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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라고 음악 잘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제 술친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됐네요.”

작년 10월 27일 신승훈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가수 김현식이 생전에 라디오에 출연해 후배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터뷰 녹취록을 공개했다. 자신의 두 멘토 김현식과 유재하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불꽃같은 노래를 들려준 김현식, 작사 작곡 노래 연주를 모두 소화해낸 싱어송라이터 유재하를 통해 가수의 꿈을 키운 신승훈은 선배의 기일에 데뷔했다. 이후 수많은 후배들이 김현식과 유재하의 뒤를 따라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김현식과 유재하는 인연이 깊다. 1984년 대학생 신분으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유재하는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 가입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은 당시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들인 김종진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 장기호 박성식(빛과 소금), 그리고 유재하로 구성됐었다. 유재하는 정원영을 통해 김종진 장기호 등을 만나게 됐다. 김현식은 건반,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유재하를 팀에 꼭 필요한 존재라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김현식은 유재하를 매우 아꼈다.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이 다 같이 술을 마실 때 다른 이들이 다 나가떨어져도 둘은 밤새 마셨다고 한다.

김현식은 1991년에 나온 유고앨범 6집까지 여섯 장(그 외에 다수의 편집앨범이 있다), 유재하는 1987년 유일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한 장의 앨범을 각각 발표했다. 사반세기가 흐른 후 듣는 둘의 음악은 여전히 특별한 매력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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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세련된 어법이 혀를 내두르게 하며, 그 안에 섬세한 감성이 읽힌다. 초등학교 때부터 악기를 다뤘고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한 유재하는 다재다능했다. 그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거의 원맨밴드 형식으로 녹음됐다. 원래는 김종진이 이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하려 했다. 하지만 김종진은 스튜디오에 가서 기타 연주 녹음을 하다가 유재하가 직접 연주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 양보를 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첫 번째 곡 ‘우리들의 사랑’에 흐르는 퓨전 스타일의 기타솔로는 유재하의 연주다.

유재하는 술이 오르면 자주 가는 방배동 카페에 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라이오넬 리치, 배리 매닐로우의 노래를 불러줄 정도로 팝을 좋아했고, 재즈도 즐겨 들었다. 실제로 그는 팝, 재즈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갖추고 있었다. 앨범에 실린 ‘우리들의 사랑’, ‘지난날’, ‘텅 빈 오늘 밤’에서는 당시 동시대의 여타 가요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세련된 편곡을 들어볼 수 있다.

유재하 음악에 ‘영속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유는 바로 서정적인 발라드 때문이다.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는 조용필 7집(1985)에, ‘가리워진 길’은 김현식의 3집(1986)에 먼저 실렸다. 두 곡은 당시 트로트 일색이던 국내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메이저 장조의 발라드였다. 여기에 미사여구 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가사가 빛을 발한다. 본인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한 노랫말 말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라는 가사나 ‘우울한 편지’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유재하의 노랫말은 동료나 후배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고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유재하의 음악이 우리에게 ‘팝’ 이상의 감동을 주는 이유도 바로 이 가사 때문이다. 유재하의 음악은 가요가 비로소 팝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한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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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가 섬세했다면 김현식은 거칠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순수한 성정이 음악에서 묻어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김현식은 인생과 목소리 둘 다 불꽃같았다. 1980년 1집 ‘봄여름가을겨울’로 데뷔한 김현식은 언더그라운드의 라이브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다. TV 프로그램 ‘영 일레븐’에도 나왔지만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조금 불량해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4년 만에 발표한 2집에서는 ‘사랑했어요’가 크게 히트했다. 사랑과 평화가 연주로 참여한 이 앨범은 완성도도 좋았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주로 활동해온 김현식은 자신의 밴드를 갖길 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여기서 건반을 맡은 유재하는 자신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팀을 떠났다. 그렇게 만든 3집에서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히트시켰다. 젊은 연주자들을 발굴한 김현식의 혜안, 그리고 멤버들의 진취적인 어법을 잘 살려주는 리더십이 빛을 발한 명반으로 당시 2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전성기가 막 시작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1987년에 마약상용혐의로 구속된다.

이후 김현식의 밴드는 김종진 전태관의 봄여름가을겨울, 장기호 박성식의 빛과 소금으로 나뉘게 된다. 김현식은 1988년부터 활동을 재개해 이듬해 그가 참여한 신촌블루스 2집, 솔로 4집이 차례로 나온다. 두 앨범에서 모두 한층 성장한 노래를 들려줬다.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편곡,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4집에서는 이정선의 ‘한밤중에’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장기호의 ‘사랑할 수 없어’ 윤상이 만든 ‘여름밤의 꿈’ 등이 담겼는데 특히 김현식 자신이 가사를 쓴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도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이외에도 같은 해에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부른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크게 히트했다.

왕성한 활동과 함께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았다.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앨범인 5집(1990)에는 다소 거친 목소리가 담겼다. 이미 건강을 해친 후였다. 노래 ‘넋두리’에서 나오는 초침 소리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노래는 오로지 김현식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고, 동시에 음악만이 가진 힘이었다. 사후 1991년에 나온 6집의 ‘내 사랑 내 곁에’는 공전의 히트를 거두게 된다.

최근 김현식이 생의 마지막 1년 동안 병상에서 녹음한 21곡의 미발표곡을 담은 앨범 ‘김현식 2013년 10월’이 공개됐다. 사실 김현식 사후에 추모앨범을 비롯해 이런저런 편집앨범들이 나온 바 있다. 이번 앨범은 ‘그대 빈들에’를 비롯한 ‘외로운 밤이면’, ‘수’, ‘이 바람 속에서’, ‘나는 바람 구름’, ‘지난 가을에’, ‘내 사랑 어디에’, ‘나 외로워지면’ 등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김현식의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갈라지는 목소리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대 빈들에’와 같은 김현식 특유의 멜로디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김현식밖에는 들려줄 수 없는 감성이 아닌가? 그 누구의 스완 송도 이처럼 처절하기는 힘들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AMG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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