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목사의 딸 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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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국 교회가 부끄러워 움찔하는 사진 한 장이 있다. 1945년 8·15해방과 함께 평양형무소에서 풀려난 소위 ‘출옥성도’ 12인이 찍은 한국교회사 명장면. 조수옥 주남선 한상동 방계성 최덕지 등이다. 35년 무렵 신사참배 강요가 이어지자 조선장로회·감리회 등이 “이는 국가의식”이라며 받아들이고 동방요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옥 성도를 포함한 수백명의 목회자와 성도는 우상에 결코 절할 수 없다며 감옥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 등이 옥중 순교했다.

12인 중 평양 산정현교회 장로 오윤선(1878~1950)이 있었다. 해방 후 조만식 선생과 함께 김일성에 반대해 순교한 분이다. ‘시집가는 날’ ‘맹진사댁 경사’ 등을 쓴 극작가 오영진이 장남이다. 그는 조만식 측근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오윤선의 형제 형선과 원선 역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오형선은 대한제국 시절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내장원 관리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개화파가 되어 민족운동에 나섰다. 또 황성기독교청년회 활동을 하며 신앙을 가졌고 경남 거창교회 장로가 됐다. 서부 경남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도 치렀다. 사립명문 거창고교 등이 오형선 주남선 등 기독교 계열 민족지도자로부터 비롯됐다. 오원선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운동가였다.

오형선의 장녀 오중은은 부산 일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다섯 늦은 나이에 연희전문학교(연세대)에 입학한 강성갑(1912~1950)과 결혼했다. 연희전문 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강성갑은 윤동주 시인 모교 도시샤대 신학부를 나와 덴마크 그룬트비의 신학과 사상, 농촌개척 정신을 배워 애토·애린·애천을 실천코자 했다. 강성갑은 부산 초량교회 부목사 사임 후 경남 김해 진영에서 농촌 청소년을 모아 흙벽돌을 구워 복음고등공민학교(한얼학교)를 직접 건축했다. 목수 석공 미장이 사환 등이 교사와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청년 시절 이 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일제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 세력들이 지방 행정을 장악했고 그들 눈에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강성갑이 눈엣가시였다. 6·25전쟁이 발발했다. 진영지서장 등 극우 인사들이 전쟁 통에 진영중학 여교사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그들은 ‘똑같은 월급 주는’ 강성갑을 빨갱이로 몰아 낙동강 수산교 아래에서 다른 이들과 집단 처형하고 죄를 감추려 했다. 이 사실이 선교사들에 의해 드러나자 이승만이 분노했고 지서장은 처형됐다. 나머지 가담자들은 시나브로 풀려났다. 54년 목사인 함태영 부통령이 참석해 한얼학교(현 진영여중)에서 강성갑 동상 제막식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 저편이 됐다.

강성갑은 슬하에 2남 4녀가 있었다. 억울한 죽음은 둘째 치고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미망인’ 오중은은 교계 도움으로 진해 모자원 등에서 생활하며 연명했다. 훗날 장남은 독일 광부 생활을 했으나 가난은 벗어나지 못했다. 차남은 진영이라면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막내딸 영희는 개척교회 사모가 됐다.

2017년 여름 강성갑의 3녀 강혜선 권사, 오중은 남동생인 오영은 선생과 진영여중을 찾았다. 탐사 보도를 위해서였다. 칠순의 강 권사는 동상 앞에서 작고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마산 진해 부산 서울로 자식들 흩어 놓으신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의 순종과 같은 믿음을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을 소망하라 가르쳤던 어머니였다”고 했다. 오중은은 주일성수를 위해 토요일에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하는 보수 신앙인이었으나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이웃과 나눈 독립운동가의 딸이었다. 그런 부모를 둔 강 권사의 얼굴은 적요하며 기품 있었다.

강 권사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수원 예장통합 측 큰 교회 권사였으나 누구도 고난받은 여인인 줄 몰랐다. 별세 직전까지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과로가 원인이었다. 강 권사의 적요한 얼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전정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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