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성 ‘사랑 반 눈물 반’
“모든 방송 매체가 트로트로 몰려가는 이 상황이 좀 웃기네.” “2020년의 현상입니다. 너그러이 해량하소서.” “웃긴다는 거지 화를 내는 건 아니야.” 송골매 출신 DJ 배철수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불현듯 방송사 회의실 풍경이 떠올랐다. “꿩 잡는 것이 매다.” 아침회의에서 부장님은 매의 눈으로 이 속담을 인용했다. 시청률이 잘 나온 PD의 별명은 송골매, 그 반대의 경우는 그냥 매 맞는 표정으로 훈시를 들어야 했다.
이번 주 편성표를 보자. ‘밤이면 밤마다’ 트로트 오디션의 행진이다. 수요일엔 ‘트롯신이 떴다’(SBS), 목요일엔 ‘미스 트롯2’(TV조선), 금요일엔 ‘트로트의 민족’(MBC), 토요일엔 ‘트롯전국체전’(KBS2). 시작한 쪽은 ‘오리지널의 힘’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부화뇌동인가, 김 빼기 작전인가. 제작진은 ‘시청률 높은데 자존심이 무슨?’, 광고주는 ‘매출 높으면 됐지 다양성은 무슨?’일 수 있다. 느긋한 건 시청자다. 그들은 의리로 보는 게 아니다. 재밌으니 보는 거다. 감탄, 감동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들은 생활의 현장으로 돌아갈 거다.
유행은 그런 것이다. 이제 나는 출연자의 심정으로 이 사태(?)를 관망한다. 그들은 절박하다. 부르고 싶다. 부르고 싶은데 불러주는 데가 없다. 절벽에 서본 사람만이 그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무대가 고픈 이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아시스다. 하지만 누구나 그 물을 맛보는 건 아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맞는 노래로 최선을 다했을 때 ‘바로 이 맛이야’가 나온다. 대진 운도 따라야 한다. “저 사람만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텐데….”
후발주자인 ‘트롯전국체전’(KBS2)에도 수많은 사연을 지닌 기성, 신인이 나와 기량을 뽐냈다. ‘돌고 돌아가는 길’(원곡 노사연)을 부른 반가희는 1974년생이다. ‘가요무대’(KBS1)에도 자주 등장하는 가수인데 ‘메소드 창법’이 특징이다. 기계처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 속에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고 부른다. 그날 부른 노래 가사가 그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했다. ‘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강 건너 건너 흘러 흘러’ ‘발밑에는 동그라미 수북하고’ ‘이내 몸은 그 안에서 흘렀네’ ‘동그라미 돌더라도 아니 가면 어이해’ ‘그 물 좋고 그 뫼 좋아 어이해도 가야겠네’ ‘내 꿈 찾아 가야겠네’ 재야의 고수라는 말을 듣는 이들은 솔직히 억울할 거다. 그들은 재야에 있고 싶어서 있겠는가.
눈물은 두 가지 속성을 지녔다. 일시적으론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때론 앞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눈물이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만약 이 사람이 나왔으면 판도가 좀 달라졌을 텐데’하는 가수가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랑 반 눈물 반’의 진해성(1990년생)이다. 나이는 임영웅보다 한 살 많은데 가창력이 어마어마하다. 콘서트 전석매진 경력까지 지니고 있는 그가 ‘트롯전국체전’에 나왔다. “무늬만 현역 가수지 사람들이 모른다. 10년을 하든 20년을 하든 티가 안 난다. 욕심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 아니면 트로트 가수로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없다.”
위기가 기회라지만 사실은 기회 또한 위기다. 그가 서 있는 문은 기회의 문일 수도 있고 위기의 문일 수도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로 유명한 시인 김동명은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1923)으로 등단했다. 출연자들이 이 시를 읊을 때 심사위원들은 박강성의 노래 ‘문밖에 있는 그대’를 들으면 어떨까. ‘문밖에 있는 그대 눈물을 거둬요/ 가슴 아픈 사랑을 이제는 잊어요’ 출연자에겐 ‘오늘은 져도 내일은 이긴다’는 주문이 필수다. 해를 보라. 지고 다시 뜨지 않나. 꽃을 보라. 지고 다시 피지 않나. 해는 매일 지고 꽃도 매년 지는데 평생에 몇 번 지는 걸 갖고 뭘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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