은 정말 현시대의 레젼드인 선수입니다

 

5.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피오렌티나에서 정말 진정으로 사랑받는 선수였습니다

 

10여년간 피오렌티나에서 뛰면서 말 그대로 영웅이었습니다 팀이 강등되는 상황에도

 

팀에 남았으며 2경기 당 한골을 넣는 경기 대비 골 수도 굉장히 높았구요 팀의 재정문제로

 

로마로 팀을 옮겼고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서 바티스투타가 골을 넣었지만 팬들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습니다 ;; 바티스투타는 동상까지 세워진 인물이기도 하구요

 

11경기 연속 득점과 세리에A 역대 최다골 기록자입니다

 

6.디에고 마라도나 - 뛰어났던 선수지만 명문팀에서 뛰지 않았던 드문 선수인데요

 

나폴리에선 신으로 추앙받을 만큼의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마라도나는 당시 나폴리에서 스타플레이어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고 뛰어났습니다 나폴리를 1부리그로 이끌어 올리고  첫 리그 우승과 UEFA컵을

 

따냈던 일의 1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도나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으면 나폴리 팬들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응원했을까요?

 

7.파올로 말디니 - 수비수 이지만 밀란과 함께 수많은 영광을 함께한 선수입니다

 

유럽 클럽 최다 무패 기록, 수많은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영구 결번까지 되었습니다

 

밀란 측은 말디니의 가족이 우리팀에서 뛰기 전까지는 말디니의 등번호를 내줄 수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말디니는 밀란에서 영향이 큽니다 

 

8.티에리 앙리 - 앨런 시어러가 은퇴하고나서 혜성같이 등장한 폭발적인 득점력과 어시스트를

 

무장한 선수가 나왔으니 바로 앙리죠 아스날에서 7년여간 뛰면서 아스날에서 수많은 득점을

 

했고 무패 시즌까지 일궈냅니다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고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끄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이기도 하죠

 

9.로이 킨 - 칸토나가 갑작스럽게 은퇴하지만 로이 킨은 칸토나 못지 않은 리더쉽으로

 

팀을 이끌었고 결국 트레블을 이뤄냅니다 뛰던 당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이기도 했구요

 

10.반 바스텐 - 반바스텐은 밀란 제너레이션의 멤버로써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뛰어났던 스트라이커이고 현재까지도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선수입니다만

 

부상으로 조기 은퇴를 하고 현재는 오렌지 삼총사에서 가장 뛰어난 평을 받는 선수입니다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번째 답변
kill****
채택답변수 309받은감사수 1
고수
프로필 사진

대학 입시, 진학, 국방무기, 인체건강상식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6번 앙리입니다.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3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프로필 사진

일단 저 선수들의 활약상부터 나열해 보도록 하죠 .

 

디에고 마라도나

펠레와 더불어 축구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지며 82년부터 94년까지 4차례에

출전하여 86년 월드컵 우승과 90년 준우승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죠. 그의 클럽 팀의 경력을보자면

언급하신 ssc 나폴리에서는 259경기 출전 115골을 기록하여 그의 일생중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합니다.

또한 87년 나폴리의 리그 우승을 이끌어 냈으며 같은년도 이탈리아 컵을 우승했으며 88년 UEFA 컵 우승 90년도 리그 우승을 이끌어 냈죠. 또한 1979, 1986, 1989, 1990, 1992 올해의 남미 축구 선수(‘엘 문도(El Mundo)’, 카라카스) 와 1986 FIFA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
1986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프랑스 풋볼(France Football)’)
1986, 1987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옹즈(Onze)’)
1996 축구에 대한 공로 골든볼(‘프랑스 풋볼(France Football)’)

 

하는 영예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의 풍기문란한 사생활과 마약복용, 총기난사 , 약물 복용 까지 정말 뒷모습은

