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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사망 심장마비 향년 60세

마라도나 사망 심장마비 향년 60세
마라도나시신 대통령궁 안치...아르헨티나, 사흘간 국가 애도기간 선포


신의 손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선수가(아르헨티나)가 25일(현지시각)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마라도나 사망.

AFP통신 등 복수의 외신들은 이날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향년 60세인 마라도나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은 뒤 통원 치료 중이었다.
아르헨티나 매체 '라나시온'은 마라도나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이후 9대의 구급차가 즉각 도착했으나, 이미 마라도나는 숨진 뒤였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전했다. 
이 기간 동안 마라도나의 시신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현지언론은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26일부터 28일까지 일반인들이 대통령궁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고 전했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펠레 호날두 메시 즐라탄 등 유명인들 애도

축구 황제' 펠레가 자신과 숙명의 라이벌로 꼽혔던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펠레는 25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마라도나가 줄리메컵(월드컵 우승 트로피)을 들고 환호하는 사진을 업로드한 뒤 "슬픈 소식이다. 나는 위대한 친구를, 세계는 위대한 전설을 잃었다"는 글을 올렸다.
펠레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신께서 마라도나의 가족에게 힘을 주길 바란다"며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호즐메’라 불리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별 인사를 했다.
호날두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축구 천재를 잃었다. 마라도나는 마치 마술사와 같았다”며 “마라도나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했고, 메시도 “마라도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그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할 것”이라며 “그의 가족과 친구분들에게 애도를 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즐라탄은 “마라도나는 죽지 않았다. 그는 불멸의 존재다”라면서 “신은 그에게 세계 최고 축구 재능을 부여했다. 마라도나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축구 업적

통산 692경기에 출전 352골 기록.  
아직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 논쟁에서 1~2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인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등은 매번 “당신은 마라도나를 뛰어넘었는가”란 질문에 시달려왔다. 


그만큼 마라도나가 이룬 업적과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뛰어난 축구 유망주들이 나올때맏 어김없이 제2의 마라도나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선수였길래 은퇴 후에도 이 같은 찬사를 받는 것일까.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아르헨티나리그는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리그를 거치면서 23년간 선수 생활을 한 그는 통산 692경기에 출전, 352골을 기록했다. 
역대 최연소(16세)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월드컵에 4차례 출전해 1986년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기록만으로는 그의 축구 인생을 다 설명할 수 는 없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축구인생

 


마라도나 축구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이 우여곡절이 많았다. 
팬들 중 상당수는 그의 롤러코스터 같은 축구 인생사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골든 보이’로 통하는 마라도나는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외곽 빌라 피어리토란 
슬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일한 놀이는 축구. 
다섯 살때 이미 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6세도 되기전에 프로 1군인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축구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1979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축구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곧바로 1982년 스페인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 러나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와의 포틀랜드 전쟁의 여파로 이렇다할 성적을 못올린데 이어 
마라도나는 브라질전에서 폭력을 휘두른 대가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다.


마라도나 신의 손 당시 득점 장면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그러나 마라도나는 1986년 아르헨티나를 세계 최고봉에 올려놓으며 ‘월드스타’로 떠오른다. 
마라도나는 현란한 마술을 보여주며 8강전부터 잉글랜드 벨기에 서독을 연거푸 무너뜨리는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문제의 ‘신의 손’ 사건이 불거진 것도 이 때였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팔로 선제골을 낚은 뒤 “신의 손을 맞고 들어갔다”고 한 말 때문이다.
마라도나는 손으로 골을 넣은지 3분 뒤 축구전문가는 물론 선수들까지 ‘역대 최고’라고 평가하는 골을 뽑아낸다. 
미드필드부터 60m를 단독 드리블하며 귀신같은 페인팅으로 5명의 수비수를 차례로 따돌리고 골키퍼마저 제치고환상적인 골을 터뜨렸던 것.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이후 마라도나는 165cm도 안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펠레이후 ‘마술과 같은 축구(Magical play)’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평가받았다. 
4년뒤 이탈리아월드컵에서도 녹슬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준우승에 올려놓았다. 마라도나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특별한 인연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 전설적인 축구 영웅이다.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이후 FC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나폴리 등 유럽 클럽팀을 거쳤다.
마라도나가 이탈리아 나폴리에 입단할 당시 스타디움엔 팬 수만여명이 몰릴 정도였다.
마라도나는 국적이 아르헨티나지만, 이탈리아 나폴리 시민들에겐 자식 같은 존재다.   마라도나 사망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에서 맹활약한 마라도나는 1987년과 1990년 두 차례 나폴리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현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지난 2017년엔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명예시민이 되자 시내 중심에 있는 델 플레비시토 광장에서 마라도나의 팬 1만여 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유서 깊은 남부의 중심 도시이지만 마피아의 분파 카모라의 근거지라는 오명과 경제난, 실업난 속에 쇠락의 길로 접어든  나폴리는 마라도나 덕분에 신앙과 마찬가지인 축구에서 만큼은 자존심을 한껏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마라도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마라도나 사망  마라도나 사망


1990년 나폴리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4강전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대부분의 나폴리 시민들이 마라도나가 뛴다는 이유만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나폴리 시절 수 백 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로 이탈리아 내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지금도 나폴리 시내 곳곳이 마라도나 벽화들로 장식될 정도로 마라도나는 여전히 나폴리 시민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과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았지만, 약물 중독, 욕설과 폭력, 비만, 탈세 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코카인에 의한 심장 문제로 인해 숨질 뻔한 적이 있으며, 이후 마약 중독 문제를 극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마라도나는 지난 10월30일 60살 생일 축하를 받았는데, 이것이 공개 석상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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