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기업인상]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 K컬처 도약 이끈 여성 CEO “우리 이야기 매력 세계로 나가는 데 힘 보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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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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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한국인이 성취해 놓은 여러 일 가운데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단연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일이다.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 4관왕에 올랐다. 대사 대부분이 영어가 아닌,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64년 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기생충>의 낭보에 국내외 관객과 언론이 가장 주목한 인사 중 한 명이 바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62)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당시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미경 부회장은 “나는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며 “<기생충>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원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한국 관객들은 항상 가감 없는 피드백을 해준다. 한국 관객들이 있었던 덕분에 <기생충>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처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자 이미경 부회장과 함께 CJ그룹의 ‘문화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문화산업 전문가들과의 폭넓은 네트워크와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기생충>의 성공신화도 없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실제 아티스트 발굴, 대규모 투자, 글로벌화 프로젝트 추진 등 CJ그룹의 폭넓은 문화 사업의 배경에 그녀가 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가 내년 4월 미국 LA에 개관하는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의 부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는 이 부회장이 20여 년간 세계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쌓은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매경LUXMEN>이 2020년 올해의 기업인상에 이미경 부회장을 선정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미경 부회장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CJ 문화 사업과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영화사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생충>이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부터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이미경 부회장은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올 초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기생충>이 호명되던 감동적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기생충>의 성공은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출연 배우와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좀 더 큰 의미에서 보면 창작자, 관객, 인프라 등 한국영화의 시스템 전체가 100여 년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결실이에요. 영화를 사랑해주신 한국 관객들과 수많은 영화 스태프들과 관계자들이 함께 만들어 온 결과물입니다. 단순하게는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무대에 나서게 됐다는 의미이자 더 나아가 영화 산업에서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는 의미가 있어요.”

지금은 성공신화로 자리잡았지만 지난 25년간 CJ그룹이 식품기업에서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5년 CJ그룹이 드림웍스에 3억달러 투자를 결정하고, 영화 사업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CJ가 문화 사업에 뛰어들 당시 한국 영화산업은 중저가 예산 코미디나 멜로가 주류였다. 할리우드 영화들과의 경쟁도 감당해내지 못했고, 상영되는 영화 10편 중 8편이 해외 영화였다. 더구나 CJ는 식품기업이었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당시 CJ그룹의 자산이 1조원에 불과했고, CJ제일제당 연매출의 20%가 넘는 금액인 3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은 회사의 명운을 건 결정이었다”고 회상한다.

성공 모멘텀의 시작은 드림웍스와의 딜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과 함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드림웍스 창립 멤버였던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등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파트너십이 성사되었고, 이후 드림웍스 연례 회의에 참석하면서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TV, 음악 제작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시스템과 구조를 배울 수 있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문화보국’ 가르침 잊지 않아

비슷한 시기에 문화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많은 대기업들이 관련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치자 하나둘 발을 뺐다. 하지만 CJ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K컬처’의 묵묵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식품 회사로 사업을 처음 시작하였던 저희는 식문화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리드하는 문화 콘텐츠 비즈니스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이신 이병철 선대회장님으로부터 ‘문화가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가르침을 받아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재현 회장도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고, 저 역시도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을 높여 사회에 기여하는, 이윤추구를 넘어선 다른 차원의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실제 CJ는 외환위기를 거친 1998년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선보이며 국내 영화 시장의 성장을 지원했다. 2000년에는 영화배급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영화 배급 사업에 나섰다. 이후 미디어와 음악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의 개인적인 경험과 꿈도 한몫했다. 이 부회장은 하버드 유학 당시 미국의 멀티플렉스에 처음 갔을 때의 그 문화적 충격이 가슴에 깊이 남아있었다고 술회한다. 미국의 선진 문화를 실제로 접하며 우리도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들이 모두 밑거름이 되어 식품기업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성장 동력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부회장은 25년간 영화 투자와 제작, 극장, 콘텐츠 투자, 방송 등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할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봉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함께해 오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언급할 때, 봉테일(Detail-oriented)라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섬세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들을 몰입시킴과 동시에 창의적인 인사이트와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풀어내는 연출 능력은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 있죠. 더불어 그는 감독으로서 연출 능력 외에도 스태프와 배우들을 향한 배려심과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고, 개개인의 재능을 최고로 뽑아내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상생활 속의 모습이 그를 더욱 신뢰감 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로나 ‘언택트’를 한류 확산의 계기로 삼아야”

