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현세 모습만 보고도 개과천선…스크루지, 본성은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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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25. 오전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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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음울한 크리스마스다. 코로나에 대해 잠시 잊으려고 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으니 기억과 달랐다. 스크루지는 착했고 유령도 ‘순한 맛'이었다. 내 기억과 달리 지옥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세 유령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과거의 유령, 어린 시절의 쓸쓸한 기억을 되살린다. “잊어버리고 있던 자신의 불쌍한 과거 모습에 그는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스크루지는 “어제저녁 한 꼬마가 사무실 문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일을 떠올리고는 “그 애한테 뭐라도 주어서 보낼 걸 그랬다”며 뉘우친다. 자기 연민이 곧바로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발전한 것이다. 근본은 착한 사람이었나 보다.

두 번째로 현재의 유령이 찾아온다. 유령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스크루지는 자기 피고용인과 조카를 “돈도 없으면서 웬 크리스마스 타령”이냐며 면박을 주었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자기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었다. “삼촌은 스스로 벌을 받고 있지. 안타까워. 결국 고생하는 사람은 누구겠어? 늘 그분 스스로 고통을 받지.”

끝으로 말 없고 음침한 미래의 유령이 온다. 스크루지가 지금처럼 살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 유령은 예상되는 미래를 보여준다. “살았을 때 인정머리 있게 굴었다면 외톨이로 죽지는 않았겠지.” “그 영감탱이한테 내려진 벌이지요.” 한 남자가 죽었다. 사람들이 비웃는다. “남자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유일한 감정은 기쁨뿐이었다.” 그 남자가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크루지는 충격을 받는다.(‘아니, 그 정도도 예상 못 했단 말인가' 싶어 나도 충격을 받았다.)

스크루지가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는지, 유령은 그에게 지옥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스크루지는 지옥이 아니라 현세만 보고도 개과천선해 버렸다. 그 덕분(?)에 ‘찰스 디킨스의 필력으로 생생하게 묘사된 지옥 장면을 찾아 독자님께 소개하겠다’며 책을 뒤지던 나도 닭 쫓던 개처럼 무안해졌다.

소설 중 지옥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나온다. “유령이 내뿜는 지옥의 공기는 대단히 끔찍했다.” 세 유령이 나타나기 전 찾아온 옛 친구 말리의 유령에 대한 묘사다. 그런데 곧바로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자네가 죽은 지 칠년이나 되지 않았나.” “칠년 내내 쉴 새 없이 떠돌아다녔지.” 글쎄, 죽은 후에도 이승을 떠돌아다닌다는 대사와, 몸에서 지옥의 공기를 내뿜는다는 묘사는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지? 현세가 곧 지옥이라는 뜻?

디킨스와 지옥이 만나는 지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19세기 런던이다. “동식물의 찌꺼기는 물론 (…) 온갖 메스꺼운 폐기물이 오로지 템스강에 버려졌다.” 1850년에 디킨스는 탄식했다. “런던 다리 아래는 스틱스강처럼 심각하고 런던 부두는 아케론강만큼 검다.” 1853년 <빌더>라는 잡지에 실린 묘사다. 스틱스와 아케론은 그리스 신화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강물이다. 런던 주민이 직접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이라며 절규한 것이다. 위생 상태가 이렇다 보니 19세기 중반에 런던은 잊힐 만하면 콜레라에 시달렸다. 1832년과 1848년과 1854년에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크리스마스 캐럴>이 출판된 해는 1843년이다.) 으윽, 이렇게 나는 다시 코로나 생각으로 돌아왔다. 내년까지 독자님도 건강하시길.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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