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人사이트] "노무현의 말이 꽂혔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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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10. 오후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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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도지사 정점서 추락 '오뚝이' 이광재 의원
"차기 대권? 나 말고도 대통령 더 잘 할 사람 많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20대에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했다. 10년의 분투 끝에 목표를 이뤘다. 30대 후반 그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다. 스스로를 조선시대 정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칠 것이 없었다. 10년 뒤엔 마치 이성계같이 우뚝 서고 싶었다. 두 차례 국회의원을 거쳐 도지사로 자리잡으며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하늘 높이 비상한 이카루스가 햇빛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한순간에 추락했듯이 유죄 판결을 받고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 10년동안 정치판에 나설 수도 없게 됐다. 10년의 유랑세월을 거쳐 다시 오뚜기처럼 여의도에 입성했다. 다들 그가 다시 대권을 꿈꾸고 있다고 수군댄다.

◇난 활시위 떠난 화살처럼 무기력…이제 '물처럼 겸손하게, 산처럼 꿋꿋하게'
젊은 시절 최고 권력을 맛본 이광재 의원(55·더불어 민주당)은 지금도 그때의 그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그는 대권 도전의 의지를 묻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이야기했다. 활시위를 막 떠난 화살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나, 나중에는 종이 한 장 찢을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절절히 느낀 탓일까? 하지만 큰 꿈을 지닌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작은 꿈이 아닌, 큰 꿈은 무슨 꿈일까? 그는 최근 ‘노무현이 옳았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만났을 때 노 대통령이 자신에게 한 당부의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주세요.”

당시 노 대통령은 마흔두살의 국회의원 당선인이었고, 이 의원은 노 대통령보다 스무살가량 어린 젊은이였다. 그때 이 의원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이 사람은 최소한 정치를 권력 확보의 수단이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유용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뜻 그의 손을 잡았고,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고 했다. 지난 7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의원은 조급하지 않았다. 마치 서서히 흐르는 큰 강물처럼 여유있게 지난 10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큰 꿈을 이야기했다.

”트위터 프로필에 ‘물처럼 겸손하게, 산처럼 꿋꿋하게’ 라고 썼다. 무슨 뜻인가?”
-최근 10년간 유랑, 유배 생활하면서 느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간다.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간다. 노무현 대통령도 생전에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사행천 사진 구해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막힘없이 순리대로 산다는 뜻이다. 많은 산을 올랐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벼슬을 잃으면 갈 곳이 산밖에 없다고 했다. 산이 주는 에너지와 힘이 있다. 바람은 결코 산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산처럼 꿋꿋히 살고 싶다.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아왔나?”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니 입 안에 피가 한 가득 고여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자다 보니 이가 깨져서 피가 난 것이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 싶어 중국에 갔다. 중국 베이징의 청화대 공공관리학원에 방문학자(교환교수)로 2년 반 머물렀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한테 강의를 했던 학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조순 부총리 비롯한 진보, 보수를 망라한 사회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1년간 했다. 그리고 싱크탱크인 여시재에서 5년간 세계의 흐름과 한반도의 미래 등을 공부했다. 그러다가 이번 국회에 들어왔다.

“지난 10년이 휴식이면서 재충전한 시간들인가?”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니 정점이라면 정점이고, 나락이라면 나락인 시간들을 보냈다. 그래서 10년간 나를 되돌아본 시간을 가졌다. 또 역사나 사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비교적 일찍 청와대에 들어가 국정상황실장도 하고, 국회의원, 도지사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 결심하고, 10년간 분투해서 집권을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집권 뒤 플랜과 사람을 준비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국사회 위기의 본질을 파악해 정밀한 설계도를 마련해 집을 지어야 했다. 집을 지으려면 재목, 목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했다. 큰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원로들을 만나며 깊이 느끼게 됐다.

◇사람들과 싸우는 정치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도지사 시절이 최고
“그렇다면 가장 하이라이트 시기는 언제인가?”
-강원 도지사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정치하는 것보다 행정이 내 성격에 맞았다. 정치를 하며 사람들하고 싸우는 것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았다. 매일 아침 과장 한 사람과 춘천 공지천을 걸으며 협상을 했다. 꼭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이야기해서 한달 뒤 보고를 받았다. 국장들과 아침을 먹으며 도 행정을 변화시킬 아이디어 하나씩을 일대일로 약속했다. 도지사 당선 뒤 처음 간부회의를 가보니 간부 몇 사람과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이런 회의 관행을 고쳐 간부회의를 청사 내에 공개적으로 방송을 했다. 그러면서 청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졌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러 바쁘게 다녔고, 마침내 유치에 성공한 것도 보람있고 좋았던 시절이다.

