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소규모 배달대행사는 기사들에게 산재보험 설명을 하지 않거나 ‘적용제외 신청서 작성’을 부추기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산재보험 적용 포기각서를 써라’고 하는 사업주가 있다”

배달기사·대리기사가 겪고 있는 산업재해보험 관련 피해사례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플랫폼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선 '특정 사업장에서 대부분 노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전속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아울러 노사가 산재보험 적용을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특고·플랫폼 노동자 업무 특성 상 전속성 요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사업자는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

24일 열린 <플랫폼·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확대> 토론회에서 유상석 서울시플랫폼라이더협의회 정책팀장은 “배달기사가 산재 피해를 보상받는 방법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배달의민족 등 대형 브랜드 전속 라이더는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라이더는 ‘동네바리’라고 칭하는 소규모 배달대행사에서 일한다. 이들 배달대행사는 산재 가입 설명을 하지 않거나 ‘적용제외 신청서’ 작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8월 기준 특고·플랫폼 노동자 221만 명 중 산재보험 적용자는 7.6%(12만 9천 명)에 불과하다.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전속성을 인정받더라도 노사가 산재보험 탈퇴에 동의할 경우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도급 업무 특성상 노동자는 상대적 을에 위치해 있어서 사용자가 ‘산재보험 탈퇴에 동의해라’고 요구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적용제외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보고 있다.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배달기사가 민간 보험을 가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간 유상운송종합보험의 경우 1년 보험료가 최대 천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수 배달기사가 오토바이 구입비·유류비·수리비 등을 자비로 부담하는 상황에서 추가 보험 가입은 ‘그림의 떡’이다. 유 팀장은 “노동하는 사람이면 보험이 당연히 필요하다”면서 “일반보험을 들라는 것은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배달료 현실화’가 근본적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유 팀장은 배달기사의 현실을 ‘300원, 9년’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배달기사로 일하는 9년 동안 배달비가 2700원에서 300원 인상됐다는 뜻이다. 유 팀장은 “배달료가 낮아 많은 배달기사는 동시에 여러 주문을 받는다”며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적정 수준의 배달료 책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리운전 기사는 2016년부터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 20만 명 중 산재보험 적용대상으로 신고된 건은 18명으로 0.009%다. 이상국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총괄본부장은 “‘전속성’ 요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통계를 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산재보험 포기각서를 쓰라’는 사업주 측 요구를 받은 기사들도 있다”고 했다. .

이 본부장은 정부가 특고·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공공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공플랫폼’이라는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통해 업무 이력, 수입관리, 금융활동 지원, 보험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전속성·적용제외 조항 폐지를 주장했다.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한 특고 직종이 확대되었으나 전속성 기준으로 인해 적용 대상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사업주는 적용제외 조항을 악용하고 있다. 두 규정을 전면 폐지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산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율(산재보험 적용자 중 요양 승인 건수 비율)은 0.58%인 반면 특고 산업재해율은 1.95%였다. 업종별 산업재해율은 건설기계종사자 19.15%, 퀵서비스기사 7.74%, 택배기사 1.66% 등이다. 임 실장은 “현장에서 재해를 당하고도 산재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위험의 외주화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 기록만 있다면 누구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박 위원은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업무 지시 원청만 확인하면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부과방식을 통해 전속성 문제에서 벗어나고 다른 직종으로 산재보험 적용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적용제외 조항과 관련해 “산재보험 적용률이 낮은 건 사측의 정책적 개입 때문일 수 있다”면서 “법 실효성을 위해 조항 폐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플랫폼·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확대>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오태웅 고용노동부 산재보험정책과장은 “일하는 모든 사람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정책 기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는 전속성 요건의 전면적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여러 연구와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근열 근로복지공단 적용계획부장은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부장은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 중인 상황에서 사고가 난다면 어느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면서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정청은 내년 상반기까지 산재보험법 개정을 통해 전속성 요건을 폐지할 계획이다. 박홍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토론회 축사에서 “프랑스·영국은 우버 기사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한국 특고·플랫폼 노동자도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적용제외 조항과 관련해선 현실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임종성 의원은 “산업환경과 노동환경이 변하고 있지만 정부는 낡은 전속성 기준을 잣대로 삼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을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확대> 토론회는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좌장은 윤조덕 한국사회정책연구원장, 발제자는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토론자는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이상국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총괄본부장, 유상석 서울시플랫폼라이더협의회 정책팀장, 이근열 근로복지공단 적용계획부장, 오태웅 고용노동부 산재보험정책과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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