문란했죠,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듯 합니다.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함께 당시 최강의 스타 플레이어 크루이프, 크루이프 턴이란 말까지 있고 현재 아약스 이사로 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johann Cruijf) 토탈사커의 주역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1947년 4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크루이프는 펠레나 마라도나 같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17살에 명문 아약스팀에 입단했고 19살에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며 74년 서독에서 월드컵 무대에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크루이프가 들어서면서 네덜란트 축구의 방식이 바끼게 되죠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이른바 '토탈사커'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그 주인공이 바로 크루이프였다. 그리고 크루이프는 아약스 팀에게 세 번의 유럽 선수권 우승을 안겨 주었다. 그 이후 크루이프는 1973년 바르셀로나 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당시 스페인리그 하위권에 머물던 FC바르셀로나에 입단,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의 활약에 힘입어 바르셀로나는 현재의 명문구단으로 발돋움 했으며, 크루이프 또한 유럽최우수 선수상을 3번이나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죠.
1978년 크루이프는 네덜란드팀의 특성이던 자유분방함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었죠. 그러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갑작스레 국제 축구계에서 은퇴합니다. 뒤에 크루이프는 그가 선수시절 몸담았던 아약스팀과 바르셀로나팀에서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코치로 실력을 인정받게되었죠. 발에 공에 붙어있는 듯한 절묘한 드리블, 동물적인 감각의 슈팅력과 순발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크루이프는 세계 축구 중흥에 이바지한 선수로 역사에 남았으며 네덜란드 최고의 선수로 축구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조지 베스트

2005년에 사망한 조지 베스트.

조지 베스트가 발굴되기까지는 재미난 일화가 있죠.

" 보스, 아무래도 천재를 발견한 것 같아요 "

이는 조지 베스트의 경기를 처음 보자마자 아일랜드 스카우터 봅 비숍이 당시 맨유 감독이었던 매트 버스비에게 황급히 보낸 메시지 내용입니다. 이 북아일랜드의 어린 선수는 마치 최면을 거는 듯 상대 선수를 화려하게 돌파했고, 심지어는 분위기를 타면 이미 돌파한 선수에게 되돌아가서 똑같은 기술로 다시 한번 돌파하기도 했다는데요. 당한 선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요? 맨유의 팀 동료였던 패디 크리랜드는 이런 베스트를 가리켜 '비뚤어진 혈기의 소유자'란 표현을 한 적도 있습니다.

신으로부터 축복받았다고밖에 설명되지 않는 스피드와 정확도, 완벽한 볼 컨트롤을 지닌 베스트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수비벽의 틈새를 발견해 무너뜨리기를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성공시켰습니다.

이에 '축구황제' 펠레는 조지 베스트가 진정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에 베스트는 " 내가 조금만 못생겼어도 사람들은 펠레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 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답니다. 베스트 선수, 유머감각이 넘치네요.

그러나 가진 재능에 비해 그의 축구선수로서의 경력은 굴곡이 상당히 심했습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맨유에서 데뷔전을 치른 베스트는 20대 중반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다른 훌륭한 선수들과는 달리 26세에 맨유를 떠나며 사실상 축구선수로서의 화려한 모습은 이 때 끝나게 됩니다. 당시 그는 " 나는 음주와 최고급 자동차를 사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나머지는 어디에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 라는 말로 그의 낭비벽을 드러내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조지 베스트는 1965년, 1967년에 리그 우승메달을 차지했고, 1968년에는 유럽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맨유 팀 내 득점왕을 5회나 차지한 베스트는 당시 그의 발 밑에 세계 축구계를 두게 됩니다. 하지만 1974년 1월 1일, 맨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베스트는 축구계를 잠시 떠납니다.

조지 베스트는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굴곡이 깊은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혼, 알코올 중독, 그로 인한 간이식 수술 등으로 힘든 인생과 다툰 그의 인생은 1984년 음주운전과 경찰협박으로 12주간 감옥살이를 하는 것에서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죠.

하지만 이런 베스트는 이런 좋지 않은 기억보다는 자신이 선보였던 환상적인 플레이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또 그만큼 위대한 플레이를 많이 보여주었고요. 베스트 선수 최고의 순간을 살펴 보실까요?

1966년에는 포르투갈이 낳은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벤피카를 상대로 두 골을 득점하며 맨유의 5대 1 대승을 이끌며 'El Beatle'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베스트가 마치 비틀즈의 제 5의 멤버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로 보도를 했었고요.

아니면 FA컵 노스햄튼과의 경기에서 6골을 득점한 것도 베스트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만하겠네요. 맨유의 8대 2 대승 뒤에 조지 베스트를 마크했던 로이 페어팩스 선수는 경기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 내가 그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순간은 경기가 끝난 후 악수할 때였다. " 베스트 선수가 얼마나 마크맨들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는지 상상이 되시나요?

