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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시작은 거대하나, 그 끝은 미약했으니…

[2020 연말 결산] ④영화 '코로나 쇼크'
'기생충'이 열고,'코로나19'가 뒤덮은 영화계
K무비 세계화에도 극장 줄줄이 휴점및 폐업
그럼에도 불구하고,여성영화인 'F등급'약진 눈길

입력 2020-12-23 18:00 | 신문게재 2020-12-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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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영화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극장 관객도 다시 급감하고 있다. 신작 개봉에도 평일 관객 수는 5만여 명 안팎으로 크게 떨어졌다. 21일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

 

한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 2억명을 넘어선 ‘호시절’도 있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2020년 영화계는 ‘기생충’으로 쏘아 올린 폭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예년에 비해 극장 매출액은 70% 이상 감소했으며 폐관·영업 중단을 한 상영관도 30곳을 넘어섰다.

좌석 간 거리두기 및 방역 수칙 이행에도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 제작비만이라도 회수하려는 목적으로 넷플릭스 직행을 택한 화제작들도 많았다. 할리우드 거장들과 스타들의 죽음도 유난히 잦았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타올랐다. 여성이 제작한 영화와 배우, 감독들의 활약으로 ‘F’(female) 등급 영화들이 흥행과 작품성을 띄며 충무로에 품격을 더 했다. 올 한해 다사다난했던 영화계 이슈를 추려봤다.


◇세계로 뻗어나간 ‘기생충’

아카데미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2020 4관왕에 성공한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 4개를 들고있다.(사진=아카데미 인스타그램)

 

‘로컬 영화제’로 불리며 백인들의 잔치로 치부됐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올해 만큼 통쾌했던 적이 있던가. 올 한해 세계 영화계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으로 들썩였다. ‘기생충’은 2월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총 4관왕을 석권하며 전 세계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봉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비영어권 영화 연출자로는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대만 국적의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감독상을 받았지만 모두 할리우드 작품으로 받은 상이었다. 

한 작품이 주요 상 네 부문을 휩쓴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은 한국 영화 최초에 그치지 않는다.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한 사람이 한 작품으로 4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도 최초다. 월트 디즈니가 1954년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 단편 다큐멘터리,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등 4개의 트로피를 받은 적이 있지만 각기 다른 작품이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기생충’은 한국 101년 영화사상 최초로 오스카를 거머쥔 작품이기도 했다.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한국 영화계가 맺은 의미 있는 결실이었다. 이후 봉 감독은 지난 9월 미국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20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OTT 선 공개, 후 극장 개봉…무너진 영화 생태계?

승리호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계에서 손익분기점 640만 명 돌파라는 ‘큰 산’을 돌아 OTT공개를 택한 ‘승리호’.(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기생충’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계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국내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4월은 지난해 대비 13.7%인 97만명으로 바닥을 찍었다. 관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래 최저치였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극장을 찾은 영화 관객 수는 지난 20일까지 5885만 6824명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2억 2667만 8777명)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영진위의 공식 집계가 시작된 2004년(6925만명) 수준에도 못 미친다. 올해 극장 매출액도 5046억원으로 지난해(1조 9139억원)의 26.3% 수준으로 줄었다. 관객이 급감하자 영화계는 본래 형체를 잃고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졌다. 송지효·김무열 주연의 스릴러 ‘침입자’, 신혜선의 첫 스크린 데뷔작 ‘결백’, ‘파수꾼’으로 유명한 윤성현 감독의 첫 상업영화 ‘사냥의 시간’ 등 올해 초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었던 영화들은  수차례 개봉을 연기하거나 극장 대신 OTT 직행을 선택했다. 

제작비라도 회수하기 위해 넷플릭스행에 줄을 서고 있는 현상에 1990년대부터 다수의 흥행작들을 만들어온 한 제작사 대표는 익명을 요구하며 “과거 대기업 자본의 영향으로 흥행이 보증되는 영화만 제작되던 시기를 암흑기로 불렀지만 그나마 영화를 만들기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예 숨통이 끊긴 심정”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통상 극장에서 개봉한 뒤 마지막 단계로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던 영화 배급 구조는 무너진 상태다. 그나마 개봉하지 못한 제작비 60억원 이상의 중급영화들은 넷플릭스와 독점공개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몸이 닳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스릴러 영화 ‘콜’과 코미디 영화 ‘차인표’, 2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SF 대작 ‘승리호’마저 넷플릭스 상영 목록에 올라 눈길을 끈다.