“최근 출판한 책 제목이 ‘노무현이 옳았다’이다. 무슨 뜻인가?”
-이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다시 출발점이 어디일까를 고민했다. 우리 사회에 이런 합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은 그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이 사람 대접을 받고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수 없을까? 분열된 역사 끝내고 통합의 나라를 만들 수 없을까? 변방의 역사를 끝내고 세계에서 당당한 나라가 될 수 없을까? 서울로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 균형발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 기술과 정보 혁신에 상당히 몰두했던 것이 노무현의 시대정신이었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과거 1980년대에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0%를 넘었는데, 지금은 40%밖에 안된다. 변방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균형자론 내세웠을 때 다들 비웃었다. 중국이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지 누가 예상했나? 2000년에 노 대통령이 앞으로 대통령은 디지털 리더가 돼야 한다며 참여정부의 전자업무 시스템인 이지원 시스템 짤 때 다들 한가한 대통령이라고 비웃었다. 노 대통령이 그때 했던 질문이 지금 해결과제로 더 크게 다가온다. 퇴임후 봉하마을에 가셨을 때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과 생태주의 등에 천착하셨다. 그 문제를 푸는 작은 단초를 모아 책으로 냈다. 이 문제를 풀어갈 때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586 세대가 이른바 ‘꼰대’가 되어 젊은 세대와 많은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나도 꼰대 세대에 해당한다. 나는 83학번이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33년이 지난 뒤 대학생이 됐다. 또 내가 대학생이 된 지 이미 37년이 흘렀다. 우리한테 6·25는 먼 이야기처럼 젊은 세대에게 우리 이야기는 옛 이야기이다. 비대해진 욕심과 미련이 586 정치인을 꼰대로 만들었다. 지금 586 정치인 세대가 할 일은 세 가지가 있다. 먼저 다수가 진리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어 국민이 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위원이 300명인데, 직업은 2만1000개다. 300명이 이들 직업의 입법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보다 더 정교하게 국민이 자신이 낸 정책를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온라인의 진화에 맞는 직접 민주주의를 제도화 해야 한다. 두번 째는 여야 공존의 통합 정치를 이뤄야 한다. 세번 째는 마치 과거 3김이 몇십살 아래의 386 젊은이들을 발탁했듯이, 젊은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시대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정치 인재 키우는 싱크탱크 발달…우리는 줄 잘 서면 출세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 문외한이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전문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전문 정치인 양성이 필요하다고 책에서 강조했다. 전문 정치인이 양성되는 외국의 사례가 잇나?”
-우선 미국엔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발달했다. 특히 야당 되면 야당 성향의 싱크탱크가 바빠진다. 다음 선거에 집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진보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는 바빠지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헤리티지 연구소가 바빠진다. 정권을 잡으면 이런 싱크탱크의 인물들이 발탁된다. 중국은 단계적으로 정치인을 키우고 발탁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을 발탁해서 기획과 현장,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능력을 평가하고, 단계별로 공산당 중앙당교에서 교육을 한다. 8000만명의 당원 가운데 40만명으로 추리고, 다시 4만명으로, 다시 2000명으로, 최종 중앙 상무위원 7명으로 좁혀진다. 우리나라는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또 능력보다는 줄을 잘 서면 출세하는 시스템이다. 두뇌와 실무 역량이 함께 극대화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존의 정치 리더와 디지털 시대의 정치 리더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존 리더는 나를 따르라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상에서 나를 따르라고 했는데 그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미국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을 선택했다. 결국 미국은 시스템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인물 중심으로 정당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현대의 디지털 정신은 오픈소스 활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앱 만들어서 사회적 진화를 이끌어 낸다. 어느날 짠 하고 나타나는 정치적 천재는 이제는 없다. 우리 정치도 오픈소스를 공개하고 함께 사회적 진화를 이뤄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정치 리더는 디지털 기술의 힘을 이해하고, 세계의 시선으로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광재 의원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국력은 경제력에서,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평소 교육을 크게 강조하는 이유는?”
-노 대통령은 어릴 때 너무 힘들게 살아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으셨냐고 항의하는 편지를 쓴 일을 평생 가슴 아파 하셨다. 나도 강원도 깡촌에서 태어나 연세대 입학하고, 뭔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야학교사를 했다. 가난하더라도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과 나의 공통된 간절한 생각이었다. 부모의 재산이 아이의 교육수준으로 이어지고 소득 불평등을 가져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 어렸을 때는 누구나 ‘동아 전과’를 사볼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동아 전과’를 확실하게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과외선생을 모두에게 붙여주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은 네이버와 다음이 국민 참고서인데, 구글에 밀리고 있다. 국민 참고서를 정말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집현전’을 만들어 온 국민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있는 모든 자료를 디지털라이징해서 누구나 쉽게 무한정의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는 공부가 외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검색시대가 됐다. 외우는 대한민국이 아닌, 질문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강의를 열어야 한다. 세계적 석학의 강의를 온라인에 올려 ‘교육판 넷플릭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에 지식을 나눠주는 선진국이 돼야 한다. 그것이 존경받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다.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나오고,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본인이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디지털 시대에 소득은 안정되고, 비용은 적게 들고,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국가가 복지 국가다. 공동체가 튼튼한 나라일수록 평균 수명도 길고 행복지수도 높다. 하버드 대학에서 70년간 연구해보니,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요소는 ‘좋은 관계’였다. 좋은 관계가 있는 도시 만들어서 그것을 플랫폼화하고, 누구나 저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한국 상황은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모을 수 없는 고비용 사회이다. 주거, 교육, 의료, 문화를 저비용으로 할 수 있는 미래도시를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이 가능해야 복지국가가 된다.