하지만 베스트 최고의 순간으로 1968년 5월 29일 웸블리에서 벤피카를 상대로 4대 1 승리를 거둔 유럽피언컵 결승전을 빼놓아선 안되겠죠? 1958년에는 너무도 유명한 '뮌헨 항공기 참사'가 있었는데요. 베스트 선수는 이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우승에 큰 기여를 하며 팬들의 머리 속에 악몽과도 같았던 10년 전의 기억을 지워 줍니다.

베스트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재능을 관중들 앞에서 펼쳐 보이며 아직까지도 최고의 선수로 많은 팬들이 추억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진 재능을 전부 보여주지 않고도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축구계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조지 베스트 선수는 영원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만이 아닌, 세계 축구팬들의 머리 속에서 특별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반 바 스텐


이름 : 마르코 반 바스텐(Van Basten Marco)
국적 : 네덜란드
생일 : 1964년 10월 31일
포지션 : FW 공격수
신체조건 : 188cm 81kg
클럽 : 아약스-AC밀란
A매치 : 58경기 24골
주요 경력 :
에레디비지에 4연속 득점왕(1983-84~1986-87 시즌/아약스)
에레디비지에 3회 우승 (81-82, 82-83, 84-85시즌),
유로88 우승(득점왕, MVP)
올해의 유럽선수 3회 선정(1988,1989,1992)
1992 FIFA 올해의 선수
세리에A 우승 3회(1987-88,1991-92,1992-93 시즌/AC밀란)
세리에A 득점왕 2회(1989-90,1991-92 시즌/AC밀란)
월드컵 대표 1회(1990 이탈리아 대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1988-89,1989-90 시즌/AC밀란)

----------------------------------------------------------------------

'그가 곧 신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축구저널리스트 지아니 브레라가 반 바스텐의 모든 것을 지켜본후 내린 결론이다. 아드리아노 갈ㄹ리아니 이탈리아 축구 협회장은 1995년 떠나는 반 바스텐을 두고 '축구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잃었다'며 크게 탄식했다.
AC밀란 펜들이 가장 사랑했고, 지금도 깊이 그리워하는 영웅 반 바스텐.
그는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스트라이커' 리스트에 결코 빠트릴 수 없는 '태산'이다.
이름이 낯설어 고개 갸웃하는 펜도 있다.
월드스타 부상의 지름길인 월드컵(1990 이탈리아 대회/4경기 출장 무득점)에 남긴 흔적이 강렬하지 못했던 탓이다.
'비운의 천재'라는 그늘진 닉네임은 그래서 펜들을 더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반 바스텐은 위대했으나 불운 했다.
우리는 월드컵 경험이 전무한 웨일스의 긱스, 우크라이나의 셰브첸코를 운 없다 하지만
그래도 반 바스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선 경력을 한번 보라 탄성을 참기 힘들다.
굵직한 업적만 나열한게 저 정도다.
게다가 이 경력은 모두 29세때까지 완성한 기록이었다.
그렇다.
반 바스텐의 축구인생에 30대는 없었다.
95년 8월 18일 은퇴식을 치렀지만 사실상의 은퇴는 1992-93 시즌을 마친 20대 끝자락이었다.
한창 뛸 시기에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눈물만 훔쳤으니 그 얼마나 애통한가.
하늘이 그에게 3년만 필드를 더 밟게 허락했다면
지금의 세계 축구사는 전혀 뒤바뀌어져있을지도 모른다.
도무지 불가능을 모르는 킬러로 통했다.
지구촌을 경악시킨 빗장수비가 되레 경악했을 정도면 그것으로 부연은 의미가 없다.
힘있고 빨랐으며 유연했다.
전담 마크맨이 아득아득 악착을 부리고 협력 수비등 방해작전이 총 동원 되도 눈 한번 끔벅하지 낳은 플레이어다.
대신 유럽 정상급 수비수들을 수시로 농락했고,
수시로 골망을 흔들었다.
세리에A 통산 147경기 90골(한 경기당 0.61골).
특히 시각이 따로 없었다고 평가되는 슈팅력은 당대 최고의 경지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기교, 강도, 정확성 등이 완벽에 가깝도록 삼위일체화 해 수문장들은 넋놓고 당하기 일쑤였다.
여차하면 터져나오는 오버 헤드킥, 시저스킥 등의 고난도 슈팅은 아예 전매특허로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전설이 됬다.