◇페미니즘 대중화,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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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과 더불어 내년 일본 개봉을 확정지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한 장면.(사진제공=찬란)

 

올해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F등급’의 F는 정치적 의미가 담긴 페미니즘(feminism)이 아닌 여성(female)에서 딴 약자로 연출이나 각본, 주요 배역을 여성이 맡았을 때 F등급을 매긴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데 이어 올해 토론토 릴 아시안 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 수상을 이어 갔다. 지난 3월 처음 개봉했던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내년 일본 현지 개봉까지 앞뒀다. 1990년대생 여성 배우들(고아성, 이솜, 박혜수)이 활약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올해 몇 안되는 제작비 회수 영화다.

흥행은 아쉬웠으나 ‘디바’ ‘내가 죽던 날’ ‘애비규환’ 등 감독과 주연 배우가 모두가 여성인 작품들이 뛰어난 작품성으로 완성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침입자’ ‘콜’도 여성 배우가 단독 혹은 투톱으로 이끌어 가는 장르영화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 경쟁 부문에서 상영작의 여성 감독 비율은 67.5%에 달했다.

F등급
회사의 비리에 맞선 말단 사원들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이 코로나19로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도 손익분기점인 156만 명을 넘었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페미니즘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이 문화로 정착됐음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내년 1월 개최될 제40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후보 5명이 모두 남성(‘스윙키즈’ 강형철, ‘기생충’ 봉준호, ‘봉오동 전투’ 원시연, ‘극한직업’ 이병헌, ‘사바하’ 장재현)인데 비해 신인 감독상은 5명 중 3명이 여성(‘벌새’ 김보라, ‘메기’ 이옥섭, ‘생일’ 이종언)이다.

지난 16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된 ‘2020 여성영화인축제 랜선토크’에서 윤단비 감독은 “코로나 시기에 개봉하긴 했지만 언급한 영화들은 코로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제작된 영화들이다. 특수한 시기를 반영했다기 보다는 여성서사에 대한 영화계와 관객들의 갈증이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흥행과 수익성 측면에서 여성서사는 부적합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성 영화들이 모험을 주도한 것이 상업영화까지 관심을 이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늘의 별이 된 영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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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연합)

 

올해는 유독 영화팬들이 사랑한 사람들이 많이 떠난 한 해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작곡가’로 꼽힌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감독이 지난 7월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모리꼬네는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탄생시킨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미션’ ‘언터쳐블’ ‘러브 어페어’ ‘천국의 나날들’ 등 다양한 영화음악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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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의 채드윅 보스만(사진제공=디즈니)

 

8월에는 영화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이 세상을 떠났다. 채드윅 보스만은 지난 8월 43의 젊은 나이로 대장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마블은 그를 추모하며 2편에서 “채드윅 보스만을 CG로 구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초의 흑인 히어로를 그린 ‘블랙 팬서’ 측은 “채드윅 보스만을 기리기 위해 티찰라에 대한 리캐스팅은 없을 것”이라며 “1편에 소개된 와칸다 속 인물들을 다룰 것”이라고 공식발표하며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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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국내 개봉한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에서의 다케유치 유코.(사진제공=디스케이션)

 

9월에는 일본의 인기배우 다케우치 유코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다케우치는 드라마 ‘런치의 여왕’,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에서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았다. 특히 그는 둘째 아이를 낳은 지 8개월 만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가족들이 “섣부른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국내에서는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숀코네리
역대 제임스 본드들이 극찬한 숀 코네리.(AP)

 

지난 11월에는 또 한명의 아이콘이 세상을 등졌다. 영화 ‘007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숀 코네리가 치매로 투병하다 세상을 등졌다. 1962년 ‘007시리즈’의 첫편 ‘007 살인번호’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총 25편 시리즈 중 7편에 출연했다. ‘역대 제임스 본드’ 배우들은 숀 코네리 사망을 한 마음으로 추모했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피어스 브로스넌은 고인을 “가장 위대한 제임스 본드”라고 추앙했다.

영화감독 김기덕이 11일(현지시간) 발트3국 가운데 하나인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고 타스 통신이 발트 지역 언론 델피(Delfi)를 인용해 보도했다.(연합)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해외에서 체류하던 김기덕 감독은 코로나19로 라트비아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김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칭송받았지만 여성을 가학적으로 묘사해 논란이 있어왔다. 이후 그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폭행, 강요 등 혐의로 고소당했다. 방송을 통해 인권침해 및 성폭력 혐의 등이 폭로되며 사실상 국내 영화계서 퇴출 당했다. 그의 비보에 국내 영화계는 물론 대중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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