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살인의 추억'…"과오·억울함 바로 잡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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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19. 오전 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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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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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여씨 재심 무죄 받았지만
지나간 시간 누구도 보상 못해

이춘재 소행 드러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유족 국가손배 청구…억울함 못 풀고 어머니 눈 감아

무고한 사람 잡고 당시 수사관 5명 특진
과오 정리는 '현재진행형'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최초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 그리고 판결을 내렸던 법원까지 모두 머리를 숙였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는 17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는 게 바람"이라는 말과 함께.

30년만에 베일을 벗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당시 경찰과 검찰의 강압·폭력 행위와 부실수사가 빚어낸 사건임이 확인됐다. 법원 또한 재판 과정에서 증거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고한 이를 고통받게 했다. 비록 윤씨는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게 됐지만, 그의 지나간 시간은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의 부실수사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이제라도 회복돼야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이다. 사건은 1989년 7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현 화성시 병점동)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김모(당시 8세)양이 하교 중 실종됐다. 경찰은 5개월 뒤에서야 김양의 책가방과 옷가지 등 유류품을 발견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고, 30년 동안 미제 실종사건으로만 남아 있었다는 게 그간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춘재의 자백으로 진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도 이춘재가 벌인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였다. 특히 경찰의 재수사를 통해 당시 수사관들은 김양의 유류품, 줄넘기에 묶인 양손 뼈를 발견하고도 이를 단순 실종사건으로 축소하는 한편, 허위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범죄를 은폐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경찰은 당시 수사관들을 사체은닉·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실제 처벌이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춘재가 살해 사실을 자백한 '화성 실종 초등학생'의 유가족이 지난 7월7일 오전 실종 당시 피해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30년 동안 실종된 줄만 알고 애타게 아이를 찾았던 가족들은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뒤늦게 장례와 49재를 치렀지만 고통의 시간은 흘러간 뒤였다. 결국 유족들은 올해 1월 수사 경찰관들을 특수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하는 한편, 3월에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양의 억울한 죽음과 공권력에 의한 사건 은폐·조작의 진실을 밝히고,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심정이었다.

소송 제기 1년 만인 내년 3월18일 첫 공판이 잡혔지만, 김양의 어머니는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딸의 실종이 이춘재 소행의 살인사건임이 밝혀진 뒤부터 지병이 급속도로 악화됐다고 한다. 유족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참본 이정도 변호사는 "수사 등을 이유로 관련 절차 진행이 계속 지연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의 과오도 늦었지만 바로잡아야 한다. 사건 당시 진범 대신 윤씨를 잡은 경찰관 5명이 특진했다. 재심으로 윤씨의 무죄가 확정된 만큼 이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찰은 재심 결과가 나오자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 등 관련된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뒤늦게나마 재수사를 통해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검거하고 청구인의 결백을 입증했으나,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당시 특진 경찰관들에 대한 처분 계획 등은 담기지 않았다. 제대로된 피해 회복과 책임을 묻기 위한 시간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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