 

티에리 앙리는 너무나 잘아실것 같아서 뺏습니다.

 

파올로 말디니

 

우선 말디니는 현존하는 최고의 수비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앙, 왼쪽 모두 뛰어난 능력은 물론 카리스마를 겸비한 현 최고의 수비수죠.

물론 중앙에서는 네스타가 최강이라 하지만 말디니만큼 다양한 포지션에서 최고의 실력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다죠.

데뷔할때 부터 쭉 AC밀란에서 뛰었구요. 그의 아버지도 AC밀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유명한 사람이죠.

베르캄프는 가장 아름다운 공격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전 아스날과 아약스의 친선경기로 자신의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는데요..

참 아쉽네요.

비행기 타기를 꺼려해 월드컵이라든지 챔피언스리그같은 컵대회를 많이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꾸준한 활약으로 최고의 선수 경지에 올랐구요.

그 화려하다는 네덜란드 공격수들중 단연 베스트로 꼽히는 선수중 하나이죠.

물론 인터밀란에서 잠시의 침체기(사실 침체기도 아님)가 있었지만 아스날로 이적한 후 초반 약간 부진한것 빼곤 꾸준한 활약을 했구요..

 

로이킨도 잘아실것 같아 뺏습니다

 

가브리엘 바티 스 투타! 바티 골이죠 ㅋ

저는 바티스타만 하겠습니다. 리버풀의 제라드선수는 워낙 정보가 많거든요 ^_^ 그냥 리버풀코리아 홈페이지 한번 들러보세요 거기 잘 설명 되어있습니다 ^_^

 

대단한 선수였지요..바티골이란 별명이..
바티스투타 슛 ~~골 이걸 말하지 못할 정도로 골을 잘 넣었거든요..
슛하면 골이었으니까요..그래서 바티골이랍니다..
아마도 마라도나. 카니자 다음가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선수일겁니다..
자세한 프로필은 밑에..^^

성명 : 가브리엘 오마르 바티스투타(Gabriel Omar Batistuta)
생년월일 : 1969년 2월 1일
국적 : 아르헨티나
신장 : 185cm
체중 : 73kg
주포지션 : 스트라이커
클럽 : 뉴웰스 올드 보이즈(아르헨티나), 리베르 플라테(아르헨티나), 보카 후니오르스(아르헨티나), 피오렌티나(이탈리아), AS 로마(이탈리아), 인터 밀란(이탈리아)
주요경력 : 1991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1991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 199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94/95 시즌 세리에A 득점왕, 세리에A 연속 경기 득점 기록(11주) 수립, 1996 이탈리안컵 우승, 사상 최초 월드컵 2연속 해트트릭, 00/01 시즌 세리에A 우승

 

그리구 어떤님이 엄청난 자료를 적어놓으셨더군요. 한번 올려봅니다.

 

 

출처 :show_id_layer(this,?lovebati?,?KIN?,?DB?,?100817?,?158880?);?>lovebati

 

안녕하세요 바티의 영원한팬 러브바티 입니다

이런 질문은 제게 딱 인거 같네요 ㅋㅋ

바티옹은 바로 엊그제 은퇴 하셧어요.. 너무 아쉽죠..ㅠㅠㅠ

바티스투타가 어느 정도 였냐면요

우선 감이 안오실거 같아서 근래 세계적으로 잘 나간다는

스트라이커 들과 객관적인 자료로 비교해볼게요..

*국가대표 에이매치 성적*----------------------------

바티스투타 75경기 출장 55골 (경기당 평균 0.73골) -2002년 5.27 자료-

호마리우는 58경기 44골로 (0.75골) -호마리우는 바티와 같이 90년대 4대스트라이커라서-

90년대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반 바스텐'은 58경기 24골로 (0.41골)

호나우도는 81경기 55골로 (0.68골)

티에리 앙리 는 70경기 28골로 (0.40골)

쉐브첸코 는 56경기 24골로 (0.42골)

반 니스텔루이 40경기 21골 (0.52골)

마이클 오웬 은 67경기 28골로 (0.41골)

라울 은 51경기 25골로 (0.49골) -2002년 자료

비에리 는 24경기 10골로 (0.41골) -2002년 자료

--------------------------------------------------------

보셨죠 ? 위와 같이 바티스투타는 세계적으로도 손 꼽히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였

습니다..

