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석 달 뒤인 1986년 8월 소비에트 관료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생존지침서를 배포했다. 소련 TV 방송에선 '단지 54명만 급성 방사능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으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감상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새들이 날아다니는 체르노빌 지역 숲의 정경이 담긴 장면도 등장한다.
사망자는 정말 54명뿐이었을까. 유엔 체르노빌 포럼은 2005년 체르노빌 방사선으로 향후 최대 9000명의 암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린피스는 이미 20만명이 사망했고, 앞으로 9만3000명이 치명적인 암에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 역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은 저서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에서 '엄청난 재앙이 닥치면 왜 국가는 진실을 회피하는가'라는 문제 인식을 갖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파고든다. 브라운은 현재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환경사와 냉전사 연구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그는 연구조교 2명과 함께 장장 4년 동안 옛 소련, 유럽, 미국에 위치한 문서고 27곳을 드나들며 연구를 진행했다. 또 체르노빌 사고 후 수습에 참여했던 과학자, 의사, 민간인 36명을 인터뷰했다. 오염 지역 내 공장, 숲, 늪지 등를 직접 찾았고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주변 삼림관리인, 생물학자,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작성된 보고서가 이번 저서인 것이다.
브라운은 체르노빌 사고 당시 수습에 나섰던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어떤 조작을 했는지 서술한다.
체르노빌에서 북동쪽으로 300㎞ 떨어진 벨라루스 체리카우 지역 주민들의 후유증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체리카우 지역 병원 기록을 보면 5~25% 주민들의 갑상선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됐고, 모유(母乳) 견본의 22%에서 방사능 수준이 허용치를 초과했다. 멧돼지 고기 견본 59개 가운데 47개가 소비하기에는 심하게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였다.
이 책에서 브라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자는 다소 뻔한 진리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보인 대응이 옛 소련 지도자의 그것도 무섭도록 닮았다는 그의 지적은 원전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직하게 다가온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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