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친환경먹거리’ 위한 새 판로 뚫어라

[기획]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의 방향은?
② 대안적 유통망을 개척하라

  • 입력 2020.12.0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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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가 내걸고 있는 이 구호는,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할 열쇠를 농민이, 그중에서도 소농이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환경농업은 소농이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은 여전히 정부 농업정책에서 낮은 비중이며,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도 여전히 미진해 보인다.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제5차 친환경농업 5개년계획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본지는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이 나아갈 방향은’ 기획을 통해 친환경농업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① 오래된 미래

② 대안적 유통망을 개척하라

③ 공동체지지농업

④ 친환경농민 좌담회

지난 1일,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 전부개정령의 시행으로 무농약원료가공식품 인증제가 시작됐다. 비록 늦었고 아직 개선할 점이 많지만, 무농약원료가공식품 인증제는 국산 원료 공급을 늘리려는 친환경농가 및 친환경가공식품업계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존 유기가공인증 식품은 거의 대부분이 수입산 원료를 가공해 만든 제품들이다.

여전히 수입산 위주 유기가공식품

전경진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현재 유기가공식품 수입량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정부 통계나 연구자료가 없다. 다만 국산·수입산 간에 약 20배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걸로 추측될 뿐”이라며 “2014년 한-미, 2015년 한-유럽연합(EU)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인정협정으로 사실상 수입 유기가공식품 문호를 더 열어준 이래, 국산 친환경가공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먹거리’인 친환경먹거리는 ‘내 몸에 건강한 먹거리’로서만 호명됐다. 그 과정에서 친환경먹거리가 이 땅 한반도를 건강하게 하는 먹거리인지, 미국이나 프랑스 땅을 건강하게 한 뒤 배 타고 온 먹거리인지는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 사무국장은 “친환경가공식품 정책을 펼칠 시 유기가공, 무농약가공과 국산 친환경농산물과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해야 국내 친환경가공업이 활성화된다”며 “가공분야를 시장에만 맡길 게 아니라, 중소가공·지역가공업체 또는 가공을 시도하는 ‘장인’들에 대한 지원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인정신

‘장인’정신은 무엇일까. 예컨대 △지역 농산물을 어떻게, 얼마나 활용했는지 △토종작물을 얼마나 활용했는지 △원료 생산 과정에서 생태보전성이 얼마나 담보됐는지 △전통농법이 얼마나 활용됐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사무국장은 “조선오이, 쇠뿔가지 등의 토종작물은 맛과 당도, 향이 다양하다. 토종작물 고유의 향과 질감을 가공 과정에서 구현하면 좋을 듯하다”며 “다만 토종작물 재배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료를 많이 준다거나, 토종작물을 브랜드화하는 식의 정책 유도는 토종의 원칙과 배치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4년 화제가 된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는 일본 오카야마 현의 한 농촌마을에서 빵집을 운영한다. 와타나베 씨는 지역 농가로부터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해 빵을 만들며, 빵 제조과정에서 첨가물은 일절 넣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빵을 발효시키는 균을 만들어 최대한 자연의 맛을 살린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와타나베 씨의 사례 또한 친환경농산물가공 과정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게 전 사무국장의 입장이다.

공공급식에 국산 친환경가공식품을

 

친환경먹거리가 확대되려면 학교와 복지기관, 군대 등 각종 공공영역에서 국산 친환경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야 한다. 2018년 5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초등학교 지혜반에서 열린 ‘찾아가는 먹거리 교실’에서 학생들이 토마토, 브로콜리, 감자 등 친환경농산물로 만든 샌드위치를 맛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먹거리가 확대되려면 학교와 복지기관, 군대 등 각종 공공영역에서 국산 친환경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야 한다. 2018년 5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초등학교 지혜반에서 열린 ‘찾아가는 먹거리 교실’에서 학생들이 토마토, 브로콜리, 감자 등 친환경농산물로 만든 샌드위치를 맛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송정은 농업회사법인 네니아 전무이사는 친환경농업 및 친환경가공식품 산업 발전을 위해 △친환경·우리농축산물 70% 이상 사용 제조사 보호육성책 마련 △공공급식에 안정적 우리농축산물 조달체계 마련 △전 국민 먹거리교육센터를 통한 농업의 가치·식생활 관련 교육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 전무이사가 몸담은 네니아는 매년 300~400톤의 우리밀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친환경먹거리를 수매, 이를 가공한 국산 친환경가공식품을 학교 및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공급한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파행을 겪으면서, 전체 판로의 60%가 공공급식인 네니아로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송 전무이사는 “학교와 복지기관, 군대 등의 각종 공공영역에서 우리쌀, 우리밀 등 국산 친환경농산물 가공식품 공급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소규모 업체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육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전히 공공급식 영역의 가공식품 분야는 대부분 수입품 또는 대기업 제품이 지배하고 있다. 송 전무이사는 “공공급식에서 국산 가공식품을 확대하는 데서 시작해 5년 뒤엔 주요 원료를 무농약으로 전환, 또 5년 뒤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넓혀 가는 계획을 설계한다면, 생산자들도 안정적 판로를 보장받고 가격 안정성도 담보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공공급식 영역의 친환경성 강화를 위한 장기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식당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은 가락시장 등 공영도매시장 또한 친환경농산물의 판로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도매시장의 가격산정방식은 철저히 경매제 중심이다. 2016년 기준 공영도매시장의 상장거래방식을 보면, 경매제 91.6%, 정가수의매매 8.4%로 경매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경매제 하에선 가격이 수급상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가격의 변동성이 크다.