물론 호마리우와 반바스텐을 제외한 선수들은 아직 진행형 이기에

저 성적은 어찌보면 무의미 할수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티가 가지고 있는 경기당 0.73골의 기록은 현재 진행형인 선수들도

결코 쉽게 이룰수 있는 그러한 기록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못한다는 뜻도

아니지만요

자 이번에는 프로 경기 기록을 볼까요?

*프로 리그 성적*-----------------------------------------

바티스투타 : 피오렌티나 9년간 총 294경기 182골 (경기당 0.61골)

호나우도 : 최근 11년간 총 225경기 출전 184골 (0.81골)

티에리 앙리 : 최근 11년간 총 295경기 출전 134골 (0.45골)

라울 : 최근 10년간 총 349경기 출전 168골 (0.48골)

오웬 : 최근 8년간 총 205경기 출전 116골 (0.56골)

반니 : 최근 11년간 총 261경기 출전 158골 (0.60골)

쉐브첸코 : 최근 10년간 총265경기 출전 146골 (0.55골)

------------------------------------------------------------

바티스투타의 로마때의 자료는 못구하겠더군요..;;;;

아 물론 여기서도 바티를 제외한 선수는 더욱 선수생활 할

날이 있기에 저 기록은 언제든 바뀔수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여하튼 저 기록만 놓고 봐도 축구황제라는 호나우도 다음에 버금가는 기록임에 틀

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것이 전부 일까요??

바티스투타가 축구인생의 대부분을 지낸곳은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 였습니다.

피오렌티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도 그다지 잘 나가는 클럽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티가 뛰던 시절에도 리그 우승 한번 못해본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봅시다.

바티스투타는 저런 별 볼일 없는 팀과 동료 들과 함께 (스쿠데토는 못 먹었지만..)

각종 컵(코파이탈리아 컵과 같은..) 을 우승 하고 또한

세리에 에이 에서 하위권이었던 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은 장본인 입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높게 평가 하는 것일까요?

호나우도나 앙리 쉐바 와 같은 선수는 빅클럽 소속 입니다..

호나우도 쉐바 앙리 이런 선수의 동료는 자신들에 버금가는 최고의 동료들이었습

니다.. 예를 들면 지단,베컴,베르캄프,융베리,시도로프,카푸 등과

같은 선수 들이죠.. 저 선수들 역시 네임벨류가 엄청난 선수 이고

또한 실력 역시 출중한 선수들 입니다..

호나우도 앙리 쉐바와 같은 선수는 저러한 기라성 같은 선수들의 후방 공격 지원

속에서 골을 넣은것입니다.. 미드필더에서 공격 지원이 너무나 많죠.. 이것이 그

들이 수많은 골을 넣을수 있는 이유중 하나 입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 시절의 바티스투타는 그러한 후방 공격 지원이 사실상

많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루이코스타 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루이코스타 한명으로는 분명 2% 부족한게 사실 입니다.

그러한 열약한 미드필더로부터의 지원 사격속에서 바티는 스스로 골을 만들어

낸것이 많다는 이야기 이죠.

이렇게 누군가 도움으로 부터 골을 넣는 것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과는

굉장히 틀립니다.. 헌데 바티는 매년 득점랭킹 상위권 이었습니다.

덕분에 하위권 이었던 팀 역시 성적이 좋았죠..그의 진가가 나타나는 부분이죠


이런말이 있습니다.. '호나우도가 부상없이 계속 뛰었다면 그는 축구 역사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입니다.. 호나우도 는 현 시대에 축구 황제이죠.

하지만 만약 바티스투타가 "밀란,유베,맨유,레알" 과 같은 빅클럽에서 선수생활

을 했더라면 그 역시 축구 역사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 세계적인 견해

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바티스투타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다 출중한 선수들의

후방 지원 사격까지 더해지면 분명 바티는 더 많은 골을 넣었을것이 틀림없죠.