“정치판에 친문과 반문의 갈등이 심하다. 여야 갈등도 최고조인 상태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노사모하고 첫번째 모임을 했다. 노 대통령이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앞으로 노사모는 뭘 할 것인가? 라고 물었다. 그때 노사모 회원들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견제! 견제!’를 입을 모아 외쳤다. 그때 깜짝 놀랐다. 지금 여당은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됐다. 노래 가사처럼 내 안의 내가 너무 많다. 노 대통령이 당시 야당과 연정해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그때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보니 하고 싶은 것 다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60점짜리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야당이 적이 아니니까, 연정해서 60점짜리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는 나는 정치를 깊이 몰랐다. 이제 돌이켜보니 그 말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게 됐다. 꿈이 큰 사람은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다. 100% 자기 회사면 외부 간섭은 덜 받겠지만, 세계적 회사로 키우려면 주식을 상장해야 된다. 그때는 더 이상 자기 회사가 아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가뭄이 들었는데 사자가 물가에서 사냥을 하지 않는다. 물 마시러 온 동물을 잡으면 사냥은 쉽지만, 곧 먹잇감이 사라져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코로나 19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기회이다. 빠른 검사와 치료제 투입으로 코로나 클린 국가 선언을 할 수 있다면, 진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다. 빨리 공수처 문제 등을 종결하고 클린 국가로 가야 한다. 이제 강렬한 절실함으로 ‘경제의 계절’로 넘어가야 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은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나?”
-갈등의 본질인 검찰 개혁이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권력기관이 스스로 권력이 돼, 국민 위에 군림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군인들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 없애면서 군인들이 권력의 정면에서 내려왔다. 국정원은 과거 안기부 시절 수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냈으나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국민의 국정원으로 돌아왔다. 국세청은 야당을 지지한 기업을 세무조사하다가 세풍 사건으로 국민의 품으로 왔다. 이제 권력기관 가운데 검찰 하나 남았다.

◇ 군·안기부·국세청 모두 개혁…秋·尹 갈등 본질은 마지막 권력기관 검찰개혁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때를 기다리는 정치인은 비겁한 정치인’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본인은 더 큰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한 뜻은 그 시대에 하고 싶은 것을 몸을 사리지 말고 하라는 뜻이다. 그때의 주요 과제와 모순에 도전하라는 말이다. 너 말고도 정치할 사람 많으니 주저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했다. 지금 나는 정치 초년생이나 마찬가지다. 10년만에 돌아왔다. 지난 몇개월은 정책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내가 추구하는 교육판 넷플릭스, 디지털 집현전 등을 현실로 만들려면 많은 국회의원을 만나서 설득하고, 법을 바꿔야 한다. 교육판 넷플릭스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깔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그것이 진짜 큰 정치이다.

“주변에서 이 의원이 차기 대권 도전을 예측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 30대에는 정도전처럼, 40대에는 이성계처럼 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권력은 화살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 시위를 떠날 때는 강렬한 위력을 지니고 있어도, 나중에는 힘이 빠져 종이 한 장 못 뚫는다. 나는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 이 분열된 나라를 합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 말고도 대통령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치인 이광재는 어떤 꿈을 갖고 있나?” 
-초선의원 때 목욕탕에 갔다가 한 3선 의원을 만났다. 그 선배는 옷깃에 단 국회의원 배지를 매일 꼭꼭 조여야 또 당선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정치하는 목적이 당선이었다. 그 말을 듣곤 의원 배지를 안 달고 다녔다. 지금도 안 달고 있다. 정치꾼은 당선을 추구하고, 정치인은 꿈과 현실을 조화시킨 성공을 추구하고, 정치가는 현실보다는 미래의 꿈을 중시한다. 나는 정치가의 길을 가고 싶다. 권력의 힘은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다. 정치는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생각의 힘이다. 나는 자리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생각의 힘을 키워 새로운 시대의 열망을 만들고 싶다. 국회의원 하면서 지역구 경조사를 10번도 안 갔다. 다들 다음 선거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경조사 가서 배지를 꼭꼭 조이는 것보다 지역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이 맞다고 본다. 꿈을 크게 갖자. 꿈이 작으면 눈 앞의 전리품을 갖고 다투게 된다. 큰 꿈을 가지면 안 싸운다.

의원사무실 한쪽에 여러 개 붓이 걸려있고, 한지도 펼쳐져 있다. 평소 틈이 나면 붓글씨를 쓰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고 한다. 논어의 한 귀절을 여러번 연습했다. ‘己欲立而立人’이다. 자기가 서고 싶은 자리에 남을 세워라. 글씨체에 굳은 의지가 묻어 난다.

kichen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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