<기생충>의 성공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변수도 발생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문화의 확산이다. 전통적인 영화관은 어려움을 겪는 반면 OTT 등 플랫폼 업체들은 득세하고 있다. CJ도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던 K컬처페스티벌 케이콘(KCON)을 온라인 중계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19 발발로 오히려 디지털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서 개개인의 일상이 촘촘해지는 ‘초연결(hyper-connection)’ 시대를 맞이하게 된 만큼, 디지털 플랫폼에 최적화된 기술과 우수한 콘텐츠가 만나 K컬처의 저변을 세계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자신한다.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팬데믹으로 인해 저성장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 대중문화는 오히려 전 세계 주류로 부상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 한 해이기도 했어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언택트 콘텐츠 소비가 많아지면서 문화 국경이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이를 통해 <사랑의 불시착> <기생충> 등 K-Pop, K-드라마, K-무비와 같은 지역 문화가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국경,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인 글로벌 대중문화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우리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명작이라고 언급하며 근래 본 작품 중 최고라고 평가하는 시대가 온 거죠. 케이콘을 올해 처음으로 유튜브를 통해 란 이름으로 두 차례 진행했고, 전 세계의 440만 관객들이 지켜봤어요.”

CJ의 성공은 문화사업의 비전과 전략에 따라 이재현 회장이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책임지고, 이 부회장이 글로벌 업계 전문가들과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플레어들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는 뒤지더라도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사업자라는 독특함을 활용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신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이 부회장의 지론이다.

“한류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핵심은 우리 IP(지적자산)가 가진 매력에 비로소 전 세계인이 반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IP, 우리의 스토리에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더불어 특정 국가 국민들만 이해할 수 있는 지역성을 뛰어넘는 세계적 보편성이 그 특별함 속에 녹아 있죠. CJ는 글로벌 콘텐츠 회사들과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한국 예능 최초로 미국 지상파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미국판 Better Late Than Never)>를 시작으로 <너의 목소리가 보여(미국판 I Can See Your Voice)>는 현재 FOX 채널을 통해 인기리에 방영 중입니다. 스카이댄스와 함께 준비 중인 드라마 <호텔 델루나>, 영화 <지구를 지켜라> 미국판 등 수십 편 이상의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그 가능성을 방증하는 일일 거예요.”

이미 한류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부상한 만큼,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후배 CEO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다. 이 부회장은 “소위 ‘한류’라고 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벌 인기는,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현재의 BTS와 영화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기획되며 더 많은 한인 크리에이터들과 아티스트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만큼, 메이저 플레이어로서 구체화된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하나를 수출하는 것이 아닌 독창적인 콘텐츠로 국내와 글로벌을 동시에 타깃으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판매하여 꾸준한 수익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는 충고다.

문화사업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요즘의 사회초년생을 보면 다들 하나같이 똑똑하고,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가진 뛰어난 자질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 같아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본인들이 가진 좋은 역량을 한 단계 더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을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드림웍스의 수장이자 저의 멘토인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은 늘 ‘문화산업은 사람에 대한 비즈니스(Entertainment Business is People Business)’라고 해요. 진정성 있는 ‘사람’에 대한 접근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면서 신뢰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나아가 사업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함에 있어서 핵심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미경 부회장이 직접 꼽은 인생영화 3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미경 부회장에게 인생영화 3편과 그 이유를 선정해달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가장 의미 있는 영화 3개로 ,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선정했다.

먼저 에 대해 이 부회장은 어린 시절,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해있던 영화관에서 12번이나 관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고 답했다. 흑백영화만 접하다가 1970년대가 되어 처음 접한 컬러 필름이었고, 뮤지컬 음악으로 가득 찼던 이 영화에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와 음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 어린 나이에 관람하기에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관람했을 정도로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로 소개했다. 이불 아래에 넣어두었던 잘려진 말 머리를 발견하는 장면과 마피아 두목의 아들 ‘소니’가 암살당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라고. 잘 만든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고 이후 스토리, 배우의 연기, 연출 등 영화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 부회장은 “좋은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생에 대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메시지를 준 영화 중 하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복잡한 인생사를 계절의 흐름에 맞춰 심플하게 이야기하면서 분명 그 안에서 제 인생을 돌아보게끔 하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탁월한 영화적인 연출로 심플하지만 단촐하지 않게 꾸며내는 힘을 갖고 있는 영화로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리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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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매일경제 주간국으로 입사해 주로 산업 및 경제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7년부터 매일경제 월간지 매경LUXMEN 취재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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