그렇다면 과연 바티스투타에게 빅클럽에서 스카웃 제의가 안들어 왔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들어 왔죠.

바티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그의 인간성입니다..

그는 무수히 많은 빅클럽에서의 스카웃 제의를 모두 뒤로 하고

자신은 피오렌티나와 영원히 같이 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가 왜 미련하게 피오렌티나에만 머물러 있으려 했던것일까요..??

그 이유는 저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간 피오렌티나와 너무나 정이 들어서.. 피오렌티나 팬과 동료는 자신의 형제,친

구 부모님 같은 존재 엿기에 그가 다른곳으로 이적을 못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돈 보다는 사람들과의 어울려 사는 정을 택한거라 생각 됩니다..

이러한 인간성 과 그의 출중한 실력 덕분에 그는 피오렌티나 시민들이

피오렌티나 시에 그의 동상을 세워 줍니다..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하면

단지 팬들이 그의 동상을 세워 주었겠습니까..? 단순한 팬과 선수와의 관계를 넘

어섰다는것을 증명 하는 것이죠...바티와 그의 동료, 팬, 시민들은 바티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그러한 소중한 존재 였던거죠..

이렇듯 그는 인간적인 축구 선수 였죠.. 그래서 많은 팬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바티스투타는 호나우도 앙리 와 같은 선수들 보다 네임벨류가

낮은것이 사실이죠.. 그 이유를 살펴 보자면 그가 한창 뛰었고 전성기 엿을때는

90년대 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물론 위성방송을 통해 유럽 축구를 많은 사람이

즐기긴 했지만 지금과 같이 보급화 되진 않았죠.. 더구나 보급화 되기 시작한

후 부터는 그는 노쇠해져서 사실상 기량이 예전만 못한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앙리와 호나우도 반니와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를 보낸

것이죠..

또한 그의 클럽은 빅클럽이 아니었기에 언론의 주목을 많이 끌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빅클럽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 선수는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는게

사실이고 팬들 또한 그 선수를 자주 접하게 되는게 사실이죠..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바티의 네임벨류가 낮은거겠죠..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이지 유럽에서 바티의 네임벨류는 세계최고입니다


또 잡담 한마디만 하자면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 위닝일레븐 이란 게임이

대유행 하고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앙리 호나우도 세바 와 같은 선수는

능력치는 가히 최고 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위와 같은 선수들을 우리는

스스로 높이 평가 하죠.. 하지만 바티스투타는 위닝 일레븐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 게임만 하면서 축구좀 안다고 하는 축구팬들은

바티스투타를 게임에 없으니 당연히 허접 인줄 알고 폄하하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는 은퇴를 했기에 게임에 안나오는것이지

그가 게임에 나왔을 당시에는 게임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능력치

이더군요..

흠흠.. 잠시 잡담으로 빠졌네요..여하튼 일부 젊은 축구팬들 제발 위닝만 하면서

축구좀 안다고 하시지들 마시구 실제 유럽 축구도 많이 보고 각종 기사나 축구사

설도 보면서축구에 대한 견식을 높이 셨음 합니다..



이렇듯 바티스투타는 중소 클럽이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엄청나게 많은 골을 넣었고 현재 까지도 그 기록은 쉽게 깨질수 없는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바티스투타를 보고 허접이니 뭐니 폄하 하지 말아 주세요..^^

유렵의 축구 전문가들이 바티스투타를 괜히 세계적인 최고의 선수 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능력과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끝으로 한마디만 더하고 이만 끝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구 해외에서도 호나우도와 바티스투타를 비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동시대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전 공격수 라는 것이

많이 작용 했겠지요..

이러한 기사가 예전에 낫었습니다.. "호나우도는 바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라는 기사가 난적이 있었죠.. 물론 저 역시 호나우도가 바티의 벽을 넘지 못했

다고 생각은 안합니다.. 호나우도는 저도 인정하는 이시대의 축구 황제이고 저 역

시 팬입니다. 그리고 저 기사 역시 매우 주관적인 기사 였죠..