농산물에 대한 제대로 된 확인과 제값 매기기 과정이 중요한 친환경농가들 입장에서, 경매제 중심 도매시장의 거래과정은 친환경농가에 극히 불리하다. 경매제는 학교급식 친환경농산물 가격 산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백 전문위원은 “서울시친환경유통센터는 최근 각 품목이 5년간 매달 어느 정도의 경매가격이 나왔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학교급식 가격심의위원회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으로 산출된 ‘예상가격’이 참고용으로 쓰인다”고 했다.

최근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통해 경매제의 병폐를 고치자는 주장이 각계에서 제기된다. 백 전문위원은 “친환경농산물엔 안정적으로 계약재배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 방식이 적절하다”며 “이를 위해선 경매제보다 시장도매인제를 통한 직거래 도매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회사법인 네니아의 친환경 식당 ‘꽃, 밥에 피다’의 요리사, 스텝들이 함께 만든 친환경 한식 도시락 전문식당 '보자기꽃밥'의 메뉴들. ‘꽃, 밥에 피다’는 지난달 ‘2021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로부터 ‘그린스타’ 식당으로 선정됐다. 농업회사법인 네니아 제공
농업회사법인 네니아의 친환경 식당 ‘꽃, 밥에 피다’의 요리사, 스텝들이 함께 만든 친환경 한식 도시락 전문식당 '보자기꽃밥'의 메뉴들. ‘꽃, 밥에 피다’는 지난달 ‘2021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로부터 ‘그린스타’ 식당으로 선정됐다. 농업회사법인 네니아 제공

한편 네니아가 서울 종로에서 운영 중인 친환경 식당 ‘꽃, 밥에 피다(대표 송정은)’는 최근 세계적 식당 가이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의 ‘2021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의해 ‘그린스타’ 식당으로 선정됐다. 올해 시작된 ‘그린스타’는 지역산 친환경먹거리 활용, 에너지 감소 등 지속가능성 노력을 기울이는 식당에 주어진다.

'꽃, 밥에 피다'의 친환경성은 '꽃, 밥에 피다' 요리사, 스텝들이 함께 만든 한식 도시락 전문식당 '보자기꽃밥(서울 가회동 소재)'의 식재료에서부터 드러난다. 쌀과 채소, 밀은 전부 국내산 친환경농산물을 사용한다. 기름, 장류 또한 강원도 영월에서 국산 깨로 짠 각종 기름, 강원도 철원에서 담근 국산콩 전통된장, 경남 거창 옹기뜸골 간장 등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걸 활용한다.

송 전무이사는 이와 관련해 “코로나 정국에서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친환경먹거리의 건강성을 살필 때, 먹는 사람의 건강 뿐 아니라 땅과 물을 덜 오염시키는 등 ‘과정의 건강’을 보는 게 중요하다”며 “이러한 가치를 이야기하며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이 방향으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한 먹거리, 누구를 건강하게?

건강한 먹거리는 누구를 건강하게 할 것인가? 최근 벌어지는 서울시의 상황은 이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던진다.

보건복지부 주관사업인 영양플러스 사업은 현재 각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데, 그 동안 이 사업에서 친환경농산물 공급원칙을 세웠던 곳은 서울시가 유일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그 동안 관할조직인 서울시친환경유통센터를 통해 학교급식 참여 친환경농가 약 100여 군데로부터 친환경농산물을 받아, 영양플러스 사업 대상인 중위소득 80% 이하 임산부 및 영유아들에 공급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는 “기존에 이 사업을 맡았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이 사업의 지속에 어려움을 표한다”며 식품업체들을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 현대화사업과 학교급식 등 기존 업무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영양플러스 사업까지 수년 간 맡아왔는데, 법적 근거 없이 이를 계속 맡는 건 쉽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식품이 공급돼야 하기에, 일단은 올해 안에 영양플러스 사업 담당업체를 선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이는 친환경먹거리 공급 확대를 추구해 온 서울시의 원칙에서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양플러스 사업에 친환경농산물을 납품했던 전북 남원 농민 이강철 씨는 “매년 영양플러스 사업에 공급된 친환경농산물 금액은 약 15억~16억원 정도였는데, 코로나19 뒤 학교급식이 파행을 겪는 상황에서 이 사업의 친환경농산물 공급원칙마저 후퇴하면 농민들로선 판로 걱정이 커지게 된다”며 “당장 내년은 다른 업체가 맡는다 해도, 최소한 친환경농산물 공급원칙은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7일, 전국먹거리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작금의 상황을 “명백한 서울시 먹거리 정책의 후퇴”라 규정했다. 한 먹거리운동 진영 관계자는 “조례 제정을 통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계속 영양플러스 사업의 친환경성을 지속할 근거를 만들어야 하며, 해당사업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4일 국회에서 농식품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먹거리 취약계층을 위한 농식품바우처 국회토론회’에서 연미영 한국산업보건진흥원 박사는 “임산부의 영양 불균형은 저체중 영아 출산으로 영아 사망률을 높일지도 모르며, 임산·수유부의 먹거리 미보장은 인구집단 전체의 질병 위험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먹거리 기본권 확보 차원에서 기존 식품지원서비스의 접근성 개선과 품목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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