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태국에서 16일 대규모 반정부·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태국 시민 5000여명은 이날 수도 방콕의 민주주의 기념비에서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방콕포스트가 보도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당국이 지난 3월26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 참가자들은 군부 제정 헌법 개정, 의회 해산 및 프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 반정부 인사 탄압 금지 등을 요구했다.
프라윳 짠오차 총리는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다. 2016년 개헌을 통해 전체 상원의원 250명에 대한 지명 권한을 정부에 넘겼다. 총리를 선출할 때도 정부에 국민이 뽑은 하원의원과 동등한 투표권을 줬다. 개헌으로 군부가 장기 집권할 길을 연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반군부 세력인 제1야당이 하원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상원의 몰표를 받아 재집권했다.
지난 2월 정권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야당을 강제 해산시켰다. 6월엔 30대 반정부 활동가인 완찰레암 삿삭싯이 실종됐다. 결정적으로 지난달 재벌 3세에 대한 ‘뺑소니 사건 봐주기 스캔들’이 터졌다. 음료수 레드불 창업자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35)가 2012년 고급 자동차인 페라리를 몰던 중 경찰관을 상대로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고 도망쳤으나, 당국은 사건을 질질 끌다 8년 만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청년 세대들이 레드불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시민들은 지난달부터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주축인 10~20대들은 영화 <헝거 게임>, <해리 포터>, <브이 포 벤데타> 등에서 나오는 상징을 차용해 시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헝거 게임>에서 나온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인다. <해리 포터> 속 마법사 복장을 하고 스스로 ‘민주주의의 마법사’라고 주장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오기도 한다.
현 군부 세력을 용인한 왕실에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입헌 군주제인 태국에서는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왕실에 대한 ‘금기’가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 당국은 반정부 인사를 무더기로 체포했다. 정부는 지난 7일 반정부 활동가 인권운동가 아놈 남빠 등 2명을 폭동 선동 혐의로 체포했다가 보석으로 석방했고, 14일엔 반정부 활동가인 빠릿 치와락을 체포했다가 다음날 보석으로 풀어줬다. 반정부 집회 참석자 12명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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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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