하지만 둘의 실력이 비슷하지도 않고 라이벌이 아니엿으면 저런 기사 자체가

나올리가 없겠죠.. 그만큼 둘의 실력은 비슷비슷 했고 또한 라이벌 이었기에

저러한 기사도 나온거라 생각 합니다...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나우도에게 바

티는 비교가 안되는 인물이다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위의 기록에서도 보다시피 바티의 기록과 능력은 결코 호나우도에 뒤지지 않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티는 결코 호나우도에 비해 뒤떨어지는 선수가 아닌

오히려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동급의 선수라는 것입니다..기억해주세요

알프레드 디 스테파뇨 (현 레알 명예 회장)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는 펠레의 뒤를 이어 FIFA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2위에 올랐다. 그리고 유서깊은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은 요한 크라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보비 찰튼이 아닌 디 스테파뇨를 '금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 무대에서는 단 1분도 활약하지 못했다. 이 불세출의 스타가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던 사연은 매우 복잡하다.

디 스테파뇨의 고향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그의 몸에는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른다. 그러나 디 스테파뇨의 조국은 아르헨티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스페인 사람이 되어 있지만, 그의 아르헨티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다르다고 한다.

흔히 디 스테파뇨를 가리켜 보기 드문 '정력가'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는 현역 시절에 엄청난 스테미너를 바탕으로 90분내내 그라운드를 누볐고, 공격과 미드필드, 수비를 가리지 않고 팀에 공헌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미구엘 무뇨스는, "디 스테파뇨를 한 팀에 두는 순간, 당신은 22명의 선수(포지션별로 두명씩)를 데리고 경기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카데나치오'의 창시자 엘레니오 에레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 스테파뇨는 가장 무서운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였고, 훌륭한 수비수였다.

디 스테파뇨는 자신이 이처럼 놀라운 체력을 갖게 된 이유를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는다. 그는 집안이 가난한 관계로 매일 농장에서 고된 일을 반복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러나 디 스테파뇨는 당시의 기억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가 바로 농장에서 힘든 일을 하던 때에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리베르 플라테를 어릴적부터 동경해왔던 디 스테파뇨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이 명문 클럽에 합류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페데르네라, 라브루나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던 까닭에 '풋내기' 디 스테파뇨는 우라칸(Huracan)으로 임대 생활을 떠나야 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몰라본 리베르에게 분노를 느꼈던 것일까? 그는 친정팀 리베르를 상대로 가졌던 리그전에서 경기 시작 15초만에 골을 터뜨리는 저력을 발휘한다. 이것은 아직도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골'로 기록되고 있다.

디 스테파뇨는 1947년에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대표팀에 발탁되어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는 5골을 몰아넣으며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30년 월드컵 준우승 이후, 국제 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는 이 '젊은 영웅'과 함께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1949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져 있던 아르헨티나에서는 대대적인 선수 파업이 일어났고, 디 스테파뇨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콜롬비아의 밀론나리오스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무려 262골을 터뜨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이는 클럽 역사상 2번째에 해당하는 대기록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디 스테파뇨가 불과 4년만에 200골 이상의 득점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디 스테파뇨에 대한 소문은 유럽 축구에까지 흘러들어갔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유벤투스등이 그의 영입을 위해 경쟁했고, 결국 7만 달러(당시 최고 이적료)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레알이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디 스테파뇨는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팬들의 기대에 곧바로 부응한다. 이적 직후에 펼쳐졌던 바르셀로나와의 '클래식 더비'에서 혼자 4골을 터뜨리는 원맨쇼를 선보이며 팀의 5-0 승리를 주도한 것이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디 스테파뇨와 함께 유럽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창조해나간다. 엑토르 리알, 라이몽 코파, 페렌치 푸스카스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줄줄이 마드리드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유러피언 챔피언스 컵(현 챔피언스 리그)' 대회 5연패를 달성하며 실로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 위대한 팀의 스타들 중에서도 '별중의 별'은 단연 디 스테파뇨였다. 그는 레알이 대회 5연패를 차지하는 기간 동안 치렀던 5차례의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탄생시킨 것을 비롯,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총 49골을 성공시키는등 스페인 축구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총 5차례나 '피치치(프리메라 리가 득점왕)'에 등극한 것과 커리어 통산 800골이 넘는 득점 기록 또한 디 스테파뇨가 남긴 위대한 업적들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디 스테파뇨가 월드컵 무대에 출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가 21세로 한창 물이 올랐던 1946년에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월드컵 대회가 치러지지 않았고, 50년 대회 때에는 군사 정권의 횡포에 의한 국가의 어려운 사정때문에 아르헨티나측에서 스스로 대회 참가를 거부했다. 54년에는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대표팀 경력이 있는 디 스테파뇨에게 FIFA측에서 스페인 국가대표 자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비한 규정'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4년후인 58년에는 스페인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이변을 겪고 만다. 디 스테파뇨는 스위스와의 예선전에서 2골을 터뜨리는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스코틀랜드에게 당한 4-2 패배가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1962년, 이 불운한 축구 영웅은 36세의 나이로 월드컵에서 활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당시 스페인에는 프란시스코 헨토, 루이스 수아레스를 비롯하여 '마법사 군단' 헝가리를 이끌었던 페렌치 푸스카스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고, '정력가' 디 스테파뇨 또한 젊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최후까지 불행했다. 대회 기간 직전에 당한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것이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던 스페인은 브라질에게 패배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디 스테파뇨는 동료들과 함께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축구인들은 디 스테파뇨를 펠레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디 스테파뇨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위대한 것들을 해냈고, 유럽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변하는 디에고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TV 프로에 출연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 "제가 펠레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디 스테파뇨가 펠레보다 뛰어났다고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죠."

"저는 디 스테파뇨를 이야기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펠레가 만약 유럽에 진출했다면 아마도 실패했을겁니다. 반면 디 스테파뇨는 유럽과 남미 무대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죠."

"마라도나가 펠레보다 못한 선수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디 스테파뇨는 확실히 펠레보다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40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던 디 스테파뇨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에스파뇰에서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이나 다름이 없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 우뚝 서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 "축구의 위대함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이 이 자그마한 축구공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오.. 나의 오랜 친구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축구공은 나에게 영광, 명예, 그리고 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소중한 친구 덕분에 지금 나에겐 멋진 가족과 축구를 배우는 아들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P.R.O.F.I.L.E

성명: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Alfredo Di Stefano)
별명: 금빛화살(The Blond Arrow)
국가: 아르헨티나/콜롬비아/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울 곤잘레스도 잘아실것 같아 뺏습니다.

 

순위 매겨 봅니다.

 

1. 스테파뇨

2. 크루이프, 조지 베스트

3. 바티 스 투타, 반 바스텐

4. 디에고 마라도나

5.  말디니 , 로이킨

6. 라울, 앙리

 

솔직히.. 앙리나 라울도 잘하긴 합니다만.. 위에 말한 선수들한테는..쨉도 안되죠..

 

..이런거 원래하는거 안되는겁니다.. 이런게 젤 멍청한 짓이죠 순위 매기는거

 

성경 , 불경, 코란 중에 뭐가 젤쎔? 이란 질문 같네요, 부처님이 더 쎄나요 예수님이 더쎄나요 랑 비슷합니다.

 

여동생이 남? 남동생이 나음? 이랑 마찬가지고요 ,,

 

수고하십쇼.

 

출처마라도나 , 크루이프, 스테파뇨 직접 작성, 조지베스트, 바티 스 투타 인터넷 검색
4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프로필 사진

이런건 절대 비교할수 없는 선수들입니다.

 

님이 쓰신 선수들은 전부 그팀에서 레전드 였습니다.

 

서로 클럽을 위해 최선을 다한선수이니 누가 더 뛰어났고 , 누가 더 못했는지를 따질수는 없을듯 보입니다.

 

다른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디에고 마라도나 선수같은경우에는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 모든 축구선수들의

 

대표적인 우상이었죠.

 

순위를 정한다는것은 좀 어려울것으로 보이며, 다들 팀을 위해 뛰었던 최고의 선수들로 기억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허접한 답변 죄송하구요.

 

수고하세요^^

5번째 답변
dbgh****
채택답변수 122받은감사수 1
고수
프로필 사진

피파시리즈, 번역, 통역, 월드컵, 국가대항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로필 더보기

제 생각에는

 

이런 선수들 모두 잘하긴해서

 

순서를 매긴다는게 참 힘드네여;;ㅎㅎ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제 생각에

 

최고의 선수는  마라도나선수인거같애여~^^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ㅠㅠㅋ

 

근대 다 쩌는선수라-_-ㅋㅋ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개 더보기 현재 페이지5/전체 페이지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